'이야기'라는 말을 들으면 언제나 떠오르는 풍경이 있다. 살짝 열린 창으로 주홍색 가로등 불빛이 들어오고 오래된 선풍기가 회전을 할 때마다 내는 딸깍, 딸깍하는 소리가 낮고도 부드럽게 깔리는 밤. 나는 살갗에 닿는 서걱한 촉감이 낯설어 모시 이불을 자꾸만 발로 걷어차고 그럴 때마다 외할머니가 마른 손으로 이불을 당겨 내 배를 다시 덮어준다.
할매
와 부르노
내 잠 안 와
할매가 이바구 해주까
호랑이 이야기 해도
할매가 지영이 니만 할 때...
듣고 또 들어서 귀퉁이가 닳아버린 이야기 한 조각이, 반쯤 잠에 잠긴 할머니의 목소리를 타고 가만가만 나를 다독이면, 나는 이불을 걷어차는 것도 잊은 채 귀를 쫑긋 세우고 호랑이가 나오는 대목을 기다리다 언제나 그렇듯 잠에 빠지고 만다. 이 풍경을 떠올릴 때면 나는 번번이 콧잔등이 시큰해져서 괜히 눈을 꿈뻑인다. 잠이 오지 않는 새벽, 내 곁엔 아무도 없지만 이야기가 남아 언제까지고 나를 덮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