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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반지 Jan 01. 2021

나의 세계에서 우리의 세계로


<별나도 괜찮아>는 자폐아 샘과 그의 가족, 친구들의 이야기를 그린 틴에이저 드라마이다. 고등학생인 샘은 그 나이 또래의 여느 남자아이들처럼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고 누군가와 사랑도 나누고 싶지만, 샘의 가족은 그런 그를 독립적인 개체로 인정하지 못한다. 엄마는 언제나 샘을 뒷바라지 해왔고, 여동생 케이시는 학교에서 줄곧 오빠의 보호자 역할을 맡고 있다. 샘이 쇼핑센터에 가서 옷을 고를 때도, 샘의 엄마는 매장의 불빛과 음악을 일일이 체크할 정도로 '자폐아 엄마'다운 헌신을 한다. 가족들은 샘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를 모두 간섭하고 평가하며(물론 애정이 깃든 시선이지만) 샘을 세상으로부터 보호하려 한다. 가족들에게 샘은 언제까지고 돌봐주어야 할 연약한 존재이자 영원한 의무, 때로는 짐이다.


원제인 ‘Atypical’이 의미하는 것처럼 샘은 '보통의' 사람들과 다르다. ‘다름’은 곧 겉으로 훤히 드러난 결점이 되고, 결점을 바라보는 타자의 시선은 노골적이다. 학교에서 아이들은 당연한 수순처럼 샘을 따돌린다. 그렇지만 샘을 둘러싼 인물들의 이야기를 따라가 보면, 다들 저마다의 결점을 감추기 위해 끙끙거린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매일매일 'To Do List'를 빼곡히 적어 실천에 옮길 정도로 모든 것이 제 자리에 있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엄마는 우연히 들른 칵테일 바의 남자와 사랑에 빠져 혼란스럽다. 여동생 케이시는 남자 친구보다 동성 친구에게 끌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아내의 외도 사실을 알고 크게 상심한 샘의 아빠 또한 다른 인물에게 끌리는 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공부도, 연애도, 친구관계도 뭐든 다 잘 해내고 싶은 샘의 여자 친구 역시 잘 지내는 척 하지만, 사실은 새로 진학한 대학교에서 겉돈다. 샘의 상담 선생님은 남자 친구와의 화 때문에 힘들어하지만 어디에도 털어놓지 못한다.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자폐'라는 말이 과연 샘에게만 해당하는 건지 고민해보게 된다. 우리 모두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어쩔 줄 모르는 때가 있기에.


사람들은 샘에게 끊임없이 세상사는 ‘rule’을 알려주려고 한다. 샘, 좋아하는 여자에겐 이렇게 행동해야 한다. 샘, 마음속에 있는 말을 솔직하게 해서는 안된다, 샘, 샘, 샘. 세상 사는 법을 알고 싶고 독립적인 어른이 되고 싶은 샘은 그런 규칙들을 일일이 받아 적으며 상기하고 행동에 옮긴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탐구하고 꿈을 찾아 대학에 진학한다. 샘의 어설프고 서투른 도전은 물론 실패할 때가 많지, 샘은 세상으로 한 걸음씩 내딛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겨우 을 향해 한쪽 벽을 허물었나 싶다가도 다시 자기만의 세계로 빠지고 마는 샘을 구하는 건 바로 펭귄이다. 샘은 자폐 증상이 심해질 때마다 펭귄의 종류를 중얼거리며, 너무 힘들 때는 수족관으로 찾아가 펭귄을 하염없이 보기도 하고, 집에선 펭귄에 관한 동영상을 찾아보며 힘을 얻는다. 그리고는 다시 펭귄처럼 뒤뚱뒤뚱 세상 속으로 걸어간다. 끊임없는 눈보라와 언제 닥칠지도 모르는 태풍을 기꺼이 버티러. 샘은 세상이 만들어 놓은 룰을 배우고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마침내 자신만의 룰을 만들면서 나아간다. 사랑을 하고, 꿈을 찾고, 친구를 사귀고 누군가를 도우면서 저벅저벅. <별나도 괜찮아>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샘이 자신도 모르는 채로 누군가를 사랑하는 감정을 확실하게 이야기하는 부분이다. 완벽주의자인 샘의 여자 친구가 졸업생 대표로 연설을 맡지만, 하필이면 졸업식 당일 목이 쉬어버린다. 샘은 여자 친구를 대신해 졸업식에서 연설문을 읽고, 그동안 찾아 헤매던 사랑이란 감정에 대해 정의를 내린다. 너 대신 연설을 한건 널 사랑해서 인 것 같다고.


‘자폐’라는 말이 의미하는 것처럼 샘은 자기만의 세계에 갇힌 사람이지만, 그는 끊임없이 그 세계를 열려는 시도를 한다. 의 시도는 역시나 자기만의 세계 속에 살고 있는 이들을 향하고, 마침내 서로의 세계가 열린다. 그 세계를 여는 열쇠는 저마다의 결점이었다. 저마다 감추고 싶은 것을 털어놓을 때, 부서진 마음의 풍경을 꺼내놓을 때 비로소 자기만의 세계는 무너져 내리고, 서로를 잇는 다리가 놓인다.

"완벽한 건 그다지 매력이 없잖아. 우리가 사랑하는 건 결점들이지”라는 존 버거의 문장처럼, 샘은 결점을 사랑하는 법을, 우리가 사랑하는 건 누군가의 완벽한 모습이 아니라 약하고 허술한, 부서지기 쉬운 것들임을 따뜻한 시선으로 알려준다. 우리가 삶이라는 세계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함께해야 한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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