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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반지 Jan 05. 2021

보폭을 좁혀야 할 때도 있어요

2021년 나의 새해 목표


집 근처에 어린이 대공원이 있어 시간이 나면 곧잘 찾는다. 여름이면 우람한 초록의 기세를, 겨울이면 쓸쓸한 적막을 걸음마다 나지막이 껴안는다.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 모두 좋지만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공원의 계절은 겨울이다. 익숙한 산책로를 따라 걷노라면 곧 밑동만 남아있는 커다란 나무를 만날 수 있, 나이테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에는 작은 푯말이 달려있다. 나무가 힘들 때는 천천히 성장을 하기 때문에 그 해의 나이테가 좁다는 설명이 담겨있. 나는 산책을 할 때마다 그 앞에 서서 문장을 또박또박 다 읽고 촘촘한 나이테를 들여다보며 나무가 힘들었을 그 해를 가늠한다. 나무가 힘들 때는, 천천히, 자라납니다. 그 말이 좋아서 그 주변을 한참이나 서성거린다. 천천히 자라는 나무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다.

 
이은재 작가의 <셧업 앤 댄스>는 청춘의 시기를 그린 웹툰이다. 햇빛이 가득한 봄과 여름엔 나이테가 넓게 넓게 퍼지는 것처럼, 흔히 인생의 이라 불리는 청춘은 맹렬한 속도로 나이테를 그려나가야 할 때다. 그러나 인생의 봄을 맞이한 만화 속 등장인물들은 왠지 그렇지 못하다. 아이돌 연습생으로 꼬박 5년을 바쳤지만 결국 데뷔하지 못한 원준, 학교에서 늘 얻어터지고 돈을 뺏기는 게 일상인 윤상, 엄마가 시키는 대로 공부만 하다가 웬일인지 말을 더듬게 된 재형, 다문화 가정 출신의 현철,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둥 마는 둥하며 방과 후 시간강사로 소일하는 원선... 다른 이들은 맹렬하게 성장하는 것 같은데 유독 이들의 계절은 겨울인 것만 같다. 제자리에 묵묵하게 서있을 뿐인 이들의 나이테는 멈춰있는 듯 보인다. 상대방에게 속내를 꺼내 보일 순 없지만 저마다 '지금'은 정답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렇게 다른 친구들이 우연히 방과 후 활동인 에어로빅 동아리에서 만난다. 적당히 시간이나 때우려고 가입한 에어로빅 동아리가 얼떨결에 전국 대회 출전을 준비하게 되면서, 그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자라기 시작한다. 원준은 대회 출전을 준비하던 중 다시금 아이돌 데뷔 기회를 얻지만, 연습실 거울 앞에서 춤을 추며 왠지 그토록 꿈꿔왔던 일이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게 된다. 윤상은 동아리 친구들의 도움으로 학폭에서 벗어나고, 말을 더듬기 때문에 필담으로만 대화를 주고받던 윤상은 자신의 속내를 꺼내기 시작하면서 쉴 새 없이 랩을 시작한다. 단단한 껍질로 여러 겹을 여민 나무처럼 좀처럼 속내를 보여 주지 않던 이들이 모여 무언가를 함께 해나갈 때, 그들의 나이테는 비로소 빛을 머금다. 칸칸마다 그 빛이 은근히 스며있기에 독자의 입장에서 온기를 함께 느낄 수 있어 더없이 기쁘다. 모두가 봄을 맞이한 듯 보일 때, 다들 무시무시한 기세로 자라는 것처럼 보일 때, 말없이 그늘에 모여있는 나무들이 있다. 그들만의 겨울을 보내는 나무들이 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고 다시 겨울이 오는 것처럼, 나 더러는 봄의 자리에 서있지만 때로는 겨울의 자리에 선 나무가 된다. 나이테를 들여다보면 반듯한 동그라미의 중첩이 아니라 일렁일렁 물결을 치는 일그러진 동그라미인 것처럼, 성큼성큼 뛸 듯이 자라나 싶다가도 한걸음을 못 내딛고 주춤거릴 때가 있다. 계절과 인생은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다. 아무리 반듯한 동그라미를 그리려고 애를 써도 뜻대로 되지 않고, 더 이상 자라고 싶지 않다고 억지를 부려봤자 나이테의 한자말인 연륜(年輪)처럼, 시간은 기어코 우리의 삶에 한 바퀴를 새기고 만다. 한 해가 지나는 동안 자기도 모르는 새에 한 바퀴 몫으로 깊고도 그윽해진다.


새로운 해를 맞았고, 또 하나의 나이테가 내 삶에 어김없이 새겨졌다. 나이테. 넓게, 또 좁게 1년에 하나씩 생기는 고리. 글을 쓰다 말고 내 손바닥보다 조금 더 큰 노트를 펼치곤 내 나이만큼의 동그라미를 그려보다, 동그라미가 채 스무 개가 되기도 전에 여백이 모자라서 그만두고 말았다. 나도 이제 제법의 나이테를 가지게 된 것이다. 나의 나이테는 어떤 모양일지 생각해본다. 여느 나무들처럼 성큼성큼 자라난 때가 있겠고, 그렇지 못한 때가 있겠지. 언젠가 누가 내게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 삶에서 제일 중요한 가치가 뭐예요,라고. 성장이죠,라고 일말의 겨를도 없이 내가 답했고. 나의 최우선 가치는 언제나 성장이었다. 질적인 성장이든 양적인 성장이든 어떻게든 성장해야 한다는 욕구가 강력했는데, 그 욕구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현재의 나에 대한 불만족'에서 기인한 것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지금은 정답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다. 지금의 내 모습은 진짜 내가 아니라고. 현재의 내가 그리 변변치 못하다는 생각이 나의 내면에 깔려있으니 '더 나은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에 늘 시달렸다. 새해를 맞이할 때마다 몇 권이고 사둔 다이어리에는 온통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한 계획표가 빼곡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나의 인생을 통틀어 어느 해보다 표면적으로 '더 나은 인간'에 가까웠던, 이제 막 무사한 한 바퀴를 마쳤을 지난해의 나는 어떤 모양일까. 머리로는 좀처럼 그려지지 않는 기형적인 나이테를 떠올려본다. 분명히 천천히 자라나야 할 시기였는데 빨리 자라려고 안간힘을 썼다. 많은 것을 해내기 위해 애썼고 뜻했던 일보다 많은 것들을 이뤄냈지만, 실은 충분히 느렸어야 하는 시기였음을 완주를 끝낸 다음에야 겨우 깨달았다. 모양을 가늠할 수 없는 일그러진 나이테의 뾰족한 끝은 나를 향하다 마침내 나를 미워하고 만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셧업 앤 댄스>의 장면 하나. 에어로빅 동아리의 친구들이 어느 날 모여 꿈을 이야기하는데, 누구보다 꿈이 확실해 보였던 원준은 어색한 표정으로 입을 꾹 다물고 있다. 나중에 친구 하나가 은근히 묻는다. 넌 꿈이 뭐야? 너만 안 말했어. 원준이 답한다. 내 꿈은... 행복해지는 거야,라고. 줄곧 어색한 표정으로 속내를 감춰오던 원준의 표정이 순간 환하게 빛다. 올해의 나는 어떤 모양의 나이테를 그리게 될진 모르지만, 더디게 자라야 할 때는 기꺼이 더디게 자라는 내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제자리에 가만히 있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한 해가 끝날  때쯤엔 1월의 첫날과 12월의 마지막 날이 어김없이 손을 맞잡고, 일렁이는 동그라미를 막 그려낸 참일 테니까. 그때는 나이테를 들여다보며 또 한해를 잘 보냈다고 웃을 수 있으면 좋겠다. 무수한 성장 목표 대신 문장 하나를 적어 넣은 올해의 다이어리를 가만히 쓰다듬으며, 정말로 이렇게 보낼 수 있어서 다행인 한 해였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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