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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반지 Jan 10. 2021

사랑이 닳아버린 풍경 속에서


지난해 봄, 직원 몇몇이 둥근 탁자에 둘러앉아 도시락을 꺼내면 으레 따라오는 안주, 아니 반찬이 그즈음 개봉한 드라마 <부부의 세계>였다. 한 사람이 어제의 주요 장면에 대한 감상평을 꺼내면 다들 어쩌면 그럴 수가 있냐고, 제정신이냐고 맞장구를 쳤다. 업무에 필요한 내용을 제외하고는 사람들과 좀처럼 말을 섞지 않아 입사한 지 삼 개월이 넘어가도록 조직 내에서 밥알 속 모래알처럼 묘하게 서걱거렸던 나는, 조직에 빠르게 융화되려면 퇴근 후에 그들이 열광하는 드라마를 열심히 시청한 뒤 그다음 날 열렬히 맞장구를 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여실히 알았지만 그냥 말았다. 어느 날 문득 자려고 누워서 핸드폰으로 <부부의 세계>를 뒤적거린 건, 그토록 견디기 힘들었던 어색한 점심시간의 기억도 가물가물해진 퇴사 후였다.

의사이고 예쁘고 착하고 성실하고 날씬하고 요리도 잘하고 집도 예쁘게 꾸미고 아이에게도 다정다감한 아내 김희애와 잘생겼고 키도 크고 몸도 좋고 자상하고 아내한테 헌신적이고 아들에게도 잘하는 남편이 등장한다. 그러나 문득 김희애는 남편의 목도리에 붙어있는 긴 머리카락 한 올을 발견하고, 어쩌고 저쩌고의 과정을 통해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아낸다. 자신보다 스무 살은 어리고 예쁜 데다 섹시하고 날씬하고 김희애의 병원까지 찾아올 정도로 당돌한 그녀, 혹은 그년이 외도의 대상이다. 게다가 알고 보니 김희애를 제외한 주변 모두가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고도 묵인하거나 심지어 팩트 조작을 통해 그를 감싸주고 있었다. 김희애는 남편의 외도로 인해 받은 충격에 지인들에 대한 배신감까지 더해져 마음에 큰 상처를 입는다. 그 뒤의 이야기는 모른다. 딱 여기까지 봤다. 그때의 점심시간을 더듬어보면 김희애가 바다로 뛰어들었는데 남편이 구해줬다거나, 다시 화해를 했다거나 정도로 마무리된 걸로 알고 있다.


왕자와 공주의 키스 장면으로 막을 내릴 때, 나른하게 깔리는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는 목소리를 이제는 그 누구도 쉽사리 믿지 않는다. 이혼은 이미 예능에서 심심찮게 다뤄지는 오락거리 중의 하나가 됐다. 변질되기 쉬운 알량한 사람의 마음을 근거로 평생의 관계를 쌓아 올릴 무시무시한 발상은 애초에 누가 했을까 싶을 정도다. 아직 결혼하지 않은 나를 두고는 결혼한 이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어차피 할 거면 (이미 늦었지만) 빨리 해라, 혹은 (한숨을 푹 내쉬며) 가능하다면 너 혼자 멋있게 살아라. 결혼생활에 대한 좀 더 내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들은 이런 말도 덧붙인다. 결혼하니 비로소 삶이 안정된 느낌이 든다, 혹은 결혼해도 결국 혼자이고 외롭다. 그토록 다정해 보이던 가까운 부부가 이혼을 결정했다는 소식 앞에서는 마음이 더욱이 혼란스럽다. 부부란 뭘까? 친구가 크리스마스이브에 보내준 남편 코 고는 영상 같은 걸까, 데이트할 때는 곧잘 종아리를 주물러 줄 정도로 애틋하게 굴던 남편이, 빨래하는 친구의 등을 뒤로하고 소파에 벌렁 누워 돌리는 손에 쥔 리모컨 같은 걸까. 마치 생활 기스처럼, 결혼을 하게 되면 누군가를 아끼고 사랑하던 마음의 귀퉁이가 어쩔 수 없이 마침내 뭉툭해지고 마는 걸까. 나는 부부에 과연 어울리는 사람일까. 한 사람을 올곧게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일까. 나 혹은 상대방의 마음의 온도가 떨어지는 걸 감지하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할까. '부부의 세계'에 아직 발을 들이지 않은 나는 여러 가지 질문만 잔뜩 안고 바깥을 서성일뿐.


어쩌면 언제까지고 마냥 서성였을 나의 시선을 잡아끈 순간이 있었다. 김밥집 구석에 서서 김밥을 기다리며 다음의 일기를 썼다.

늦은 다섯 시. 이른 저녁을 위해 자주 들르는 김밥집에 갔더니 부부가 탁자에 마주 앉아 밥을 먹다 나를 맞는다. 이제는 내 눈을 보고 알아서 햄이며 단무지를 빼주는 아주머니가 김밥을 마는 동안, 혼자 몇 술 더 뜨던 아저씨가 흘끗 아주머니를 돌아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주머니 곁으로 와서 봉지 몇 개를 벌려 바람을 넣어놓고 나무젓가락을 넣어둔다. 잠시간 빈 탁자에는 스탠 밥그릇과 반찬통 몇 개가 다닥다닥 귀를 맞대고 모여있었다. 마른 멸치, 총각김치 같은 것들. 탁자 위의 풍경이 퍽 다정해 보여서 줄곧 눈길을 주었다.

'완벽한'아내와 '완벽한' 남편이 만나서 '완벽한'사랑을 부수는 판타지는 나의 흥미를 끌지 못했고, 주변의 부부들이 들려주거나 보여주는 생활은 피로와 걱정을 가중시켰다. 부부가 되어 비로소 느낄 수 있는 안온함에 대한 이야기조차 내겐 짐이었다. 남들이 그렇다고 나까지 그러라는 법은 없으니. 김밥집에서 귀를 맞댄 반찬통을 보면서 나는 그제야 알아챌 수 있었다. 내가 원하는 사랑의 풍경이 눈앞에 있음을. 물론 그 부부의 생활이 어떤지 나는 알리가 없고, 내가 보고 싶은 대로 넘겨짚어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일 수도 있지만 내 눈엔 어쩐지 아름다웠다. 아저씨가 벌린 봉지마다 사랑의 온기가 동그랗게 담겨있는 것 같았고, 당신을 위하는 마음에 먹던 끼니를 마다하고 일어난 빈 탁자의 풍경이 드라마의 어떤 장면들보다 가장 여실하게 사랑하는 마음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실제로 드라마에서 이런 장면을 썼다가는 시청률이 바닥이겠지). 내가 앞으로 결혼을 하게 될지 하지 않게 될지 지금으로서는 알 방법이 없지만, 부부가 된다면 마음이 닳는 사랑보다는 닿는 사랑을 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마음이 는 걸 걱정하기보다는 닿지 않는 걸 걱정하고, 온 마음을 겁없이 다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상대의 빈틈을 메우려 하기보다는 빈틈을 사랑할 수 있는 아량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이 모든 글은 결혼이라는 걸 해보지 않은 이의 판타지일 수도 있기에, 혹여 이 글을 읽는 부부가 계시다면 웃어 넘겨주시기를 바랍니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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