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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반지 Jan 11. 2021

이런 하찮은 기분을 어떻게 견딜 수 있나요


그럭저럭 회사를 다니는 직장인이라면 무난한 직장생활을 위한 저마다의 노하우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옷을 말끔하게 입는다거나 출근시간 30분 전에는 미리 도착한다거나 술자리는 무조건 참석한다거나 하는 것들.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본 규칙은 '절대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말 것'인데, 기본에 너무 충실하다 보면 고리타분하고 인간미 없는 사람으로 비치기 쉽기에 샐러드에 드레싱을 뿌리는 것처럼 약간의 양념을 친다. 기본 규칙에 다년간의 직장인 짬바를 보태면 기본 규칙이 '적당히 안전한 감정만 드러낼 것'으로 유연하게 변형된다. 직장 내에서 뱉는 말과 드러나는 감정은 어떻게든 돌고 돌기 마련이니, 발화자에게도 수신자에게도 부담 없는 적당한 선이면 딱 좋다. 이를테면 그리 심각하지 않은 규모로 벌어진 남자 친구와의 다툼이라든가, 예상보다 많이 나왔지만 그럭저럭 감당할만한 수준인 카드값에 대한 푸념이라든가. 물론 이런 규칙을 제대로 지켜왔다면 직장 내에서 내가 구축하고자 하는, 맡은 일 잘하고 사람 좋고 성격 깔끔한 이미지를 지켜왔겠지만 나는 애초에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사람이다. 얼굴에 훤히 다 드러난 표정으로 사람들이 내 감정을 모조리 읽는다. 입을 열면 한 문장 한 문장마다 선을 넘는 진심이 가득해 직장 생활에는 독이 될 때가 많다. 그러니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내가 택한 방법은 업무 상 필요한 말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와도 말을 섞지 않는 것, 어떠한 친분도 만들지 않는 것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메신저와 점심시간, 퇴근 후 술자리를 적극 활용해 친분을 구축하고 삭막한 직장 생활을 어떻게든 견뎌보려 애쓰는 눈치지만, 나는 점심시간에도 대부분 혼자 밥을 먹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 좋아하는 성미는 어디 가지 않는지 정신 차려보면 일 얘기만 주고받던 사람들이 어느새 슬며시 내 곁에 다가와있곤 했는데, 지난여름에 가졌던 독자 만남 행사에 이전 직장 동료들이 기꺼이 참석해준 걸 보면 그저 고마울 뿐이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도 나는 여전히 혼자 밥을 먹고 사람들과 지나친 감정은 주고받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사무실의 누군가가 퇴근길에 보내준 추천 음악에 눈가가 금세 촉촉해지고, 힘내라며 건네주는 핫초코 한잔에 호랑이 기운이 솟아버리는 데다, 메신저로 곧잘 구구절절한 속마음을 주고받곤 하니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직장인이 되어버렸다. 일찍 일어나는 사람이 '일찍 일어나겠다'는 다짐을 하지 않듯, 애당초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다 드러내는 사람이니 지키지도 못할 기본 규칙을 마음으로 번번이 되뇔 수밖에.


월요일 아침, 다른 팀의 누군가와 업무 이야기를 주고받다 별안간 그녀가 털어놓는 속내에 마음이 쿡쿡 쑤셨다. 내가 직장에서 가지고 싶었던 이미지, 항상 온화한 표정으로 맡은 일을 성실히 묵묵히 즐겁게 해내고 껄끄러울법한 관계의 사람들과도 무난하게 잘 지내는 그녀였기에 조금 놀랐다.

"나는 오늘도 정신없이 바쁘고 힘들었는데, 지나고 보면 오늘 하루가 되게 하찮아요. 사실 그렇지 않아요? 한주 내내 같은 일 하잖아요. 매일매일 복붙처럼. 내 하루가 그런 사소함으로 8할이 가득 찼어요. 티모아 태산이라는데, 티끌모아 먼지 같은 하루를 마감하는 기분이에요."

나는 당신도 그런 기분을 느끼는 줄 몰랐다며, 정신없이 바쁘고 힘들었는데 손에 쥔 건 아무것도 없는, 그런 하찮은 기분을 어떻게 견딜 수 있냐고 물었다. 그녀는 대답 대신 다시 업무 이야기를 꺼냈다. 힘든 마음에 나도 모르게 속내를 꺼내보이고 난 후, 뜨끔 하며 애써 다른 이야기로 화제를 급히 돌리곤 하던 나처럼. 그녀와의 대화가 끝나고 나는 그녀를 향했던 질문의 방향을 내게로 돌렸다. 매일매일의 하찮은 기분을 어떻게 견디느냐고. 하찮다는 말이 자꾸 마음에 걸려서 사전을 찾아보니 '그다지 훌륭하지 아니하다'라는, 한마디로 별로라는 뜻. 직장인으로서의 나는 좋은 글이 아니라 돈이 되는 글을 써야 하고, 내가 쓴 글은 몇 번씩 누군가의 손과 입을 통해 재단되고 재단되고 재단되어서 마침내는 이도 저도 아니게 되고 만다. 돈과 맞바꾼 글이니 그런 것들은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다고, 당연히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생각의 끝이 조금은 텁텁한 걸 어쩔 순 없다. 잡다한 전화와 보고서와 사진 촬영과 광고주 미팅과 이런저런 자잘한 것들을 모두 해내다 보면 돈이 되는 글조차 써낼 시간이 없고 그럴 때면 나는 도대체 뭘 하는 사람인가, 라는 앙상한 물음만 남는다. 하루 종일 허공을 향해 이리저리 손을 뻗어봐도 간신히 손에 쥘 수 있는 건 먼지밖에 없는, 하찮은 것들을 위해 죄다 바친 하루를 안고 허탈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와 어깨에 내려앉은 이 기분을 어떻게든 떨쳐내 보려고 모니터 앞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마는, 그런 사람.


하루의 대부분 나는 아무것도 아니, 아무것도 아닌 이 기분을 떨치려 글을 쓴다. 깜빡이는 커서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써지지 않는 글을 앞에 놓고 몇 번이나 도망갔다 돌아오길 반복하면서, 다른 사람들은 이 삶을 어떻게 견디고 있는지 가끔 궁금할 때가 있다. 무난한 직장생활처럼, 그럭저럭 이 삶을 살아가기 위한 저마다의 노하우 하나쯤은 있겠지. 하루의 8할이 사소함이라도 남은 2할이 못내 빛나기를, 저마다 견디고 있는 하찮음에 지지 않기를 바랄 뿐. 곧 녹아버릴 눈사람을 만드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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