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일대가 정전이 되었다. 원고 작성 중이던 나는 너무 놀라 입을 벌리고 있었고, 뒷자리의 디자이너 몇은 한숨을 내쉬곤 담배를 피우러 옥상으로 올라갔다. 히터도 안 나오고 따뜻한 물도 안 나오고 엘리베이터도 안되고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간식이나 사러 갔다. 김밥집 옆 떡볶이집은 전기가 나가서 포장이 안된다며 문을 닫는 참이었고, 김밥집 아주머니는 아직 온기가 남았으니 한 줄 말아주겠다며 들어오라고 하셨다.
아주머니가 김밥을 말며 "아휴, 보상받아야 돼. 보상." 연신 중얼거리니 그 뒤에 빙긋이 서있던 아저씨가 "긴급재난지원금에 보상금에... 아주 부자 되겠어."하고 말을 받았다. "같이 부자 되시는 거죠 뭘" 내가 웃으며 꺼낸 말에 아주머니가 나를 보며 "남이야 남!" 웃음을 거두며 정색을 하고, 두 사람의 표정을 살피다 아차 부부가 아니었나 하는 마음에 "아, 그렇군요..." 했더니 아저씨가 "아 그렇군요는 뭐가 또 아 그렇군요야!" 하고 큰 소리를 내며 "진짜 무서운 여자야, 무서운 여자"라는 말을 덧붙였다. 아주머니는 아저씨의 말은 아랑곳 않고 나를 향해 "헤어지면 남이야 남!" 힘주어 말하며 김밥을 꾹꾹 말아 쥔다. 나는 정신없이 웃다가 아저씨가 불러준 계좌번호를 몇 번이나 틀렸고, 김밥을 받아 들고 나서는 나를 향해 아주머니는 "덕분에 한 줄 팔았네요. 맛있게 먹어, 맛있게!"하고 웃어주셨다. 팔목에 비닐봉지를 끼고 사무실을 향해 걷는 동안 눈이 펄펄 내렸고, 정전을 틈타 오늘의 소중한 한 장면을 주웠다는 생각에 마음이 듬뿍했다. 이런 기분이 들 때면 삶은 역시 살아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고 앞으로를 넌지시 기대하게 된다. 아직 어두컴컴한 사무실로 돌아와 김밥을 먹기 시작했는데, 김밥이 다른 날보다 유난히 크게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일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