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몹시 내린 눈으로 온 거리가 질척거렸다. 펭귄처럼 뒤뚱뒤뚱 걸어 지하철 세 대를 보내고 겨우 회사에 도착하니 메신저로 '이거 왜 안됐어요?'라는 상사의 물음이 날아온다. 광고 시안도 만들고 사진도 찍고 카피도, 원고도 다 썼는데 어제는 일간지 담당자와 종일 몇 차례나 통화하느라 바빴는데 보도자료를 안 썼구나. 급하게 보도자료를 만들고 송출업체에 연락하고(최대한 빨리 부탁드려요!) 한숨을 돌리고 나니 그만둘까라는 생각이 든다. 정용준 소설가가 어느 작품에서 '태풍이 아니라 희미한 햇살 한 줌에 무너진다'라는 뜻을 담은 표현을 한 적이 있는데 오늘따라 유난히 간절하다. 힘들고 어려운 고비를 줄곧 넘겨오며 감정을 꾹꾹 애써 삼켜왔지만, '이거 왜 안됐냐'는 상사의 가벼운 질책에 나는 와르르 무너지면서도 '죄송합니다, 다음부터는 차질 없이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라는 대답을 정중하게 한다. 회사를 그만두면 문을 걸어 잠그고 집 밖으론 한 발짝도 디디지 않고 배달음식을 매일매일 시켜먹고 종일 이불을 덮어쓰고 누워서 핸드폰만 보고 싶다. 그렇게 몇 개월을 지내다가 그 모든 게 너무나 지겨워져 일어나 문을 열면 초록이 깜짝 놀랄 정도로 흐드러져 있었으면 좋겠다. 부스스한 머리와 퉁퉁부은 얼굴로 쭈그리고 앉아서 일찌감치 봄을 맞은 세상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