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물어보세요

by 꽃반지


보통 점심시간엔 회사 근처 중고 서점을 기웃거린다. 중고서점보다는 헌책방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서가에 비치된 책들만큼 꼭 낡고 바랜 공간이다. 뭐라도 하나 사가겠다는 심정으로 거의 한 시간 내내 서가 이쪽저쪽을 기웃거리지만, 좀처럼 마음에 드는 책을 찾을 수 없어 빈손으로 문을 나설 때가 대부분이다. 그럴 때마다 괜히 겸연쩍은 마음이 들곤 한다.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은 날이었다. 서가를 두리번거리며 이 책 저책을 뽑아 몇 장 들췄다 도로 꽂아놓기를 반복하다 점심시간이 끝날 즘이 다 되어 서점을 나섰다. 다른 것이 있다면 평소 이용하던 문과는 다른 문을 이용했다는 점인데, 서점을 나와 문득 뒤를 돌아보았을 때 내 눈에 보인 것은 문 옆 벽에 붙은 종이였다.


저한테 물어보세요

구경, 조사, 메모, 물어보는 집... 이미 알고 있지만 처음 듣는 것처럼 생경한 단어들. 이들이 나란히 모여있는 풍경은 이 시대엔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점차 잊히는 것들의 모음 같기도 했다. 서점에 가지 않고도 클릭 몇 번이면 온라인으로 책 한 권을 읽을 수 있는 마당에 품을 들여 책을 구경하려는 이는 드물 것이며, 인터넷을 뒤지면 훨씬 경제적이고 효율적인데 굳이 책장을 일일이 넘겨가며 조사를 하려는 이도 드물 것이다. 핸드폰 셔터 한 번이면 원하는 페이지를 통째로 사진에 담을 수 있는데, 굳이 종이와 펜을 꺼내 책에서 필요한 부분을 옮겨 적을 이가 있을까. 아니, 요즘 종이와 펜을 챙겨 다니는 사람이 있기는 한가. 한 단어 한 단어를 천천히 곱씹다 길 물어지는 집에 시선이 머물렀을 때는 물어보다, 라는 행위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그러고 보니 묻고 또 답하지 않은지 오래되었다. 예전에는 길을 묻는 사람이 제법 많았다. 걷다 보면 사람들이 곧잘 나에게 다가와 장소를 대며 거길 어떻게 가느냐고 묻곤 했다. 10년을 산 동네에서도 곧잘 길을 잃고 헤매는 타고난 길치이기에 그런 물음을 받을 때마다 저도 이 동네가 처음이라서요, 하고 번번이 같은 대답을 하며 식은땀을 흘렸다. 요즘에는 길을 묻는 사람이 없다. 천하의 길치인 나도 핸드폰이 생긴 뒤부터는 길을 훨씬 덜 헤맨다. 핸드폰이 내 삶에 등장한 역사 이래 가장 자주 사용하는 기능은 '현재 내 위치'를 검색. 그 뒤로도 종종 벽에 붙은 전단을 떠올렸다. 핸드폰 검색 한 번이면 예식장 위치뿐 아니라 교통 정보까지 쫙 나오는데, 대체 예식장을 못 찾아서 서점에 들러 길을 묻는 사람이 있을까. 그렇다면 그 사람은 핸드폰을 가지지 못한 사람이겠지. 빛바랜 책들처럼 세월과 함께 낡아가는 그런 사람이겠지.


당연한 것들이 그립다

살아가는 데는 많은 정보가 필요하기 때문에 우리는 자꾸 물을 수밖에 없다. 묻는 행위에는 두 사람이 필요하다. 묻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답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묻는 사람은 상대방에게서 자신에게 필요한 무언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묻는 사람들은 여전한데 대상이 바뀌었다. 사람에게 묻는 대신 기계에게 묻는다. 훨씬 빠르고 정확하고 다양한 양질의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삶에서 쓸모 있다고 여겨지는 것들에 대한 정보를 잔뜩 얻게 되었는데, 어째서 삶은 더 윤택해지기보다는 쉬이 쓸쓸해질까. 시시하고 의미 없는 것들을 묻고 답하는 행위가 사라진 삶은 적막하다. 애초에 우리의 인사는 안녕하세요, 라는 당신의 안녕을 묻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데. 당신의 안녕을 묻지 않고 기분을 묻지 않고 점심 메뉴를 묻지 않고 주말에 무얼 하며 보냈는지 묻지 않는다면, 그래서 마침내 서로에게 아무것도 궁금해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안녕할 수 있을까. 살아가는데 그다지 쓸모없는 것들을 상대방에게 물을 때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마음 깊이에서부터 곰살맞게 피어오르는 따뜻하고 잔잔한 기분일 것이다. 사람으로서 삶을 살아가는 감각 같은 것. 카페나 책방 구석에서 시간을 보내느라 회사 사람들과 점심을 같이 먹는 일은 거의 없지만, 점심시간을 보내고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점심에 뭘 먹었냐고 꼭 묻는 편이다. 아이를 키우며 맞벌이를 하는 누군가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집에 청소를 하러 다녀오고, 누군가는 속이 좋지 않은데도 김치찌개를 먹었다고 이야기한다. 이유 없이 그런 것들이 궁금하고, 이젠 내가 묻기도 전에 뭘 먹었다며 먼저 이야기해주는 이도 있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스스러운 마음 없이 다가가 물을 수 있는 행위. 상대방이 기꺼이 친절하게 나의 물음에 답해주리라는 기대. 사람이 사람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 응당 당연하고 마땅한 것이 이 시대에는 이토록 귀한 행위가 되어버렸다. 앞으로 나는 살 책이 없어도, 서가에 꽂힌 고만고만한 책들의 위치가 훤하더라도 서점에 좀 더 열심히 들를 예정이다. 서가 사이를 어슬렁거리며 낡은 책 몇 권을 꽂았다가 몇 장 펼쳤다가 다시 꽂아두는 무탈하고 무익한 행위를 반복할 것이다. 당신이 나를 설령 귀찮게 해도 그 정도는 달게 감수하겠다는, 책 한 권을 파는 일과는 아무 상관없는 일을 하겠다고 드나드는 문 옆에 떡하니 써붙여놓은 것이 좋아서.

keyword
작가의 이전글따뜻하고 즐거운 방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