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 있게 틀리세요!

by 꽃반지


10년째 발레를 배우고 있다. 10년이라는 시간만 놓고 본다면 무대 위를 날아다니고 턴을 오백 번씩 거뜬히 할 것 같은 실력자의 포스를 풍기지만, 나는 그저 10년째 발레를 시작하고 있을 뿐이다. 여전히 나는 초급반이며 그중에서도 순위를 다퉈야 할 정도로 못한다. 하루 종일 일하느라 정신없이 돌아간 머리를 쉬게 하고 온전히 몸을 쓰며 나름의 휴식을 취해보겠다는 뜻에서 하고 있지만, 쉬기는 커녕 머리와 손발이 따로 노는 바람에 머리와 몸 모두 과부하되는 느낌이다. 연습용 슈즈를 신고 거울에 비친 엉거주춤한 내 모습을 볼 때마다 드는 감정은 뭐랄까, 사전엔 없지만 그 감정과 가까운 말을 찾는다면 아마 '마모감'일 것이다. 너무 부끄러운 나머지 내가 닳아서 없어질 것만 같은 그 마음.


숨기고 싶은 결점이라도

처음 시작은 호기심이었고 그다음엔 으레 그렇듯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나는 춤추는 유전자를 물려받지 못했다. 노력이 재능을 이긴다는 말이 있지만 나는 재능씩이나 가지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저 즐기고 싶은 것일 뿐인데도 남들보다 몇 배는 힘들었다. 뇌에서 아무리 명령을 내려도 내 몸은 나무인형처럼 삐걱삐걱 움직였다. 팔도 올리고 다리도 붙여야 하는데 팔을 올리면 다리가 벌어졌고 다리에 신경을 쓰면 어느 틈에 팔이 내려가 있었다. 내 이름이 수업 때 가장 많이 불리는 이름 중 하나가 된지는 오래였고, 선생님들이 자세를 잡아주러 가까이 다가오면 그녀들의 야무진 손이 내 몸에 닿기도 전에 식은땀이 났다. 한 시간의 수업을 마치고 나면 얼굴이 벌게질 정도로 힘들었는데, 몸의 힘듬보다 마음의 힘듬이 더 컸다. 남들은 곧잘 따라 하는데 나만 혼자 버벅거릴 때 느껴지는 당혹감, 같은 동작을 자꾸만 틀리는 거울 속 나 자신을 차마 바라보기 어려운 마음. 그 감정을 견디다 견디다 그만두고 나면 내가 남들보다 어디가 모자란 것만 같은 불쾌함은 모면할 수 있었지만, 하고 싶은 마음은 여전해 반년 혹은 몇 년을 쉬다 다시 슬그머니 등록했다. 그러면 당연히 처음 시작할 때처럼 못하니 또다시 부끄러워져 그만두고... 이런 과정을 반복해오다 보니 자그마치 10년이 된 것이다. 그렇게 왔다 갔다 할 바에는 꾹 참고 10년을 했으면 지금 뭐라도 돼있지 않겠나 싶은 후회를 종종 한다. 적어도 아직까지 초급반 끄트머리에서 남들 눈치를 보며 혼자 틀린 발을 재빨리 바꾸는 횟수는 줄어들지 않았을까.


수업 시간에 제일 견디기 힘든 것은 나의 실력이 만천하에 드러날 때다. 우르르 함께 서서 거울을 보고 춤을 출 때면 못해도 티가 좀 덜나기 때문에 선생님의 눈길을 가끔 피할 수 있다. 선생님은 다리를 높게 높게 들라고 강조하지만, 되도록 낮게 낮게 들고 턴도 되도록 작게 돌면서 나의 실력이 드러나지 않도록 애쓴다. 그렇지만 네댓 명씩 앞으로 나와 홀에서 춤을 춰야 할 때면 피할 방도가 없다. 고작 네다섯 명인 그룹 안에서도 눈에 띄지 않으려 뒷줄에 가서 서보지만, "지현 씨 좀 더 앞으로 나오세요"라는 말을 듣게 될 뿐이다. 선생님과 다른 사람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나는 어김없이 틀리고 말 것이라는 예정된 미래 때문에, 스텝 하나를 시작하기도 전에 나의 마모감이 작동한다. 음악이고 뭐고 하나도 들리지 않고 그저 옆 사람을 곁눈질하면서 실수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쓸 뿐이다. 고백하기 부끄럽지만, 어느 날은 내가 너무 큰 실수를 하는 바람에 같은 조에서 춤추던 사람이 끅끅대며 웃음을 참다가 마침내 배를 잡고 주저앉았다. 그녀의 흐느끼는 등을 보며 나도 터져 나오는 울음을 삼켰다.


사랑하는 법을 배웁니다

실수 앞에서는 유독 작고 초라해진다. 실수하는 나를 견디기 힘들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며 남들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은 내 마음을 다시금 확인한다. 실수에 대한 트라우마는 어릴 때 나를 엄하게 다뤘던 엄마로 인해 생겼다. 다섯 살에 엄마에게 한글을 배웠는데, 내가 한 글자 한 글자 틀릴 때마다 엄마가 나를 세워놓고 호되게 회초리를 때렸다. 기역 니은 디귿 다음에 리을이 떠오르지 않으면 어김없이 회초리가 날아왔고, 얼마나 맞았는지 밖으로 번진 내 울음소리에 옆집에서 뛰어오는 것으로 사건이 일단락됐다. 엄마는 아주 작은 실수에도 나를 호되게 몰아세우는 방식으로 나를 다뤘는데, 그때의 내 꿈은 빨리 어른이 되어서 엄마를 세워놓고 회초리를 실컷 때리는 것이었다.


문제는 성인이 되어서도 엄마가 나를 대하던 방식 그대로 나 스스로를 대하게 됐다는 사실이었다. 누구나 실수를 하기 마련이고 으레 결점이 있기 마련인데도 실수하는 나를 용납하기 힘들었다. 억누르던 감정이 터져 나올 때면 엄마에게 불쑥 전화를 걸어 화를 냈다. 왜 나를 그런 식으로 대했느냐고, 그런 일들이 내가 얼마나 상처가 되었으며 당신 때문에 나는 이렇게 자존감이 박한 인간으로 자랐다고, 이게 모두 당신의 탓이라고. 부모에 대한 원망과 나에 대한 미움이 뒤범벅되어 간신히 살아가던 나는 결국 심리상담을 몇 년간 받아야 할 정도로 마음이 약해졌다. 한 번은 나와 같은 선생님에게 상담을 받던 내 또래의 여자와 잠깐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한의대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한의원을 개업해서 잘 나가는 그녀 역시 오랫동안 선생님에게 상담을 받고 있었는데, 그 이유가 충격적이었다. "저는 제가 너무 멍청하고 바보 같아요, 잘하는 것도 없고 하는 것마다 엉망이에요" 가만히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그녀가 떠난 뒤 선생님에게 물었다. "저렇게 똑똑한 분이 왜 자기를 멍청하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선생님이 나를 빤히 보며 물었다. "지현 씨도 저분이랑 똑같은 거 아세요?"


시간이 지나 예전의 감정이 얼마간 희석된다고 해서, 엄마에게 몇 차례고 사과를 받았다고 해서, 월급을 죄다 쏟아부을 정도로 심리상담을 받았다고 해서 실수하는 나 자신에게 너그러워진 것은 아니다. 발레를 하면서 여실히 깨닫게 될 뿐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실수에 대한 두려움은 여전하다는 것. 내 이름이 불리면 금세 얼굴이 새빨개질 정도로 부끄럽고, 달아오른 얼굴로 팔다리를 이리저리 움직여 보지만 또다시 도망가고 싶어 진다. 그날도 그랬다. 네 명씩 조를 지어 홀에 나가 춤을 춰야 했고 실수할 거라는 사실에 어김없이 마음이 쿵쾅거렸다. 내 차례를 기다리며 멀거니 구석에 서서 춤을 추는 사람들을 바라보는데, 동작의 정확도와는 관계없이 그저 그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다.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사람들이 손과 발을 움직이면서 자유롭게 춤을 추고 있었다. 그 순간 내가 여기 왜 서 있는지 깨달았다. 나는 그저 춤을 추고 싶어서 여기 서있는 거였다. 동작을 틀리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흘러나오는 음악에 몸을 맡기고 싶어서. 많은 보고서를 써내기 위해, 막 떠나려는 출근길 전철을 잡아타기 위해서 움직이는 손과 발이 아니라 춤을 추고 싶어서 여기에 서있는 거였다.


준비 자세를 잡고 홀에 서자 선생님이 말했다. "남들 보지 마세요. 자신 있게 하고 자신 있게 틀리세요!" 각박한 이 세상, 자신 있게 살아가는 것도 힘든데 무려 자신 있게 틀리라니요 선생님. 자신 있게 틀리기는 언감생심이기에 달달 떨리는 심장 박동을 느끼면서도 마음속으로 선생님의 말을 되뇌었다. 그래, 지금 이 순간 춤을 추자. 물론 그날도 어김없이 실수를 했지만, 나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발레를 배울 것이고 언젠가는 무대에 공연을 올리는 게 목표다. 백조 1의 역할이라도 말이다. 어쩌면 나는 실수하지 않는 법이 아니라 실수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10년째 발레를 시작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더 사랑받기 위한 내가 아니라 더 진짜인 내가 되기 위해서, 나인 나를 사랑하기 위해서.

"완벽한 건 그다지 매력이 없잖아. 우리가 사랑하는 건 결점들이지."
-존 버거, <A가 X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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