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근처에 어린이 대공원이 있어 시간이 나면 곧잘 찾는다. 여름이면 우람한 초록의 기세를, 겨울이면 쓸쓸한 적막을 걸음마다 나지막이 껴안는다. 발에 익은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곧 밑동만 남아있는 커다란 나무를 만날 수 있고, 나는 언제나처럼 그 앞에 멈춰 선다. 훤히 들여다보이는 나이테 옆에는 “나무가 힘들 때에는 천천히 자라납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자그마한 푯말이 달려있다. 나는 산책을 할 때마다 그 앞에 서서 푯말에 담긴 문장을 소리 내어 또박또박 천천히 읽는다. 다 읽은 뒤에는 촘촘한 나이테를 들여다보며 나무가 힘들었을 그 해를 가늠해본다. 말없는 나무도 힘들 때가 있다고, 그래도 자신의 상황에 맞게 속도를 조절하며 언제나 자라고 있다고, 겹겹의 원들은 말없는 말을 내게 건넨다. 일렁이는 동그란 흔적들 앞에서 나는 왠지 깊은 감동을 받는다.
우리는 모두 자라는 중입니다
이은재 작가의 <셧업 앤 댄스>는 천천히 자라는 나무 같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쑥쑥 키를 올려 자라는 봄날의 나무들처럼, 흔히 인생의 봄이라 불리는 청춘은 맹렬한 속도로 나이테를 그려나가는 시기다. 그러나 작품 속 청춘들은 어쩐지 그렇지 못하다. 아이돌 연습생으로 꼬박 5년을 바쳤지만 결국 데뷔하지 못한 원준, 학교에서 늘 얻어터지고 돈을 뺏기는 게 일상인 윤상, 엄마가 시키는 대로 공부만 하다가 웬일인지 말을 더듬게 된 재형, 다문화 가정 출신의 현철,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둥 마는 둥하며 방과 후 시간강사로 소일하는 원선... 다른 이들의 나이테는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커져가는데, 제자리에 묵묵하게 서있을 뿐인 이들의 나이테는 멈춰있는 듯 보인다. 상대방에게 속내를 꺼내 보일 순 없지만 저마다 '지금'은 정답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렇게 다르고 또 같은 친구들이 우연히 방과 후 활동인 에어로빅 동아리에서 만난다. 적당히 시간이나 때우려고 가입한 동아리가 얼떨결에 전국 대회 출전을 준비하게 되면서, 그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자라기 시작한다. 원준은 대회 출전을 준비하던 중 다시금 아이돌 데뷔 기회를 얻지만, 기획사 연습실 거울 앞에서 춤을 추며 왠지 그토록 꿈꿔왔던 일이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게 된다. 윤상은 동아리 친구들의 도움으로 학교 폭력에서 벗어나고, 말을 더듬는 콤플렉스 때문에 필담으로만 대화를 주고받던 윤상은, 친구들에게 자신의 속내를 꺼내기 시작하면서 쉴 새 없이 랩을 시작한다. 단단한 껍질로 여러 겹을 여민 나무처럼 좀처럼 속내를 내보이지 않던 이들이 모여 무언가를 함께 해나갈 때, 줄곧 겨울에만 머물러 있던 그들에게도 드디어 봄이 찾아온다. 그들의 나이테도 비로소 빛을 머금는다.
언젠가 이런 질문을 받은 적 있다. 삶에서 제일 중요한 가치가 뭐예요? 성장이죠,라고 일말의 겨를도 없이 답했다. 나의 최우선 가치는 언제나 성장이었다. 질적인 성장이든 양적인 성장이든 어떻게든 성장해야 한다는 욕구가 강했다. 스스로가 성에 차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나 ‘지금’은 내게 정답이 아니었다. 미래에는 분명히 멋있고 번듯한 진짜 내가 있을 것이니, 현재의 나는 오늘을 징검다리 삼아 미래를 향해 힘껏 달려야만 했다. 새해를 맞이할 때마다 몇 권이고 사둔 다이어리에는 온통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한 계획표가 빼곡했다. 그렇지만 나의 인생을 통틀어 어느 해보다 표면적으로 '더 나은 인간'에 가까웠던, 지난해의 나는 어떤 모양이었을까. 오래도록 꿈에 그리던 첫 출간을 했으니 기뻐야 할 것이 마땅한데 그렇지 못했다. 천천히 자라나야 할 시기였는데 빨리 자라려고 안간힘을 썼다. 실은 충분히 느렸어야 하는 시기였음을, 천천히 자라도 충분했음을 허겁지겁 완주를 끝낸 다음에야 겨우 깨달았다. 나무가 지혜를 발휘해 저를 돌볼 때, 나는 나를 무시하고 힘껏 달렸다. 머리로는 좀처럼 그려지지 않는 기형적인 나이테를 떠올려본다. 나무가 가진 동그란 나이테가 아니라 모양을 가늠할 수 없는 일그러진 나이테의 뾰족한 끝은 나를 향하다 마침내 나를 미워하고 만다.
천천히, 행복하게 자랐으면 좋겠어요
모두가 봄을 맞이한 듯 보일 때, 다들 무시무시한 기세로 자라는 것처럼 보일 때, 말없이 그늘에 모여있는 나무들이 있다. 그들만의 겨울을 보내는 나무들이 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고 다시 또 겨울이 오는 것처럼, 나도 때로는 봄의 자리에, 또한 겨울의 자리에 선다. 좁아졌다 넓어졌다 일렁일렁 물결을 치는 나이테처럼, 성큼성큼 뛸 듯이 자라나 싶다가도 한걸음을 못 내딛고 주춤거릴 때가 있다. 나만 제자리라 여겨질 때, 홀로 겨울을 맞고 있다 느낄 때는 시간과 함께 고요히 흐르는 나이테를 떠올려보자. 나이테의 한자말인 연륜(年輪)처럼 시간은 기어코 우리의 삶에 한 바퀴를 새기고 말 테니, 시간을 믿고 시간 속에 안심하고 머물러도 괜찮을지 모른다. 한 해가 지나는 동안 자기도 모르는 새에 한 바퀴 몫으로 깊고도 그윽해진다. 회사에서 곧이곧대로 자신의 감정을 내보이는 바람에 사람에게 곧잘 상처를 입곤 하던 친구가 했던 말을 기억한다. "나는 천천히 크는 느낌이야" 자신의 속도를 아는 사람, 겨울 속에서도 자라고 있음을 아는 사람의 나이테는 분명히 동그랗고 다정할 것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셧업 앤 댄스>의 장면 하나. 에어로빅 동아리의 친구들이 어느 날 모여 꿈을 이야기하는데, 누구보다 꿈이 확실해 보였던 원준은 입을 꾹 다물고 있다. 아이돌 경연 대회에 나가서 춤을 추는 TV 속 원준의 모습을 누구나 기억하고 있는데. 나중에 친구 하나가 은근히 묻는다. 넌 꿈이 뭐야? 너만 안 말했어. 원준이 답한다. “내 꿈은... 행복해지는 거야.” 줄곧 어색한 표정으로 속내를 감춰오던 원준의 표정이 순간 환하게 빛났다. 글을 쓰다 말고 손바닥 만한 노트를 펼치곤 내 나이만큼의 동그라미를 그려보았다. 동그라미가 채 스무 개가 되기도 전에 여백이 모자라 그만두고 말았다. 나도 이제 제법의 나이테를 가지게 된 것이다. 올해의 나는 어떤 모양의 나이테를 그리게 될진 모르지만, 더디게 자라야 할 때는 기꺼이 더디게 자라는 내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제자리에 가만히 있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한 해가 끝날 때쯤엔 1월의 첫날과 12월의 마지막 날이 어김없이 손을 맞잡고 일렁이는 동그라미를 막 그려낸 참일 테니까. 그때는 나이테를 들여다보며 또 한해를 잘 보냈다고 웃을 수 있으면 좋겠다. 무수한 목표 대신 문장 하나를 적어 넣은 올해의 다이어리를 가만히 쓰다듬어 본다. 내 삶에 나이테가 생겨날 때마다 스스로에게 좀 더 다정할 수 있는 사람, 지금의 나를 아끼지 않는 사람에 가까이 다가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