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나를 싫어할까봐 겁나요

by 꽃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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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서 여름으로 막 넘어가는 간질간질한 시, 일 년 중 가장 좋아하는 그때에 나는 밤바람에 실린 꽃향기를 큼큼거리며 흠씬 다가온 여름을 두 팔 벌려 맞이하고 싶었지만, 두 팔을 걷어붙이고 불린 쌀을 제분기로 빻고 있었다. 한창 사찰요리에 빠져있을 때이기도 했는데, 수업 과정 중 떡 몇 가지를 약식으로 만들다 보니 본격적으로 떡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떡 관련 강좌를 찾아보다 떡케이크 강좌를 찾아냈다. 떡케이크? 마침 이듬해가 엄마의 환갑이기도 하니 이참에 잘 배워서 엄마 환갑 때 떡케이크를 직접 만들어드리면 선물하는 나도, 받는 엄마도 기쁨이 두배가 될 것 같았다. 그렇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회사에서 교육장까지 멀어도 너무 멀었다. 전철로 꼬박 한 시간이 걸렸다. 칼퇴근을 한다 쳐도 퇴근 무렵이면 이미 가득 찬 사람들 때문에 몇 번이나 그냥 보내야 하는 엘리베이터, 회사에서 전철역까지 가는 시간, 전철을 기다리는 시간, 전철역에서 교육장까지 올라가는 시간... 이런 시간들을 다 합치면 한 시간이 훌쩍 넘었다. 떡케이크 수업이 있는 월요일과 수요일이면 다섯 시부터 마음이 초조했다. 칼퇴를 하기 위해 화장실을 가는 척하며 동료에게 가방을 부탁해 사무실 바깥에서 건네받고는 부리나케 줄행랑을 친적도 있다. 헐레벌떡 강의실에 도착하면 꼬박 세 시간을 서있어야 했다. 떡을 찌는 것도 일이지만 더 큰 문제는 떡 위를 수놓는 꽃을 만드는 일이었다. 왼손은 반시계 방향으로 받침대를 돌리고, 짤주머니를 쥔 오른손은 상하 수직운동을 해야 하며, 두 손의 온전한 하모니가 비로소 아름다운 꽃 한 송이를 피워낸다는 사실을 첫날 알았다. 내가 그런 쪽에 몹시 소질이 없단 사실도 더불어 알게 되었다. 남들은 처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손끝에서 금방금방 장미며 국화를 피워내는데 나는 어찌 이렇단 말인가. 내가 만든 것은 꽃이 아니라 촛농이 흘러넘치는 초 같았다. 수업시간마다 선생님이 안타까운 눈으로 나와 꽃을 바라봤다(나의 제안에 함께 강의를 들었던 회사 동료는 뜻대로 되지 않는 꽃 모양에 스트레스를 받아 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중도 포기해버렸다). 세 시간 동안 끙끙거리며 꽃을 짜고 집으로 돌아오면 자정이었다. 겨우 몸을 누이면 팔다리가 욱신거렸다. 수강생 중에는 창업이나 자격증을 목표로 한 이들이 대부분이었는데, 나는 어쩌자고 이 고생을 사서 하고 있나. 취미라고 하기엔 내게 벅찼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단 하나의 이유는 바로 완성된 꽃 케이크 때문이었다. 삼주 간격으로 꽃 케이크 하나를 완성했다. 꽃을 만들 땐 그렇게 어려워서 끙끙거렸는데, 그렇게 조심조심 만든 꽃들을 뽀얗게 쪄낸 떡 위에 올리면 너무 예뻤다. 아까워서 못 먹는단 말을 실감했다. 한결 더워진 계절도 계절이고 떡은 냉장고에 넣으면 쉬이 굳어 맛이 없어지기 때문에, 꽃 케이크는 만 하루를 넘기지 않고 바로바로 선물했다. 이 예쁜걸 내가 만들었다는 사실에 들떠선 얼른 전해주고 싶어 안달이 났다. 고마운 얼굴들을 하나 하나 떠올리며 누구에게 안겨줄지 고민하는 일이 즐거웠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밤 열 시가 넘어 친구를 만나 케이크를 건넨 날도 있고, 미용실 문이 닫을까 봐 허둥지둥 달린 날도 있다. 이 무슨 고생이야, 묵직한 케이크를 들고 달리려니 마음 한편으론 투덜거리면서도 입가에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실직 후 힘들어하는 선생님의 손에, 아이를 낳은 뒤로 한 번도 보지 못한 오랜 친구의 품에, 미소가 예쁜 동네 미용실 원장님께, 회사를 그만두고 대학에 입학해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동료에게, 요가원 원장님 부부에게 케이크가 배달되었다. 떡케이크를 받은 이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눈부셔서 내게 케이크가 오백 개 정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미소를 매일 볼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나는 예전부터 잘 퍼주는 사람들이 신기했다. 신기하다 못해 이상하게 여겨졌다. 사람이라면 으레 예쁘고 좋은 것을 자기가 많이 가지고 싶은 법인데 주변에 한두 명은 꼭 자기 몫을 흔쾌히 나눠주는 사람이 있었다. 멀리는 호빵맨이었고(호빵맨이 얼굴을 떼어내 친구들에게 나눠주며 "자, 맛있게 먹어"하고 말하는 모습은 좀 그로테스크 하긴 했다), 가까이는 엄마가 그랬다. 때로는 옆에서 보는 내가 때론 짜증이 난다 싶을 정도로 사람들에게 뭐든 잘 나눠줬다. 김치도 우리 가족 먹을 것만 하지 않고 훨씬 더 많이 해서 여기저기 나눠주었고, 과일도 어딘가에서 선물이 들어오면 그걸 죄다 풀었다. 엄마의 그런 모습이 내게는 은근히 스트레스가 되었다. 갖고 있는 뭔가를 나눠주는 게 자연스러움이 아니라 그래야만 한다는 강박이 되었고, 그렇게 힘들어하면서 나눠주는 내가 미웠다. 나는 왜 기쁘고 즐겁게 못 나눠주지? 뭔가를 나누면서도 기쁘고 즐겁지 않고 나눠주고 나서도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묵직한 감정을 솔직하게 고백할 순 없었다. 인색하게 느껴지니까. 그런 나는 싫으니까. 뭐든 잘 나누는 게 미덕이라고 배웠으니까. 언젠가 심리상담 선생님에게 나의 이런 마음을 이야기했다. 선생님의 대답은 이랬다. "지현 씨는 주는 걸 아까워하는 게 아니고, 주는 걸 상대방이 싫어할까 봐 그게 겁나는 것 같아요." 그 말을 듣고 곰곰 생각해봤다. 내가 사람들에게 주는 것은 좋은 것, 값진 것이었다. 선뜻 내주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나누려면 그런 걸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받는 사람이 좋으니까. 그럼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받는 내 마음은 어땠는지도 생각해봤다. 비싸고 좋은 걸 받아야 비로소 고마웠었나? 아니었다. 친구가 직접 담가준 레몬청, 아는 사람이 쓴 책인데 내게도 도움이 될 것 같다며 수줍게 내민 책 한 권, 정성을 담아 또박또박한 글씨로 건넨 편지, 모두 고마웠다. 고마운 마음 가운데 작은 것들을 받아 들고 '애걔...'하고 실망하는 마음이 없는지 스스로 살필 일이었다. 주는 마음이 있으면 받는 마음도 있다. 주는 마음이 당연한 것이 아니듯 받는 마음도 당연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마음의 태도를 바로 세우니 주는 것에도 자유로워졌다. 혹시나 내가 준 무언가를 받고 실망하진 않을까, 그 실망이 물건을 거쳐 나라는 사람에까지 닿으면 어쩌나, 하고 나도 모르게 품고 있었던 두려움이 차차 옅어지는 걸 느꼈다. 그 뒤론 직접 만든 음식을 나누는 일도 훨씬 자유로웠다. 쿠키, 케이크, 빵, 고구마 말랭이... 맛있게 먹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는 게 좋았다(호빵맨의 심정을 알 것도 같고). 퇴근 시간만 되면 말도 없이 슬며시 사라지는 이유를 굳이 알리고 싶지 않았지만, 예쁜 케이크는 나눠먹고 싶었기 때문에 회사에 몇 번 가져간 뒤로 동료들이 대부분 알게 되었다. 책도 그런 마음의 연장선에서 쓸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내가 주는 것이 설령 대단하지 않아도 누군가는 기꺼이 받아 줄 거라는 믿음. 대단한 것을 줘야 한다는 두려움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면 여태껏 나는 책상 앞에 앉아 '완벽한 글'을 쓰겠다며 오지 않을 언젠가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더 이상 내게 나눠줄 떡케이크는 없지만, 나에게는 다행히 문장이 있다. 대단하지 않은 문장이라도 기쁘게 읽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일부러 시간을 들여 블로그에 페이스북에 인스타그램에 감상평을 남겨주는 마음을 헤아리며, 내가 건넨 문장을 읽는 얼굴들을 그려보곤 한다. 꽃잎 한 장, 한 장을 여려 겹 모아야 겨우 꽃 한 송이. 그런 꽃 한 송이가 모여 예쁜 떡케이크 하나가 탄생하는 것처럼 꽃잎 같은 하루, 하루를 모아서 마침내 떡케이크 같은 문장을 쓸 수 있으면 좋겠다. 받아 든 사람들의 표정이 눈부셔서 그간의 힘듦은 다 잊고, 그런 문장을 오백 개쯤 더 가지고 싶은 마음으로 계속해서 문장을 지을 수 있으면 좋겠다. 오늘의 꽃잎 완성(촛농이면 곤란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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