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모험

다시 쓰는 안데르센 세계 명작 - 엄지공주

by 꽃반지
*본 작품은 안데르센의 동화 중 <엄지공주>를 재창작한 것으로, '다시 쓰는 안데르센 세계 명작' 응모작입니다.


"안 돼! 도대체 몇 번째니?"

엄마의 목소리가 집안을 크게 울렸습니다. 엄지가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할 때마다 엄마는 펄쩍 뛰었습니다.

“너같이 작고 연약한 애가 집 밖으로 나갔다간 채 열 발자국도 걷기 전에 저기 저 높은 하늘의 무시무시한 제비에게 잡힐 거야. 한입에 널 집어삼킬지도 몰라!”

엄지는 동화책에서 읽은 흥부놀부 이야기를 떠올렸습니다.

“그렇지만 제비는 사람에게 보물이 나오는 박씨도 가져다주던걸요?”

“그건 동화책에 나오는 이야기잖니. 어서 방으로 돌아가.”

엄지는 잔뜩 토라져서 방에 돌아와 침대에 털썩 누웠습니다. 침대 옆 창문으로 바라본 하늘엔 제비가 날고 있었습니다. 엄마는 제비가 무시무시하다고 얘기했지만, 엄지의 눈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높이 날다가도 땅 위를 스치듯이 낮게 날며 공중에 멋진 곡선을 그리는 제비의 비행이 근사하기만 했습니다.

“제비가 바라보는 세상은 얼마나 멋질까? 한 번만이라도 제비의 등에 타고 저 높은 창공을 훨훨 날아볼 수 있다면!”

엄지는 언제까지고 엄마의 허락이 떨어지기를 기다릴 순 없었습니다.

‘엄마, 제비를 만나고 돌아올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엄지는 책상 위에 편지를 남겨두고 살금살금 집을 빠져나왔습니다. 난생처음 나와 보는 바깥세상은 낯설고 신기한 것 투성이었지요. 엄지는 두리번거리며 걷느라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지기도 했고, 처음 보는 열매를 따먹고 배탈이 나기도 했습니다. 엄지는 길에서 동물들을 만날 때마다 제비가 사는 곳을 물어봤지만, 모두 하늘의 일은 알 수 없다며 고개를 저을 뿐이었습니다.




줄곧 걷기 시작한 지 일주일이 지나자 엄지는 점점 지쳐갔습니다. 어느 날, 걷다 지친 엄지는 풀밭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구름이 끼어 잔뜩 흐린 하늘을 아무리 살펴도 제비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집 밖으로만 나오기만 하면 제비를 금세 만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때, 커다란 풍뎅이 한 마리가 엄지의 머리 위를 빙빙 돌며 큰 소리로 웃었습니다.

“하하하! 네 꼴 좀 봐라. 얼굴은 시커멓게 그을고 머릿결은 잔뜩 엉켜있는 게 아주 못났구나.”

풍뎅이의 우람한 뿔은 세심하게 신경 쓴 듯 매끈하게 닦여 있었고, 진초록의 껍데기는 금빛으로 윤이 났습니다. 엄지는 으스대는 풍뎅이에게 말했습니다.

“넌 내가 우습겠지만 난 지금의 내 모습도 좋아. 햇볕에 그을린 피부도, 비바람에 푸석해진 머릿결도, 잔뜩 거칠어진 발도, 용기를 내어 길을 나서지 않았다면 발견하지 못했을 내 모습이니까.”

툭-투툭. 마침 굵은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풍뎅이의 멋진 진초록색 껍데기 위에 빗방울이 떨어질 때마다 하얗고 동그란 얼룩이 생겼습니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엄지가 풍뎅이에게 다가가자 풍뎅이가 소리쳤습니다.

“가까이 오지 마!”

빗줄기가 굵어질수록 풍뎅이의 몸에 생긴 하얀 얼룩이 점점 커졌습니다. 이윽고 엄지의 눈앞에 서있는 것은 온몸이 새하얀 풍뎅이였습니다. 풍뎅이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은 놀랍도록 아름다웠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들킨 풍뎅이는 창피함에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엄지가 감탄하며 물었습니다.

“넌 하얀 풍뎅이였구나? 그런데 왜 너의 빛깔을 감추고 다녔던 거야?”

“다른 풍뎅이들이 내 모습이 자기들과 다르다며 나를 구박하고 따돌렸어. 그래서 매일매일 온몸에 짙은 초록색 물감을 발랐지. 하얀 빛깔을 들킬까 봐 얼마나 맘 졸였는지 몰라.”

엄지는 풍뎅이를 꼭 껴안아 주며 다정하게 속삭였습니다.

"너는 있는 그대로 아름답고 멋진 존재야."

“정말이니? 그런 말은 태어나서 처음 들어봐. 고마워.”

기쁨으로 온몸이 붉어진 풍뎅이가 더듬이를 흔들며 물었습니다.

그런데 넌 이 숲에서 뭘 찾고 있는 거야?”

“제비를 찾고 있는데 아무도 제비가 사는 곳을 몰라.”

“제비를 찾고 싶다고? 음…….”

깊이 생각에 잠겨있던 풍뎅이가 잠시 뒤 나무껍질에 뿔을 딱딱 부딪치며 말했습니다.

“들쥐를 찾아가 봐. 들쥐라면 제비가 있는 곳을 알 거야. 들쥐의 집은 여기서 삼일을 꼬박 걸어야 도착하는 떡갈나무 숲의 가장 안쪽에 있어. 문을 세 번 두드린 후 암호를 말하면 돼.”



떡갈나무 숲에 도착한 엄지가 삼일 밤낮을 더 걷자 마침내 들쥐의 집이 나타났습니다. 엄지는 풍뎅이가 일러준 대로 문을 세 번 두드린 뒤 암호를 말했습니다.

"세상에서 두 번째로 지혜로운 들쥐."

문이 철컥 열리자, 어마어마하게 많은 책들이 빼곡한 벽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여기 있는 책을 모두 읽는다면 세상의 모든 일을 다 알 것만 같았습니다. 들쥐가 두꺼운 안경 너머로 엄지를 흘끗 바라보며 물었습니다.

"무슨 일로 왔지?"

"제비가 사는 곳을 알고 싶어요."

들쥐가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무튼 인간들이란! 너도 보석이 열리는 박씨를 얻으려는 속셈이지?"

‘동화 속 이야기가 모두 사실이었던 말이야?’ 엄지는 깜짝 놀랐습니다.

“전 박씨 때문에 온 게 아니에요. 다만 제비에게 부탁할 것이 있어요."

“그만 돌아가. 얼마나 많은 인간들이 제비를 귀찮게 굴었는지 넌 상상도 못 할 테니. 제비는 더 이상 인간을 만나지 않아. 제비가 가장 원하는 걸 준다면 모를까."

"그게 뭔데요?"

"두더지의 마음이야."

"두더지의 마음?"

“제비와 두더지는 둘도 없는 친구였어. 그렇지만 제비의 실수로 둘의 우정은 조각났지."

"어떤 실수였는데요?"

"제비가 두더지에게 박씨 하나를 선물했는데, 그만 박씨를 헷갈린 거야. 박씨에서 튀어나온 도깨비가 두더지를 방망이로 마구 때렸지. 제비가 아주 오래전 놀부에게 준 박씨보다 열 배는 무서운 도깨비였다고. 그 후로 제비가 아주 아름다운 보석이 나오는 박씨를 두더지에게 몇 번이고 보냈지만, 한번 틀어진 두더지의 마음을 돌릴 수 없었지."

“다른 방법은 없나요?”

엄지의 물음에 들쥐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습니다.

"이 세상의 어느 책을 뒤져봐도 두더지의 마음을 돌리는 지혜는 나와 있지 않았어. 이 문제만 푼다면 나는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들쥐가 될 수 있을 텐데..."

엄지는 엄마를 떠올렸습니다. 엄지가 어떤 잘못을 해도 진심을 담아 사과하면 엄마는 엄지를 꼭 끌어안아주며 용서해주었거든요. 엄지가 들쥐에게 말했습니다.

"저에게 좋은 방법이 있어요."

들쥐는 눈을 가늘게 뜨고 미심쩍은 눈초리로 엄지를 바라보았습니다.

"어떤 책에도 나와 있지 않은 지혜를 네가 안다고?"

“때론 머리보다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지도 몰라요. 만약 제가 일러준 방법으로 제비가 두더지의 마음을 돌릴 수 있다면, 들쥐가 알려준 것이라고 할게요. 그럼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들쥐가 되는 거예요.”

들쥐가 눈을 반짝이며 엄지에게 지도를 그려주었습니다.

"제비는 아주아주 깊은 땅굴에 살고 있어. 제비는 그날 이후, 오로지 자신의 실수만 책망하면서 날지도 않고 땅속에서 지낸단다. 아무도 만나지 않지만 들쥐가 보내서 왔다고 하면 문을 열어줄 거야."




엄지는 들쥐가 그려준 지도를 따라 아래로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좁고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삼일 밤낮을 꼬박 내려가니 마침내 땅굴이 나왔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아득하고 깊은 동굴이었지요. 엄지가 땅굴 입구에서 크게 외쳤습니다.

"들쥐가 보내서 왔어요!"

엄지가 한참을 기다린 끝에야 제비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제비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엄지를 바라보았습니다.

"들쥐가 너를 왜 보냈지?"

"두더지의 마음을 열 수 있는 지혜를 가지고 왔어요."

의심으로 가득 차 있던 제비의 눈이 반짝하고 빛났습니다.

"세상 그 어떤 보석으로도 돌릴 수 없는 두더지의 마음을 돌리는 방법이 있다고?"

"두더지를 찾아가서 미안하다고 마음을 다해 사과하는 거예요."

엄지의 말을 들은 제비는 미간을 찌푸리며 한숨을 쉬었습니다.

"들쥐가 이제는 늙었나 보군. 그렇게 단순한 방법이 통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엄지가 말했습니다.

“두더지가 원하는 건 값비싼 보석이 아닐지도 몰라요. 같이 가봐요.”

“넌 왜 나를 도와주려는 거야? 다른 인간들처럼 보석이 열리는 박씨를 얻고 싶은 거지?”

“그건 아니지만 저도 당신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거든요.”

"성공한다면 너의 부탁을 들어줄게. 그렇지만 이번에도 실패하면 어쩌지?"

"너무 겁먹지 말아요. 어떤 일이든 해보기 전엔 몰라요. “




엄지는 제비와 함께 땅 속으로 더 깊이 내려가 마침내 두더지의 집에 도착했습니다. 두더지의 집은 제비가 그간 보낸 수많은 박씨 덕분에 아름다운 보석들로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엄지와 함께 문 앞에 선 제비는 긴장으로 온몸이 바짝 굳어있었습니다. 엄지가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제비와 함께 왔어요."

“뭐? 제비? 제비가 왔다고?"

문이 열리자 온갖 보석과 벨벳으로 화려하게 치장한 두더지가 나타났습니다. 두더지는 제비를 보자마자 손을 꼭 잡았습니다.

"왜 이제야 왔어! 그동안 연락도 되지 않고 어딜 가있었던 거야? “

제비는 쭈뼛거리며 말했습니다.

"네가 나에게 크게 화를 낼까 봐 두려웠거든. 차마 얼굴을 볼 용기가 없었어. 비싸고 값진 보석이 열리는 박씨를 아주 많이 갖다 주면 화가 풀릴 거라고 생각했어. “

“내가 널 얼마나 찾아다닌 줄 알아? 저 높은 나무 위에 있는 둥지를 몇 번이나 찾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네가 나타나지 않던 걸!”

“도무지 힘이 솟질 않아 줄곧 땅속에서만 지냈어. 어리석은 실수를 한 나를 탓하면서 말이지. 네가 나를 찾아왔을 줄은 꿈에도 몰랐어. 그럼 이제 나를 용서해주는 거야?”

“우리 사이에 용서하고 말고 가 어디 있어. 가장 소중한 친구는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던걸. 아무리 아름다운 보석에 둘러싸여 있어도 너와 있을 때만큼 즐겁지 않았어.”

두더지와 제비는 서로 맞잡은 손에 힘을 꼭 주었습니다. 그 둘을 바라보는 엄지의 마음도 뭉클해졌습니다. 제비는 활짝 웃으며 엄지를 향해 말했습니다.

"네 말이 맞았어. 약속대로 너의 부탁을 들어주고 싶은데 그게 뭔지 말해주겠니?"

"집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면 당신처럼 멋진 제비가 날고 있었어요. 저 높은 곳에서 보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지 너무 궁금해서 제비를 찾아다녔어요. 제비의 등에 타고 멀리멀리 가보고 싶었거든요."

"얼마든지! 1년 내내 해가 지지 않는 사막을 구경할래? 무지갯빛 눈이 내리는 요정의 나라는 어때? 구름이 둥둥 떠다니는 바다도 있단다. 그 어디든 데려다줄게."

엄지는 가볍게 미소를 지었습니다.

"당신처럼 높은 곳에 올라야만 멋진 세상을 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렇지만 여기까지 오면서 많은 이들을 만나고 또 많은 이야기를 들으며 내 안의 세상이 넓어진 것 같아요. 제가 지금 가장 가고 싶은 곳은 바로 엄마가 기다리는 집이에요. 엄마에게 제가 보고 들은 수많은 이야기를 해줄 거예요. 세상은 엄마가 생각하는 것만큼 위험한 곳이 아니라고요."

두더지가 목에 두른 목걸이를 끌러 엄지의 목에 걸어주었습니다.

"고마워, 작은 친구야. 어떤 보석보다 소중한 나의 우정을 되찾게 해 준 선물이란다."


엄지의 상상대로 제비의 등에 올라타고 바라본 세상은 정말 근사했습니다. 나무들이 성냥처럼 자그맣게 보였고 집들도 성냥갑처럼 작았습니다. 공중에서 마주치는 새들이 엄지에게 인사했습니다.

“네가 그 용감하고 지혜로운 아이로구나? 숲의 나무들이 하는 말을 들었어!”

엄지가 사는 마을에 도착하자 제비가 엄지를 향해 외쳤습니다.

"네 엄마가 누군지 말 안 해도 알겠구나. 저기 창가에서 서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하늘만 살피는 사람이지?"

"네, 맞아요!"

제비의 등에 올라탄 엄지가 엄마를 향해 힘껏 손을 흔들었습니다. 집으로 가까이 다가오는 제비를 보며 엄마의 눈이 휘둥그레 해졌지만, 엄마도 곧 엄지를 발견하고는 웃으며 손을 흔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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