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녀왔습니다, 현관문을 열며 고요한 어둠을 향해 인사를 하는데 느낌이 뭔가 달랐다. 평소와 달리 훈훈한 온기가 감돌았다. 아뿔싸, 보일러를 켜고 갔구나. 주인 없는 빈집에서 열예닐곱 시간을 착실히 돌아간 보일러 덕분에 스위치를 서둘러 끄고 나서도 온 집안이 한참이나 따뜻했다.
언젠가 갑자기 서늘해지더라도
출근하자마자 물 한 모금 못 마시고 보도자료를 쓰고 업체에 연락해 송출하고 잡지 교정을 보고 마감을 하고 인쇄소에 파일을 넘기고 최종본을 검수하고, 이 와중에 사람들의 감정싸움에까지 부대껴야 하는 촉박한 하루를 허겁지겁 삼키면서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날은 누군가의 생일이었다. 불과 몇 달 전 우리가 하루 한 시간씩 전화통화를 할 때만 해도, 곧 다가올 그의 생일에 건넬만한 선물을 고민해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사람이 가까워지고 멀어지는 것에 대해, 그건 인연이나 운명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서일 뿐이라며 간략하게 압축하던 이라 때로 서늘한 느낌이 들었지만 그런 서늘함은 아주 멀리 있을 거라고, 나에게는 아주 늦게 찾아올, 혹은 영원히 찾아오지 않을 계절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돈독한 시간과 깊이를 더해가며 좋은 친구가 될 거라고 마음 한 구석에선 단단하게 믿었던 것 같다. 해가 진 뒤에도 온기가 감돌던 우리의 여름이 끝나고 서늘한 계절이 예고 없이 문득 도착했을 때, 나는 추위를 가려줄 무언가를 서둘러 꺼내 입기보다는 살갗에 닿는 온도차를 느껴보려고 했다. 그가 자주 입에 올리던 사람 사이의 거리라던가 타이밍 같은 말을 복기하면서 아, 나는 이렇게나 여전히 촌스럽구나,라고 생각했다. 두 사람의 거리는 갑자기 문득 멀어졌고 한때 애를 써서 만들었던 타이밍을 위해 둘 모두 어느 새부터 노력하지 않았다. 그가 나의 늦은 퇴근을 기다려 저녁을 같이 먹는 일도, 주말이면 카페에서 일을 하다 오후 느지막이 일어난 그에게 옆자리를내어주는 일도 사라졌다. 자연히 그렇게 된 일인데 하염없이 마음이 서늘했던 것 같다. 처음이 아닌데도, 한두 번이 아닌데도, 마치 처음 맞는 계절을 대하는 것처럼.
야트막한 이 온기가 오래가기를
사람과 사람의 처음을 떠올려보면 무안할 정도로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어릴 때는 관계의 시작이 부단히도 궁금했던 것 같다. '베스트 프렌드'라는 이름을 붙이고 나만 차지하고 싶을 정도로 아꼈던 친구를 떠올려보면, 아무리 생각해도 도무지 우리가 어떻게 친해졌는지 어떤 이유로 친해졌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자기 전까지 얼굴을 떠올리고, 내 모든 것을 내줄 수 있을 정도로 아끼는 사람들과의 시작을 기억할 수 없다는 게 속상하고 이상하기도 해서, 때론 참다못해 상대에게 묻기도 했다. 우리는 대체 어떻게 친해졌느냐고. 상대 역시 기억을 하지 못하는 일이 다반사라 다음에 누군가를 사귀게 되면 꼭 어떻게 친해졌는지 기억하겠다고 다짐했지만, 정신을 차려보면 소중한 마음만 덩그러니 있을 뿐 시작을 도무지 기억할 수 없었다. 그냥 그 사람이 좋아서, 친해지고 싶어서 아니 그런 마음을 인지하기도 전에 소중한 관계가 되어있곤 했다.
그렇지만 어른이 된다는 건 좀 달랐다. 아무렇지도 않은 사이가 문득 가까워진다는 건 어린 날과 비슷해 보였지만, 소중한 관계(라고 믿었던 사이)가 쉽사리 아무렇지도 않은 사이가 되어버리곤 했다. 쉽게 소중해진다는 것과 쉽게 가까워진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그런 끝을 맞을 때면 시작을 떠올릴 수 없어 겸연쩍은 마음만큼이나 뒷맛이 쓸쓸하고 서늘했다. 이미 두 사람 사이의 보일러는 꺼졌는데 내게만 뭉근한 잔열이 남아있었다. 그간 나눈 순간들을 복기하다 보면 내 탓인 것만 같아 뾰족한 감정의 끝을 내게로 겨눠보기도 했다. 영문도 모른 채 보일러가 윙윙 돌아갔던 것처럼 영문도 모른 채 그냥 보일러가 꺼졌을 뿐이니, 나 혼자 애를 쓴들 다시 돌아갈 리 만무했다. 몇 번 그런 일을 겪은 뒤론 별 탈 없어 보이던 관계의 보일러가 어느 순간 작동을 멈출 때마다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냥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물론 내가 아직도 영혼까지 나눌 베프를 찾아 헤매며, 절절 끓는 마음으로 너와 나의 뜨거운 우정을 맹세하고 확인하고 확인받으려는 건 아니다. 다들 바쁘잖은가. 다만 일 년에 기껏해야 한번 보더라도, 설령 한번 보자, 한번 보자는 말 끝에 결국 이삼 년 만에야 겨우 만나더라도 여전히 반가운 사이를 원한다. 자주 보면서 돈독한 사이를 만드는 것도 어려운 마당에, 자주 보지 않으면서 온기가 오래도록 가길 바라는 이 마음이 염치없는 욕심이란 걸 알면서도.
오늘자 페이스북에 알람이 떴다. 2002년에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찍을 장소가 퍽이나 마뜩잖았는지 엘피지 가스실 앞에서 옹기종기 모여 카메라를 보고 웃고 있었다. 사진 속 친구 한 명에게 사진을 보냈더니 "아직까지 저 사진에 있는 모두랑 연락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신기하네^^"라는 답장이 왔다. 그래, 신기한 일이다. 무려 20년 전의 사진이고 우리 모두는 몇 년이 무색하게 보지 못하지만, 가끔 떠올리면 기분 좋은 웃음이 따라오는 여전히 고마운 얼굴들로 내게 남아 있어 줘서. 바쁘게 동동거리느라 보살피지 못해 진즉에 꺼졌을 보일러를, 나 대신 말없이 돌보고 보듬어주는 마음들에 가만히 기댈 뿐이다. 이들 덕분에 야트막한 온기가 오래도록 가길 바라는 욕심을 힘껏 부리며 살고 있다.
뒤늦게 고백하자면 그날 밤, 뭉근한 보일러의 온기도 거의 가신 늦은 시각에 생일을 맞은 그 친구가 연락을 해왔었다. 그가 꺼낸 이야기는 생일과는 전혀 관계없는 주제였고 나는 짧은 대답으로 의견을 전했다. 덧붙일 수 있었을 것이다. 생일 축하한다고, 너의 생일을 기억하고 있었다고. 어쩌면 그 친구가 허물없이 "있잖아, 실은 오늘 내 생일인데"하고 넌지시 한 마디를 가볍게 하기를 내심 기다렸을 수도 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이제는 우리가 생일 축하한다는 말도 주고받기 힘든 사이가 되어버렸다는 것을 알았다. 방바닥을 손바닥으로 짚었다. 곧 사라질 이 온기가 부디 오래도록 가기를 희망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