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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반지 Apr 15. 2021

저는 여전히 아이 같아요

상견례 체험기


우지끈.

내 곁에 앉아있던 동생이 혀를 깨물었다. 도기 재질의 식기와 쇠로 된 포크, 나이프가 부딪는, 청량하다 못해 서늘한 소리가 커다란 홀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챙챙-챙챙과 그다음 챙챙-챙챙 사이를 메우는 짧고도 무거운 침묵을 틈타 혀 깨무는 소리가 내 귓가에 닿은 것이다. 실은 소리 하나 없는 고요한 적막이라 할 지라도 바로 옆에서 혀 깨무는 소리 따위가 들릴 리 만무했다. 한 손엔 포크, 한 손엔 나이프를 쥐고 잔뜩 긴장한 채 나름의 챙챙-챙챙에 골몰해 있동생이 나지막이 신음하며 "흐어 깨무러뜨아..."하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 옆을 보았다. 눈을 내리깐 채 포크로 애꿎은 샐러드만 뒤적이던 맞은편 여인도 동생의 신음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니까, 나는 저 여인의 시누이가 된다.


Before

결혼에 대해서 줄곧 심드렁하고 무감각하던 나와 달리 동생은 늘 결혼을 꿈꿨다. 제사를 지내러 부산에 내려가면 나는 카페에 처박혀 글을 쓰고, 동생은 사촌동생 손을 맞잡고 타로를 보러 다녀올 정도였다. 2년 뒤엔 좋은 사람 만난대! 몇 살엔 결혼한대! 미래를 한낱 카드  장에 기대는 행동이 사뭇 철없게 여겨졌지만 동생의 달뜬 얼굴을 보며 그래 너 좋으면 됐다, 하고 웃어넘겼다. 그러던 녀석이 몇 달 전 내게 시간이 언제 되냐고 물어왔을 때, 나는 되려 "정말 (그 사람을) 사랑해?"하고 되물었다. 불과 몇 달이 지났을 뿐이지만 지금은 그때의 내 질문이 무례했다고 생각한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겠나. 타로 카드로 점친 미래를 무턱대고 신뢰할 수 없는 것처럼 사랑한다는 한마디 말로, 일순간의 감정으로 사랑을 확인할 수는 없는 것이잖나. 한 치 앞을 알 수 없어 희뿌옇고 아득하기만 한 것들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앞으로 걸어 나가는 일뿐이고, 동생은 그걸 해보겠다고 용기 있게 발을 디딘 셈이니 그저 축하한다고 말해주면 될 일이었다. 날짜는 나의 일정에 맞춰 잡았다.


고백하자면 처음에는 가지 않으려고 했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 가깝게 살고 있어 멀리 사는 나 하나쯤은 빠져도 될 것 같았고, 낯선 사람들과 얼굴을 마주하고 입가에 경련이 날 것 같은 미소를 지으며 뭔가를 우물거리거나 씹는 일은 상상만으로도 진이 빠졌다. 생각을 바꿔먹은 것은 상대측 동생이 둘인 데다, 둘 모두 키 190에 달하는 건장한 체격의 청년들이라는 정보를 입수하고 나서다. 쪽수로 비비는 자리(?)인데 우리 쪽이 셋이고 상대 쪽이 다섯이면 너무 불리했다. 여차하면 두 청년들이 동생의 팔 한쪽을 각각 차지하고 포박할 수도 있었다. 뭐어? 니 깟게 우리 누나가 맘에 안 든다고? 아아, 조폭영화를 너무 많이 봤다. 표 있으면 가고 없으면 말지의 마음으로 명절 때도 예매하지 않기차표를 한 달 전부터 예매했다. 여간해선 평소에 연락이 없고 그나마 전할 말이 있으면 카톡으로 보내던 엄마는, 날짜가 정해지자 수시로 전화를 걸어왔다. 큼큼, 괜히 헛기침을 하며 사무실을 나와 주로 회사 옥상에서 전화를 받았다. 상견례 당일에 떡을 해야 하니?  옷은 뭘 입으면 좋겠니? 니 책을 한 권씩 돌릴까?(아니!) 통화가 끝나면 카톡으로 엄마와 쇼핑몰 링크를 주고받았다. 이건 어때? 색이 좀 그렇다. 이건 어때? 디자인이 별로야. 이건 어때? 내가 소화를 못해. 이건 어때... 상견례를 앞둔 며칠 전, 동생이 내게 연락을 해왔다. 누나 옷 뭐 입고와. 드레스 코드가 있나. 아니 그냥 단정하게 입고 오라고.


After

당일, 아빠는 새벽부터 목욕을 하고 이발을 했다. 동생은 새로 산 정장을 입었고 엄마도 내 앞에서 입고 벗고를 하다 마침내 합격 사인을 받은 옷을 입고는 거울 앞에서 몇 번이나 옷매무새를 만졌다. 나도 평소엔 잘 신지 않는 구두에 정장 차림이었다. 약속 장소에서 역시 정장 입은 한 무리의 사람들을 만났다. 그 뒷이야기는 여느 사람들과 비슷하게 흘러갈 것이다. 축 경기 전 서로 마주 보고 서서 얼굴을 확인하는 것처럼, 넓은 홀로 안내받은 우리는 각자의 진영에 앉아 맞은편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자기소개를 했다. 잔뜩 긴장한 동생은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 있었다. 우리 남매 맞은편에 앉은 여인 역시 긴장했는지 줄줄이 나오는 음식에는 손도 못 대고 샐러드만 뒤적거렸다. 각자의 자식을, 또 상대의 자식을 칭찬하고 이제는 가족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접시처럼 식탁 위를 몇 번이나 오갔다. 가족, 가족이 되는 건가. 맞은편에 앉아있는 여인과 그녀의 부모, 키가 멀거니 큰 두 청년들과 가족이 되는 건가. 부부는 0촌, 부모와 자식은 1촌, 그렇다면 나와 저 사람들은 몇 촌일까. 사촌쯤 되려나. 이웃사촌이 진짜 사촌이 되는 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긴장 속에 음식을 퍼넣다 보니 그 자리에서 음식을 먹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 것 같았다.


식사가 어느 정도 끝나갈 무렵, 맞은편 여인의 어머니가 엄마에게 분홍 보자기로 곱게싼 봉투를 내밀었다. 옆에서 흘끗 들여다보니 결혼 날짜가 적혀있었다. 뭐가 없고 뭐가 없어서 좋은 날이라고 했다. 엄마는 분명 이런 자리가 처음일 텐데도 분위기를 주도하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둘이서 잘 살길 바란다, 예식장은 여기가 어떻겠느냐, 다른 식을 참석해보니 그 시간대는 별로였다... 맞은편 여인의 어머니는 사실 하나도 모르겠다고, 마음은 아이인데 몸만 커서 어른이 되었다고, 되려 딸에게 많이 배운다는 속내를 털어놓았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녀의 말에 깊이 공감했다. 나는 여전히 문방구 앞 뽑기를 좋아하고, 동전이 없으니 뽑기는 다음번에 하자는 애인에게 심통을 부리고, 아침마다 출근하기 싫다며 보는 이도 없는데 땡깡을 피운다. 그런 내가 짐짓 번듯한 척하면서 이런 자리에 앉아있고 멀지 않은 미래에는 어느 여인의 시누이가 되고 한 아이의 고모가 된다니. 자리가 파하고 뚜벅뚜벅 앞서 걸어가는 동생의 뒷모습을 보며 무감하게 흘러버린 시간을 체감할 뿐이었다. 청년 둘에게 포박당할까 걱정했던 내 염려가 무색하게 어딜 가든 내 뒤만 졸줄 따라다니던 꼬맹이는 훌쩍 자라 있었다. 동생도 아이의 마음일까. 모두 어른의 몸을 하고 있지만 여전한 아이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걸까. 몸이 성큼성큼 자라다 차츰차츰 시든다면 마음은 어떨까. 단단하게 여물어 가다 몇 개의 구멍이 생기고 그 안으로 바람이 스며들어 마침내  바스러지는 걸까.


아귀가 맞지 않는 작은 돌들을 쌓고 또 무너트리며 비로소 어떤 형태를 만들어가는 것처럼, 내게 가족은 그런 의미다. 가족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시간과 노력으로 만들어 가는 것, 서로를 사랑하고 미워하고 오해하고 또 화해하면서 관계의 돌들을 쌓고 무너트리며 차차 가족이 된다는 것을 이제야 겨우 감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 내게 가족이 되자, 하고 한데 모인 자리의 감각은 생경했다. 차근차근 형태를 만들며 가족이 된 지금과는 달리, 가족이라는 빈 상자가 덜컥 주어진 기분이었다. 물론 상자를 받아 든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 동생이고, 나는 동생이 상자를 무엇으로 채우는지 궁금해하며 가끔 들여다볼 뿐이겠지만. 아직 동생의 결혼식이 1년도 넘게 남았는데 눈물이 슬쩍 나서 괜히 하늘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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