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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반지 Apr 19. 2021

꺼져줄게 잘 살아


"아가씨, 만난 김에 잘 됐네. 이사 좀 가줬으면 좋겠어."

마당에서 나를 마주친 집주인 아줌마가 의아한 얼굴로 대뜸 꺼낸 한마디였다. 직장 다니는 걸로 아는데 왜 얘가 월요일 한낮에 여기 있지, 하는 그녀의 궁금증 섞인 표정과 내 얼굴을 보자마자 튀어나온 대사가 포개지지 않아서 잠깐 멍해졌다. 갑자기 이사라니요? 둥그렇게 눈을 뜬 나의 물음에 대한 그녀의 답은 이러했다. 작년에 이사를 가고 싶다고 하지 않았느냐, 안 간다고 하다가 갑자기 (옆집처럼) 간다고 하면 곤란하다, 몸이 아프다, 집을 관리할 여력이 없다, 아들이 돈을 해준다고 했는데 어떡하냐, 계속 살겠다고 하면 월세로 바꾸겠다... 마치 한 가지 문제에 정답이 여러 개인 것처럼 아줌마는 쉼 없이 뭔가를 이야기했지만, 정답은 아무것도 없는 문제였다. 작년 여름이었다. 마당에서 마주친 아줌마가 내게 이사를 갈 것이냐고 물었고, 이직을 하는 바람에 회사가 집에서 멀어져 이사를 고민 중인데 가게 되면 미리 말씀드리겠다고 답했었다. 아주머니가 몸이 아픈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게 멀쩡히 살고 있는 세입자를 갑자기 내쫓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으며, 애초에 이 집은 집주인이 살고 있는 것과 다른 건물이라 따로 관리가 되는 부분이 없었다. 아가씨가 이사 간다고 해서 아들에게 (보증금 몫의) 돈을 해놓으라고 했는데 어떡하느냐는 그녀의 푸념이 계속되었는데, 이사를 고민 중이라고 1년 전에 한마디 했을 뿐인데 그걸 빌미로 보증금을 마련하고 있다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무런 논리가 없는 그녀의 모든 말을 한 문장으로 축약하면 "내 집에서 나가"였다.


분한 마음에 방으로 돌아와 날짜를 셈해봤다(그 뒤로도 집주인은 두어 번 나를 문밖으로 불러내 문 앞에 박스를 치우라거나 라이터를 좀 달라거나 등의 이야기를 하며, 길고도 지루한 이야기를 연거푸 늘어놓았다). 올해 10월이면 이 집에 들어온 지 만 4년이었다. 2년이 계약기간이었고 그 뒤의 2년은 계약이 자동 연장되었으니, 이 집에서 더 살고 싶으면 올해에 다시 계약 연장을 해야 했다. 그렇지만 "웬만하면 나가줬으면 좋겠다"는 그녀의 말에 나도 더는 머물고 싶지 않았다. 4년 전 가을, 급하게 들어온 집이었다. 다니던 회사가 갑자기 집에서 편도 1시간 30분 거리의 동네로 이전하는 바람에, 여러 가지 악조건을 감수하고 계약했다. 그땐 이렇게 오래 살게 될지 몰랐다. 당시 사귀던 남자 친구와 결혼하기 전까지, 길어도 2년 정도의 계약기간을 채우면 자연히 나가게 될 집이라 생각했다. 햇볕이 잘 들지 않는다거나 주변에 편의시설이 없다거나 층간 소음을 넘어 층간 굉음이 들려오는 등의 문제도 그래서 삼킬 수 있었다. 곧 나는 여기를 뜰 거니까.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4년째 여기 살고 있었다. 이사를 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방바닥에 벌렁 누워 천장을 봤다. 누렇게 바랜 흰 벽지를 스크린 삼아 지난해 여름, 이 집 저 집을 기웃거리던 내 모습이 떠올라 서글퍼졌다. 퇴근 후 갑작스레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하염없이 높은 오르막을 오르고, 집을 보고 난 후 그 집 담장 앞에 쪼그려 앉아 오르막보다 높은 보증금에 한숨을 쉬던 늦은 밤이 떠올랐다. 몇 채의 집을 봤는지, 보증금이 얼마였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이사는 머리가 아니라 몸이 기억했다. 땀으로 젖어 등에 달라붙은 셔츠의 축축함과 뻐근한 종아리의 감각만이 남아있었다. 나는 고민을 유예했을 뿐이었다. 내 집이 생기기 전까지, 어쩌면 평생 이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입안이 썼다.


20대의 나를 정부에서 지켜봤다면 미래대책위원회를 소집하고 '당장 내일에 대한 대책도 없는 저 인간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심도 있는 토론이 펼쳐졌을지도 모른다. 그때의 나는 미래에 대한 걱정은 누구보다 많았지만 대책이 하나도 없었다. 견디다 못해 회사를 도망 나오면 그 길로 막막했다. 당장 다음 달 월세는 어떻게 내며, 다른 회사를 들어간들 비슷할 텐데 또 어떻게 견딜까에 대한 고민으로 지레 겁에 질렸다. 그렇지만 오늘의 나는 조금은 달라졌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어둠의 터널을 통과하며, 대책이 없기로는 지난날과 비슷하지만 적어도 대책을 고민한다는 점에서 훌륭한 30대가 된 것이다. 계약기간이 되기 전에 방을 빼게 되면 세입자를 구해놓고 나가라는 집주인의 말에, 나는 작년 말에 개정된 주택임대차 보호법을 뒤졌다. 아줌마는 내게 "섭섭하게 듣지 말라"는 말을 덧붙였지만, 이미 충분히 섭섭하기 때문에 여차하면 법의 카드를 들이밀 것이다. 직장에 속해있지 않으면 대출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기에, 새로운 이삿집을 구하기 전까진 출근길 전철역에서 달릴 때마다 아드레날린처럼 솟구치는 퇴사 욕구를 눌러야 한다. 내 돈이지만 돈을 돌려받기 전까진 내 돈이 아니기 때문에 이사 나가기 전까지 집주인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눈치도 필요하다.   


아줌마는 내게 마지막으로 "아가씨 시집 안가? 시집이나 가"라는 말을 했다. 시집가야 엄마가 보람이 있다고. 우리 엄마는 즐겁게 잘 살고 있으니 보람까지 걱정 안 해주셔도 된다는 대사가 목구멍에서 찰랑거렸다. 집주인 아줌마가 나를 볼 때마다 한 말이었다. 그동안은 젊은 사람에 대한 나이 지긋한 이들의 그저 그런 걱정인 줄로 여겼는데, 오늘 곰곰 생각해보니 집을 빼줬으면 좋겠다는 완곡한 표현이었다. 이 글의 원제는 알랭 드 보통의 책 제목을 살짝 비튼 '집의 기쁨과 슬픔'이었으나 쓰다 보니 집주인의 정서적 갑질에 대한 통렬함이 극에 달해 제목을 바꿨다. 가수 지나의 <꺼져줄게 잘 살아>의 첫 소절을 옮겨본다.

똑바로 얘기해 날 보고서 내 눈을 쳐다보고 말을 해
헤어지잔 그 말이니 나와 끝내고 싶은 거니
알아 넌 여자가 생긴 거야
알아 넌 내게 싫증 난 거야
다만 눈물이 차오르지만

예정 없는 이별 통보는 서럽다. 그녀가 끝내고 싶다고 내 눈을 쳐다보며 똑바로 말을 했으니 나 역시 깔끔하게 끝내 줄 것이다. 그녀에게 다가오는 7월에 이사 가겠다는, 정중하고도 완곡한 메시지를 보냈다. 울고 싶지 않지만 다만 눈물이 차 오르는 건 막을 도리가 없다. 촛불처럼 꺼져드리겠습니다.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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