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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반지 May 13. 2021

닉김찾아 삼만리(2)

새 집 앞

찾았다 요놈 

말다툼 중에 애인이 "지상층, 채광, 산책, 출퇴근 시간, 주변 카페 및 편의시설, 크기, 추가 대출 이자... 여기서 좀 양보할 수 있는 건?"하고 따져 물었을 때 우선순위대로 1) 일단 낡은 집이라도 넓은 게 중요 2) 채광 3) 산책이라 답했다. 짐이 많았다. '작가'라는 허울 좋은 포지션 때문에 짐이 많다고 하면 상대는 으레 책이겠거니 하고 너그러이 넘어갔지만 내게 책은 책이지 짐이 아니었다. 책은 책대로 많았고 짐은 짐대로 많았다. 이사를 할 때마다 '여자 혼자 사는 집'이라는 말에 속았다며 이삿집을 나르는 아저씨들이 학을 뗐고, 그때마다 다음에는 짐을 늘리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더라도 정신을 차려보면 집의 공간 곳곳마다 자질구레한 짐들이 어김없이 흘러넘쳤다. 크게는 사놓고 일 년에 두 번 정도탄 실내 자전거부터 개봉 후 도로 박스에 곱게 넣어놓은 스텝박스, 작게는 새로 산 옷에 달려있던 옷핀이며 백화점에서 받은 향수 시향지까지. 내가 머무는 공간에는 언제나 종류와 크기를 막론하고 온갖 짐들이 빼곡했는데(자랑이 아니라는 것쯤은 안다), 미니멀리즘 미니멀리즘 하며 가진 물건을 갖다 버리는 걸 권유하고 옹호하는 이 세태와는 달리 나는 그냥 나 자신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상패도 갖다 버리는 신애라 같은 인물도 있는 반면, 눈에 보이는 종이조각마다 아이디어 스케치랍시고 한 단어 한 문장을 끼적거려 놓는 바람에 껌종이 하나 제때 버리지 못하는 나 같은 인물도 있는 것이다. 얼마 전엔 스스로를 통찰하고 그간의 행적을 반성하는 의미에서 정리 전문가로 유명한 곤도 마리에의 다큐까지 시청했으나, 도무지 정리를 못하겠다며 울상으로 등장한 다큐 속 인물들의 집은 하나같이 정갈하고 깨끗해 괜한 배신감이 들어 절반도 시청하지 못하고 꺼버렸다. 아무튼 나머지 모든 조건을 포기하더라도 집이 커야 했기에 해가 잘 들지 않는 집이라도 감내해야 했다.


조금 커진 내 동공에 맺힌 그 집은 울창한 숲을 마주하고 있었다. 시퍼런 담장을 경계로 공기마저 나뉘는 듯 숲에서 넘어온 선선하고 쾌적한 공기가 집 주위를 감싸고 있었고, 눈동자에 순간 무슨 필터가 입혀졌는지 오래된 건물 벽면은 햇빛을 퉁겨내 윤슬처럼 반짝거렸다. 튕겨 나온 햇살은 넓게 난 유리창을 넘어갔다. "여기가 바로 산책로예요" 숲 속을 가리키는 어머니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이 닿은 곳엔 숲으로 연결되는 길이 있었고, 길가엔 들풀이 한들거렸다. 집안에 들어가 실평 수를 가늠하기도 전에 바람에 흔들리는 들풀의 박자에 맞춰 동공이 흔들렸다. 조건 2)와 3)이 동시에 충족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집에 들어서자 게임에서 미션 클리어를 하면 흘러나오는 경쾌한 종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부동산 앱에서 본 사진보다 훨씬 넓었고 사진보다 훨씬 아늑했다. 유리창에 드리워진 두 겹의 커튼이 햇살을 적당히 머금어 살랑거렸다. 이 집은 원더랜드였다. 원더랜드를 찾는 게 아니라고 애인에게 힘주어 얘기했거늘, 나는 어쩌면 원더랜드를 찾고 있었던 거였나. 집을 내놓은 이가 무슨 심산인지는 몰라도 대충 찍어 대충 내놓은 덕분에 내게도 기회가 온 건지 몰랐다. "계..." 신을 채 벗기도 전에 계약하고 싶다는 한 문장이 올라오는 걸 애써 삼켰다. 이미 판단력을 잃었으면서 집의 면면을 꼼꼼히 살피는 척했다. 스위치를 딸깍거리며 불을 켜지 않아도 환한 집임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확인했고 현관과 반대방향으로 난 뒷문을 열어 바람이 시원하게 드나드는 것도 확인했다. 수도를 한번 틀어보았고 아주머니가 쓰고 있는 12자 장롱도 괜히 한번 열어보았다. 이 방 저 방을 둘러보며 방 컨디션을 체크하기보다는 침대를 여기 놓는 게 좋을지 저기 놓는 게 좋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내 옆에 서있던 애인에게 목소리를 낮춰, 그렇지만 애써 아주머니에게 숨기려는 기색 없이 적당한 크기의 톤으로 "이 집 계약할래"하고 말했다.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그가 으레 그러하듯 10분만 더 생각해보라며 내 손목을 가볍게 잡았다 놓았다. 더 놓친 건 없는지 이 방 저 방을 둘러보던 그 역시 10분이 채 지나지 않아 계약해도 될 것 같다며 잠깐 숨을 고른 뒤 "그 느낌이 뭔지 이제야 알 것 같아"하고 말했다. 나는 거보라는 듯 그를 향해 가볍게 눈을 흘겼다.


그리고, 뒷 이야기 

그 뒤의 이야기는 집을 구하는 이들의 여느 이야기와 비슷하게 흘러간다. 아주머니에게 커튼을 두고 가시라며 비싼 빵 몇 개를 사다 손에 쥐어드렸고, 그날 저녁에는 꽤 멀리 살고 있던 집주인이 연희동까지 와서 계약서를 썼다. 집을 구하는 이들과 다소 다른 점이 있다면 세 번이나 계약서를 새로 쓴 것이지만. 부동산을 끼고 계약서를 작성하면 지불해야 할 몫이 돈 백만 원가량이라는 걸 확인한 뒤 나는 한 푼이라도 아껴보겠다고 집주인과 직거래를 하기로 마음먹었다(겁도 없이). 돈을 건네받는 집주인 입장에서는 거리낄 게 없으니 흔쾌히 승낙했고, 나는 각종 블로그를 요리조리 뒤져가며 임대차 계약서 영수증 양식을 만들었다. 그러나 첫날 작성한 계약서는 임대차 기간이 잘못 기재되어 반려되었고, 미안한 마음에 집주인이 살고 있는 동네까지 찾아가 두 번째 계약서에 도장을 받아왔으나 결국 부동산을 끼지 않으면 계약 뒤의 절차가 진행될 수 없어 결국에는 다시 계약서를 써야 했다. 집주인에게 세 번째 계약서를 써야 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말해야 하나 싶어 만 하루를 끙끙거렸다. 내 얼굴에 뭘 뱉는지 모를 격이지만 이사를 준비하는 이들과 다소 다른 점을 하나 더 오픈하자면, 일기에서 살짝 공개하기도 했지만 지금 살고 있는 집주인 아주머니에게 정말 크게 혼났다. 이사를 간다는 말에 내가 회사에 간 사이 아주머니가  부동산 주인과 함께 집에 들렀는데, 정리 안된 방 상태에 기함을 하며 내게 전화해 소리소리를 지른 것이다. 그때는 마침 외부 출장으로 스튜디오에서 몇 시간째 엉덩이 한번 못 붙이고 회사 제품 사진을 촬영하다 밥을 막 한 술 뜨려던 참이었, 잠시 나갔다 온다며 20분을 넘게 들어오지 않다가 눈물을 흘리며 돌아와 뒤늦게 식은 밥을 삼켰다. 스튜디오 실장님과 과장님 모두 집 없으면 서럽다고 말하며 나를 달랬지만 두 분 모두 집주인이어서 큰 위로가 되진 않았. 그날 아주머니에게 보증금 일부를 받아 새 집 계약금으로 넣어야 했기에, 화가 잔뜩 나서 주지 않겠다고 소리치는 그녀에게 일주일만 시간을 달라고 읍소해 겨우 계약금을 받았다.


4년 전 첫 대출을 할 당시에 대출을 한다는 사실 자체에 지레 겁을 먹고 움츠려 있다가 잘 알아보지 않고 진행했는데, 이제야 대출 관련 상품을 알아보면서 내가 터무니없이 비싼 이자를 내면서 살았다는 걸 알게 됐다. 그때 잘 알아봤으면 이렇게 새벽마다 계산기를 두드리며 머리 싸매지 않아도 될 텐데 하는 생각을 하루에 수십 번은 했다. 세상 사는데 요령도 용기도 없었던 그때의 나와 비교하면, 지금은 많이 발전했고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으로 위로해봤지만 신경을 너무 쓴 탓에 날마다 위벽이 녹아내리는 것 같은 통증에 시달렸다. 정리되지 않은 집 상태도 그랬고 나의 무지로 인해 꼼꼼하지 못한 재무상태도 그랬고, 조금 싼 금리의 상품들이 한 끗 차이로 교묘하게 비껴가는 상황 또한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다(요즘 많이 쓰는 카*오 뱅크의 경우에는 12개월 근속자가 신청할 수 있는데, 나는 작년에 이직을 해서 11개월인 식이다). 평일엔 회사를 다니고 퇴근하면 집을 보러 다니고 출간 준비를 하고 주말에는 유튜브를 한다고 동동거렸으니 집이 엉망인 것은 당연지사이고, 과거 역시 어리고 뭘 몰랐으니 실수할 수도 있지만 몸과 마음이 피곤하다 보니 급기야 내가 심각하게 문제 있는 인간처럼 여겨졌다. 나는 왜 이렇게 살아왔을까?라는 자조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땅굴을 팠다. 잠이 오지 않을 때마다 개통령 강형욱 훈련사의 유튜브 영상을 자주 봤는데, 문제 있는 개들에게 제시하는 그의 루션은 비단 개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었다. "스스로가 하나하나 극복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대신 대가를 치러주는 사람을 만나면 (안 좋은 기질이) 진해진다"는 그의 말이 깊게 남았다. 실수가 있다면 수습하면 되는 것이고 나는 스스로 대가를 치르면서 하나하나 극복해 나가고 있으니, 문제 있는 인간으로 남진 않겠지 라는 위안을 얻으면서 말이다.


찌질한 이야기를 잔뜩 늘어놓은 김에, 20인치 캐리어 하나 들고 서울에 올라와 살았던 연희동 첫 집 이야기를 더한다. 가진 돈도 없고 집을 구하는 일을 해본 적도 없는 나는 월급 1/3에 해당하는 꽤 비싼 월세를 감당하면서 정말 관 짝 만한 방에 살았다. 누우면 철제문에 정수리가 닿아 서늘했고 발가락 끝에는 플라스틱으로 된 싱크대 발판의 미끈한 감촉이 느껴지는 방이었다. 나는 그 방에서 반년 가량을 살았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 사실도 놀랍지만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 방에 친구를 초대했다는 거였다. 대구에서 올라온 친구가 서울에 온다며 유부초밥까지 잔뜩  와서는 방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는데, 자다가 빨래 건조대가 부서져서 친구의 몸 위로 떨어진 기억이 난다. 이제는 일곱 살 딸아이의 엄마가 된 친구는 다시 연희동으로 이사간다는 소식에 축하를 해줬다. 그때 너무 미안했다고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하자 친구가 인생에서 가장 즐거운 기억 중 하나였다며 정말 로 즐거웠다고 답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좀 울었다. 그 뒤로 연희동에서 이사를 몇 번하며 나중에는 어느 정도 구색을 갖춘 방에 살게 됐지만, 뭐랄까. 나는 연희동에서 살았던 기억을 떠올리면 빨래 건조대가 우두둑 부서지던 소리와 잠에서 깬 친구의 놀란 얼굴만이 또렷하다. 나머지 기억은 모두 블러 처리된 것처럼 희뿌옇다. 내가 다시 연희동으로 돌아간다는 건 서울에서 처음 생활을 시작했던, 아무것도 가질 수 없고 욕심낼 수 없었던 작은 방에서 벗어나 이제는 나만의 무엇을 비로소 가져봐도 된다는 의미로 여겨도 될까. 뭘 쌓아놓은지도 모른 채 넘쳐나는 짐에 허덕이는 게 아니라, 좋아하는 것들만 세심하게 골라 삶의 공간에 들여놓고 살 수 있을까. 새 집의 계약서에는 집이 재개발 구역에 묶여있어서 개발이 시작되면 세입자는 떠나야 한다는 조항이 붙어있다.  집의 마지막 추억 내가 될,  집을 떠날 때의 나는 어떤 사람일.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다시 연희동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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