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시간이 필요해

하면 좀 어떻고 안하면 좀 어떤가

by 꽃반지

'여러모로 춥다'는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퇴근길. 지난 겨울 줄곧 마스크를 쓰던 내 생각이 나서 샀다며 친구가 며칠전 건네준 마스크를 써도 어색함이 없는 계절이다. 집에 돌아와서는 어제 먹다 그대로 둬서 딱딱하게 굳어버린 베이글과 차를 마시며 퇴근길 지하철에서 읽던 책을 계속해서 읽었다.


나는 대체로 늘 바쁘다. 퇴근하기 무섭게 무언가를 하고, 한달 여덟번의 주말 중 집에 머무르는 날이 하루 이틀일 정도로 바깥을 나돈다. 서점을, 공연장을, 이름모를 먼 도시를, 강의실을. 기본 세팅이 이미 빡빡한데다 친구들의 만남까지 테트리스 퍼즐처럼 시간의 빈 공간에 이렇게 저렇게 욱여넣다보면 휴식의 시간이 전혀없다. 친구들과 약속을 잡을라치면 스케줄러에 빈칸이 없어 웬만해선 다음 달로 넘어가고, 회사 사람들이 다정하게 건네는 '오늘 퇴근 하고 한잔 어때요?'란 말이 나에겐 전혀 해당사항이 없어진다. 무언가의 일정이 나를 또 기다리고 있기에. (물론 좋아서하는 일이지만)주말 저녁 친구녀석을 불러 한상 거하게 차려주고 차까지 타주고 나면, 그야말로 기진맥진이다.


모두 나를 위한 시간 같으면서도 대체 나를 위한 시간은 어디있는지 아리송하다. 이것도, 저것도, 그것도 모두 나의 발전, 더 나은 나-가 있긴 한겁니까-를 위한 한걸음일진대! 한걸음 한걸음이 여러방향에 포진해있다보니 어디를 향해가는지도 모르면서 어설프고 요란한 탭댄스 스텝을 밟고있다.


오늘은 좀 쉬어야지. 몸이 쉴라치면 마음이 바빠온다. 마음이 몸에게 묻는다. '과연 휴식을 요구할만큼 생산성있는 하루를 보냈니?''전에는 이보다 더 힘들었을 때도 잘 버텼잖아, 왜 이래?' '오늘 쉬면 내일 또 쉬고싶다?' 등 마음이 쏟아내는 질문은 끝이 없다. 몸이 대답한다. '닥쳐.'


오늘도 그랬다. 가방을 벗어던지고 대차게 밖으로 나갔어야 하는데, 어제 먹다 둔 마른 빵을 보니 갑자기 차 한잔이 간절해졌고, 차에 빵을 곁들여먹으니 슬그머니 읽던 책을 다시 펼치고, 그러다보니 따닷한 장판 속으로 기어들어가 슬금슬금 엎드리고 초조하게 초침을 바라보며... (잠이 들었다가 깨어나보니 일요일!은 아니지만 일요일로 이동합니다. 뿅!)

2018-10-28-13-21-45.jpg 일요일 오후 한시

어제부터 몸이 좋지 않다. 어제 모처럼 차려입고 길을 나섰다가 찬바람이 '어디 나를 앝잡아보고 이따위로 입고 나오냐'며 나의 두 뺨과 훤한 목덜미와 허벅지를 매몰차게 때렸다. 꿈뻑꿈뻑. 알람소리에 눈을 떴지만 다시 까무룩 가라앉기를 몇 차례. 그분이 오셨구나. 오전에 강의가 있어 나갈까말까 몹시 망설이다가 비척비척 일어나 춥고 맑은 바깥으로 나섰다. 베트남 여행 때, 생각보다 추운 날씨에 놀라 급하게 좌판에서 사입은 남성용 저지를 걸쳤다. 바보같다. 강의를 듣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크루아상이 간절했다. 읽고있는 여행기의 주인공이 마침 유럽여행 중이라 툭하면 크루아상을 먹는 통에, 나까지 덩달아 들썩거린다. 당장 유럽여행은 못 가지만 크루아상은 손에 쥘 수 있으니까. 큰 크루아상 하나를 쟁반에 담아 1층에서 계산을 마치고 2층으로 올라갔다. 계산하는 점원이 다른 사람에겐 '드시고 가시나요?'하고 묻던데 나에게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포장해주었다. 어벙벙한 저지때문일까. 당장 크루아상을 베어물 것 같은 허겁지겁한 얼굴때문일까.


어제 추위에 잔뜩 떨었더니 몸이 좋지않다. 크루아상이 먹고 싶어서 사러 나왔다. 저 먼동네의 크루아상 맛집을 갈까하다 가까운 곳에 들렀는데, 습한 날씨때문인지 크루아상은 눅눅하고 식감이 산뜻하지가 않다. 창가 옆에 붙어앉아 한입두입 먹다보니 그 큰걸 다 먹었네. 집에는 햇살이 잘 들지 않아서 밖에 나가면 창문 너머를 오래 바라본다. 사람도 지나가고 차도 지나가고 이 계절도 지나간다. 창밖 풍경이 지겨워지면 들어가야지. 크루아상 하나 더 먹을까.
#크루아상

해시태그까지 붙이는걸 잊지않고 인스타에 짧은 글을 끄적거린 뒤, 빈 빵봉투와 함께 나란히 창밖을 바라보았다. 몸은 으슬으슬한데 왠지 집으로 가기싫다. 고요한 분위기와 인공조명이 아닌 가을햇살을 줄곧 만끽하고싶다. 노트를 꺼내서 한쪽 분량의 글을 썼다. 한시간 가량 몸의 SOS를 한사코 무시하며 줄곧 앉아있다 드디어 몸을 일으켰다. 역시 무리를 하더라도 그 크루아상을 사러 갔어야했다는 아쉬움이 따라붙는다.


집은 엉망이고 푹 쉬자니 방바닥의 머리카락이 몹시 거슬린다. 청소기를 돌리고 설거지를 하고 분리수거를 하고 틈틈이 세탁기를 돌리고 쌓인 옷가지를 옷걸이에 걸고 몸은 춥고 어지럽고 청소는 계속된다. 아직 화장실 청소가남았다. 이게 나를 위하는 일인지 아닌지, 머리는 어지럽고 몸은 나른하다. 몽롱한 가운데 남기는 글 한편. 두서가 없어도 이해해주세요. (찡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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