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뚤삐뚤 아름답게

성공은, 실패하는 걸 실패하는 것

by 꽃반지
케이크를 구울 때도 실패할까, 늘 염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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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수영을 시작한다는 친구의 말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내던진 답다.


나는 두 번의 기회를 잘 주지 않는다. 나에게도, 남에게도. 한번 실패 하면 끝! 어느 정도 삶이라는걸 살아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삶에서 한번에 되는 것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아니, 어쩌면 한에 잘 안되는 것이 삶의 속성인 것 같기도. 사실 뭔가를 한번에 잘 해낸다는 것이 좀 이상하지 않나. 누구나 붓을 잡으면 밥 아저씨처럼 '참 쉽죠?'가 되는게 아니란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밥 아저씨는 나쁘다. 안 쉬워요!)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온몸으로 삶의 속성에 홀로 맞서며, 고단한 레지스탕스의 길을 걸어왔다. '내 인생에 실패는 없어!'라는 글자가 휘갈겨진 시뻘건 깃발을 탁 꽂은채로. 그래서 늘 중에서 줄을 타듯 아슬아슬, 벼랑 끝에 서있는 사람처럼 애를 쓰며 았다. 뭐든 많이 하고 열심히 하고 악착같이 했다. 원래 부지런한 천성 덕분인건지, 마음 속에서 뚝배기 마냥 뭉근히 끓고있는 성공에 대한 갈망 때문인건지, 남에게 지기 싫어하고 무조건 1등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호승심 때문인건지, 어렸을 때 어머니에게 귀가 따갑게 들은 '너는 잘 될거야' 라는 말에 실린 묵직한 압박감 때문인건지, 어쨌거나 지금까지의 내 삶을 딱 열글자로 정리하면 이렇다. '실패하지 않으려 참 애씀'.


새로운 도전을 앞둔 친구에게 그토록 냉정한 말을 무심히 던질 수 있던 이유도 내 무의식의 '재도전 불가' 버튼이 작동했기 때문이리라. 삑- (친구는 여러번 다이어트에 도전했다가 실패한 전력이 있다. 누나 그러하듯이.) 그 순간엔 둘다 웃으며 별 의미를 두지 않고 가볍게 넘어갔지만, 집에 돌아와 문득 '아차, 내가 무슨 말을 했지?'싶었다. 또 작동했구나.


나의 꿈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내 꿈은 아파트 벽면에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었다. 바이킹도 못 타는 쫄보라는 건 뒤늦게 알았지만. 유년의 어느날, 할아버지 차를 타고 가다가 목격한 풍경이 마음에 닿았다. 거미처럼 아파트 벽면에 대롱대롱 매달려 글씨를 새겨넣는 어떤 이의 모습. 아, 재미있겠다! 그래, 이왕 그림 그리려면 저 정도는 큰 바탕이 있어야지. 생업이니 노동의 고단함이니 하는 건 까맣게 모를 나이라 그 뒤로도 종종 같은 장면을 목격할 때면 가만히 부러워했다. 노동의 고단함을 충분히 아는 어른이 되고 나서도, 나는 가끔 아파트 벽면에 매달려 글씨를 새겨넣는 내 모습을 그려보곤 했다. 안전할까? 햇볕에 많이 타겠지? 아침에 작업하면 좀 나으려나? 하루에 얼마나 그릴 수 있으려나? 삐뚤게 그리면 어떡하지? 내 맘대로 살짝 비틀어도 되나? 야근하면 컴컴해서 잘 안보일텐데... 혼자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펴면서. (요즘엔 직업의 위험성 때문에 아파트 벽면에 글씨를 새기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고 업체들이 하나같이 같은 스타일의 글씨를 추구하기 때문에 작업에 제한이 있다는 내용을 읽은 적이 있다.)


얼마 전, 우연히 건물 외벽 청소를 하는 광경을 보게 되었는데 두 사람이 건물 꼭대기부터 시작해 지면에 무사히 착지할 때까지의 모든 과정을 창문에 딱 붙어서서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능숙하고 부드러운 손놀림과 발동작으로 슥슥, 슥슥 일정한 리듬에 맞춰 몸을 밀고 나가는 두 사람의 모습은 흡사 춤같기도 했다. 아름다웠다.


'잘해야 한다'를 강조하고 강요하던 같은 어머니 아래 컸지만, 애면글면과는 영 거리가 먼 한살 터울의 남동생은 나보다 훨씬 행복해보인다. 이 악물고 오랜 시간 쌓은 탑이 아주 조금 틀어졌다고 탑을 부숴버리는 아버지의 습을 지겹도록 봐왔으면서, 대체 왜 저럴까 싶었으면서 '난 모 아니면 도야!' 술취한 아버지의 혀 꼬부라진 소리를 듣고 나서야 등골이 서늘해졌던 어느해 여름이 얼마 전이다. 저게 내 모습이구나, 흑과 백 밖에 인정하지 않았던 내 모습, 내 인생. 한번 실패하면 두번 다시 거들떠보지 않고 내 삶에서 불살라버렸던 아까운 보석들.


그러고보면 친구가 참 대단하고 대견하다. 어찌됐건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보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으니까. 그녀의 새벽 수영이 언제까지 계속될진 모르지만 '에헤이! 그럴 줄 알았어, 거봐!' 하는 알량한 잣대 대신 무언가에 도전하고 시도한 그녀의 용기에 박수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결과를 평가하기보다는 시작을 응원하는 사람이 되고싶다. 나에게도 남에게도.


이것저것 다양하게 경험하고 싶은 천성이라 요즘도 무언가를 끊임없이 배운다. 줄곧 해오던 것도 있고, 새로이 시작해 흥미를 붙이게 된 것도 있다. 이젠 성공이니 실패니 결과에 대한 지레짐작이나 두려움없이 그저 신나게 즐기고 싶다. 매순간 춤을 추는 것처럼 아름답고 싶다. 내 삶의 벽면에 매달려 황홀한 그림을 삐뚤삐뚤 그려넣고 싶다.

나에게 멋진 통찰을 선사해준 그녀의 새벽 수영을 응원하며.



(부록)

결과에 연연하지 않으려는 결과주의자의 몸부림 리스트


1. 새로운 요리에 도전 : 새로운 재료와 조리법을 익히는 중. 타르트나 치즈케이크처럼 만들기 다소 번거롭다 생각되는 항목들도, 반강제로 도전 중!


2. 일주일에 글 한편 : 이젠 취미의 영역을 벗어나 업이 되었으니, 잘 쓰고싶고 잘 써야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는데 어찌됐건 쓴다. 정신이 몽롱한 가운데 두서없이 뭐라도 쓴다. 공자 오빠가 그랬다. '더딘 것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멈출 것을 염려하라'.


3. 음, 또 무엇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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