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도 해주면 더 좋고
/집에 와서 가져가요.
입사한 지 2개월쯤 된 같은 팀 동료가 나에게 한 말이다. 그리 친하지 않은 편이어서 회사 근처에 사는 줄 알아도 굳이 가보고 싶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는데, 얼떨결에 퇴근 후 그녀의 집에 따라가게 됐다. 방이 너무 더럽다며 밖에서 기다려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는 통에, 집 구경은 못하고 복도만 서성거렸다. 집이라...남의 집 복도 앞을 서성이며 집에 대해서 생각했다. 한창 이삿집을 구하던 당시에 전봇대에 신랄하게 붙어있던 '달팽이도 집이 있습니다' 라는 아파트 분양 광고 전단지가 둥실 떠올랐고(그때 그 전단지를 보고 마음 한 구석이 쿡하고 찔리는 기분이었는데 아직까지 마음이 아프다), 전단지 끄트머리를 잡고 집에 대한 영화도 연이어 떠올랐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집으로>. 친구집이든 할매집이든 어느 집이든 어떨쏘냐.
사전은 '집'을 이렇게 풀이한다.
[명사] 사람이나 동물이 추위, 더위, 비바람 따위를 막고 그 속에 들어 살기 위하여 지은 건물
'그 속에 들어 살기 위하여 지은 건물'을 가만히 되뇌어본다. 그 속에 들어 사는 사람들을 떠올려본다. 부모, 외할머니, 친구, 주인집 아줌마, 아는 언니... 나는 집이 사람들이 몸으로 쓰는 일기장 같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사람의 성향에 따라 집의 성격도 달라지겠지만, 나에게 집은 남에게 쉬이 보여주기 어렵고, 친한 몇몇만 특별히 초대하는 공간이다. 내 몸으로 기록한 모든 흔적이 다 있는 곳. 혼자 살면서 냉장고가 두 대나 있고, 여기저기에 식재료가 쌓여있고, 책은 또 얼마나 많은지 방 한편엔 곰팡이 피듯 책들이 만개해있고, 늘 똑같은 신발을 닳을때까지 신고 다니면서 신발장에 신발도 제법 있는 곳. 나의 사소한 비밀들이 득시글대는 곳. 나와 함께 들어 사는 곳.
/아니, 너 화장품이 왜 이렇게 많아?
/이 책들을 다 읽었어?
/지네 친구세요?
미처 파악하지 못했던 나에 대한 이러저러한 면을 사람들은 나의 집을 통해서 비로소 간파한다. 나에 대해 남겨둔 빈칸에 저마다의 색칠을 한다.
부모의 집을 벗어나서 서울에 (일시적인) 내 집을 갖기 까지는 꽤 시간이 걸리고 고달팠다. 낯선 도시의 낯선 동네를 돌아다니며 발품을 팔아야하고, 집주인과 다만 얼마라도 흥정을 해야하고, 품을 들여 이사를 해야 하고, 나의 필요와 취향에 맞게 이런저런 것들을 배치해야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익숙해질 때쯤이면 다시 이 지난한 과정을 반복해야한다.주기적으로!
월세가 턱턱 달마다 빠져나갈때면, 살기 위해 집을 유지하는 것인지 집을 유지하기 위해 사는 것인지 아득한 기분이 들곤했다. 지금 살고 있는 곳은 작년 이맘때 이사를 와서 이제 막 1년을 넘겼는데, 이사를 준비하면서 한달여를 눈물바람으로 지샜다. 이걸 다섯글자로 '집없는설움'이라고들 한다. 물론 지금도 달마다 시간과 공간에 대한 대가를 꼬박꼬박 지불하고 있다. 한달에 한 번 정도 집주인 아줌마와 전화를 하는데, 대부분 턱없이 많이 나온 수도세에 대한 나의 항의로 시작해 항상 아줌마의 '살기 고달퍼' 푸념으로 끝이 난다. 세입자들이 세금을 제때 안내고, 수리할 곳은 많고, 세금은 오르고...아가씨, 고마워. 예?
나의 날것이 그대로 담긴 공간이지만 아무래도 타인을 초대하게 되면, 쑥스럽고 겸연쩍고 그래서 부산스러워진다. 개수대에 수북한 설거지감이며, 세탁기 가득한 빨래, 일주일째 분리수거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는 폐휴지 박스들과 비닐을 어쩐단 말이냐. 그제서야 요란을 떨며 씻고, 돌리고, 널고, 말리고, 개고, 털고, 쓸고 닦는다. 손님맞이를 하느라 하루종일 온몸에 땀을 흘리고 있으면 '집이 정말 더러워 손까딱하기 싫을때는 중요한 손님을 초대하라'는 명언이 뼛속까지 사무친다. 그리고 중요한 손님에게 염치불구하지만 정중하게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다. "청소 좀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얼마 전의 일이다.
/너희 집에서 놀껀데 너도 놀러올래?
와 같은 희한한 뉘앙스로, 우리집에 회사 동료들이 놀러오기로 약속이 되었다. 약속날짜가 1주 정도 남았는데, 나는 엉망진창인 나의 공간을 떠올리며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청소를 해야한다. 이틀에 한 구역씩 나눠서 청소를 하자. 이틀은 큰 방, 이틀은 주방, 또 다른 이틀은 작은 방, 그리고 나머지 하루는 화장실. 그런데 정신을 차려보니 다음날이 친구들이 오기로 한 날짜였고 물론 청소는 하나도 되지 않은 상태. 다행히(?) 무리 중 한명이 일정이 생긴데다 나의 몸살까지 겹쳐 우리의 약속은 현재 답보 상태이고, 약속과 궤를 나란히 하는 청소 역시 답보 상태이다.
'이 집도 편하네.'
'ㅇㅇ(동네이름)포레스트'
'아늑해요.'
나의 일기장을 들춰본 초대손님들의 감상평이다. 집까지 걸음해준 손님들에게는 어설픈 솜씨나마 정성들여 집밥을 지어 대접하는 편이다. 고마운 걸음에 대한 작은 보답이랄까.
회사 동료들과 함께 까먹으려던 귤은 성실히 말라가고 있고, 몇 번이나 바뀌던 그날의 메뉴는 아직 계획 속에 있다. 언젠간 그날이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