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억분의 1이 앗아갈 수 있는 100%
"주변에 흔히 있는 플라스틱처럼, 일상 어디에나 있는 음악을 하고 싶습니다."
몇 년 전, 우연히 공연을 접할 일이 있었던 인디 그룹 '플라스틱'의 이야기다. 플라스틱 같은 음악을 하고 싶다는 그들의 말처럼 플라스틱은 우리 삶의 곳곳에 포진해있다. 아니, 우리를 휘감고 있다고 말하는 게 적합할지도. 눈뜨면 손에 잡는 핸드폰, 옷. 밥을 짓는 밥솥, 밥을 담는 용기, 용기를 담는 비닐가방, 컴퓨터 키보드, 모니터, 컵, 펜, 의자... 나를 휘감고 있는 것 중에 플라스틱이 아닌 것을 찾는 게 더 쉬워 보인다. 말 그대로 플라스틱 라이프다.
따로 시간을 들여 쇼핑할 여유도 없고, 사람들이 북적대는 곳을 비집고 들어가 덩달아 북적이는 걸 좋아하지 않아 인터넷으로 쇼핑하는 것을 선호한다. 후기를 읽는 재미도 있고. (어쩌면 후기 읽는 재미에 인터넷 쇼핑을 좋아하는 지도!) 작은 화장품 하나도 웬만하면 인터넷 쇼핑을 이용하다보니 늘 집에는 택배박스가 쌓여있다.주변에서 붙여준 별명은 '택배녀'(어머니가 붙였다), '택배 요정'. 인터넷 활성화와 함께 '종이 없는 시대' 의 도래에 대한 주장이 줄곧 있었고, 실제로 생활의 여러 영역에서 종이가 점차 사라지고 있지만, 내 생각에 이렇게 절감한 종이는 모두 택배박스가 될 것만 같다. 클릭 한번이면 그날 새벽에 구운 빵도 아침에 받아볼 수 있는 세상! 물론 택배박스에 얌전히 담겨서 말이다.
'지구가 아파요!'
'지구를 살려주세요!'
어릴 때부터 줄곧 들어온 말이라 익숙하다. 익숙하면 무감각하다. 지구는 늘 아프구나. 75억 인구 중의 한 명인 내가 달리 뭘 할 수 있겠나. 내가 오늘 하루 쓰레기를 안 버린다고 해서 딱히 달라지는 게 있을까. 내가 그동안 지구에 해봤자 뭘 얼마나 했겠는가, 하는 알량한 생각도 든다. 내가 굴착기로 땅을 판 것도 아니고 물줄기를 막은 것도 아닌데. 내가 쓰레기를 안버려도 어딘가에서는 부지런히 파제끼고, 물줄기를 막고, 숲을 베고 별짓을 다할텐데.
환경 오염으로 인해 북극의 빙하가 녹아내려 북금곰이 고통을 겪고 있다는 내용을 담은 다큐멘터리 <북극의 눈물>(벌써 10년 전이군요.)을 보면서 함께 눈물은 흘렸지만, 눈물 흘리고 가슴 아파하는 것밖에 내가 할 일이 없었다. 북극의 얼음이 녹거나 말거나 매해 여름, 에어컨은 불티나게 팔리고 도로에는 자동차가 빼곡하다.
아,
그런데
얼마전, 일회용 빨대를 꽃은 채 죽은 작은 해양동물 사진을 봤다. 저 빨대가 내가 쓴 빨대가 아니라고 감히 자신할 수 있을까. 내가 쓴 빨대가 앞으로 누군가를 해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주스를 자주 마셔서 하루에 서너 개의 빨대를 쓰니 한 달이면 어림잡아 백개쯤 된다. 이 중 하나가 누군가의 생명을 앗지 않았다고 장담할 수 없다. 전에 다니던 회사의 방침 중 하나가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여서 빨대, 나무젓가락, 일회용기 등의 사용을 줄여왔는데, 회사를 옮기니 어느새 다시 일회용품을 슬금슬금 쓰고 있는 나를 본다. 약 이틀이면 회사의 100ℓ 쓰레기봉투가 터질 듯이 차고, 그 안을 들여다보면 대부분이 플라스틱이다. 식사 때마다 사람들이 즐겨쓰는 나무젓가락과 플라스틱 스푼, 일회용 도시락 용기, 테이크아웃 컵... 이런 회사 몇 개가 이 구역에 밀집해있을까. 머리가 아파진다.
사진을 본 뒤로 나는 플라스틱 빨대를 끊었다. 빨대를 쓰는 대신 컵에 입을 대고 그냥 마시는 습관을 들이고 있다. 일회용품 사용도 중독이라 습관처럼 찾게 된다. 편하니까, 익숙하니까, 싸니까. 하지 말아야지 하면서 하고 있으면 그게 중독이다. 다행히 새로생긴 정부방침 덕에 카페에서는 요새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회용 컵을 척 내미는 짓을 하지 않고, 이쁘게 머그컵에 담아주니 빨대를 덜 쓰는 것이 훨씬 쉬워졌다.
지문도 사라지고 살갗도 아파 견디기 힘들었다. 일회용 장갑을 쓰기 시작했다. 훨씬 나았다. (중략) 아마 일회용 장갑 한 묶음을 다 썼을 때쯤이었을 것이다. 스마프폰이 내 지문을 받아들였다. 살갗도 조금 덜 아팠고. 부엌에서 일회용 도구를 무조건 쓰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부엌일을 시켜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편리한 도구는 극복해야 할 대상이지 버려야 할 대상이 아니다. -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중
플라스틱 없는 삶을 종종 그려본다.한 사람이 평생 다섯 개의 비닐봉지 밖에 쓸 수 없는 삶을 상상해보고 혼자 소설을 쓰기도 한다. 플라스틱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으니, 플라스틱을 버릴 수는 없다. '편리한 도구는 극복해야 할 대상이지 버려야 할 대상이 아니다' 라는 문장을 떠올리면서, 일회용을 어떻게 극복해야할지 고민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일단 내 삶에 최대한 일회용을 들이지 않는 일. 이미 존재하는 일회용은 다회용으로 늘리는 것. 빨대를 덜 쓰고, 나무젓가락을 덜 쓰고, 비닐대신 장바구니를 들고 다니고, 비닐 포장이 된 상품 대신 종이 포장이 된 상품을 구입할 것. 75억분의 1인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이 정도이다. 지구 쓰레기의 75억분의 1이 줄어든다고 해서, 뭐가 어떻게 바뀔거라 기대하지 않는 마음은 여전하다. 그렇지만 75억분의 1이 쓴 빨대가 누군가의 100퍼센트를 앗아가는 일은 없었으면, 없을 수 없다면 적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주말이면 택배요정의 현관에는 박스며 비닐이 수북하다. 박스를 뜯으면 비닐 포장이며 비닐 완충재 따위가 가득하니 그럴 수 밖에. 요정 직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 현직 요정은 진지하게 고민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