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발마의 등에 업혀

서울역 구 역사를 둘러본 소회

by 꽃반지
투어가 시작됩니다!


나는 역사를 퍽 싫어했다. 수 개념을 힘들어하는 문과생이면서도 악착같이 수학을 포기하지 않아 -이런 것을 '그릇된 승부욕' 혹은 '판단의 오류'라고 합니다- 수능에서 꽤 높은 수학 점수를 받았지만, 사탐에 투자해야 할 시간을 수학에 투자하느라 정작 높은 점수를 받아야 할 사탐은 처참히 무너졌다. 바꿔 말하면, 그렇게 수학을 힘들어했으면서도 차라리 수학을 택할 정도로 역사를 끔찍이 싫어했다. 오늘을 살아가는 것도 버거운 나에게 왜 옛날에 일어난 일들까지 연도를 달달 외우며 기억하라 강요하는건지, 연도를 외우는 것도 버거운데 사건의 인과관계는 또 왜 꿰고 있어야 하는 것인지. 과거는 이미 흘러간 물 아니던가. 연어도 아니면서 왜 자꾸 시간의 흐름과 반대방향으로 물결을 거슬러 올라간단 말인가. 과거로 돌아가 알이라도 깔 심산인가.

수능이 끝나자마자 당연한 수순으로 나는 1894, 1932, 1866, AD,BC2333 등에게 안녕을 고했다. 우리 이제 다시 보지말자.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다른 친구들에게도 안부 전해주렴. 나의 인터넷 동영상 강의를 책임졌던

설민석 오빠도 이젠 안녕. 그러나 인생이 늘 계획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서울에 올라오면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끌고 온갖 박물관을 쫓아다니는 박물관 덕후인 어머니만으로 부족해, 역사를 전공한 짝꿍을 만나게 되었다. 국립중앙박물관, 서울역사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에다 군산역사박물관, 춘천에 위치한 책과인쇄박물관, 국립공주박물관, 김해 고분박물관, 제주 항일기념관, 또 무슨 박물관, 기념관, 박물관...(농업박물관도 방문 당일이 폐관이라 못 들렀을 정도로 기억할 수도 없는 크고 작은 박물관을 다녔다.) 중국 하얼빈 유학 당시에는 중국에 나를 보러 온 어머니의 손에 붙들려 731부대와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도 발자취를 남겼다.


유난히 뜨거웠던 올여름은 또 어땠나. 세계 5대 박물관 중 하나라는 대만의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땀을 질질 흘리며 짝꿍에게 이렇게 소리 질렀다. "다시는 박물관에 안 왔으면 좋겠어!!!" 물론 내 발로 찾아간 런던의 대영박물관, 대만 가오슝의 시립 역사 박물관, 일본의 이름 모를 호젓한 박물관 등 좋은 기억도 있지만 내 인생에 등장한 대부분의 박물관행은 피동사였다. 박물관에 끌려다닌 핍박과 항쟁의 일대기를 나열해도 꽤나 될 텐데.

지난 주말, 어머니가 서울에 오셨다.그간 서울의 박물관은 얼추 훑은데다, 박물관의 'ㅂ'도 등장할 수 없도록 2박 3일의 일정을 촘촘히 짰다. 연극, 음악회, 체험학습 등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느라 어머니는 밤만 되면 채 불도 끄기 전에 곯아떨어졌고 대망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원래 계획은 어머니가 좋아하는 고추잡채로 점심을 먹은 뒤, 느긋하게 홍대의 카페에 가서 핫초코를 들이키다 서울역에서 다음 만남을 기약하는 일정. 점심 식사를 마치고 어머니가 갑자기 '구 서울역사에 가보고 싶다' 라는 말을 했다. 서울역 도착 당일에도 '구 역사에 가보고 싶다'라는 말씀을 하시더니, 한국 시조에 등장하는 수미상관법을 이렇게 적용하시는구나.


마침 오후 2시부터 서울 구 역사에서 진행하는 '공간투어프로그램'이 있는 데다, 자리도 아슬아슬하게 남아있어 아쉬운(?)마음으로 프로그램을 예약했다. 이제는 서울역이란 말인가! 다음엔 또 무엇이란 말이더냐! 한 시간 정도 진행된다는 해설사분의 말을 듣고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어머니는 시작부터 이미 기대로 가득 차 있고 나는 한 시간을 대체 어떻게 견디나 싶었지만, 구 역사 바깥에서 시작해 안을 한 바퀴 둘러보는 프로그램은 의외로 재미있었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옛 건물을 그저 한바퀴 휙 둘러보는게 재미있음에 나도 놀랐지만.


한국 전쟁 당시 깨진 천장 유리 조각 일부

서울역 구 역사는 그때의 시대상이 그대로 반영된 상징적인 건물이다. 좌우 대칭으로 지어진 건물의 안으로 들어가면 넓은 로비가 펼쳐진다. 이 로비는 영화 <암살><밀정> 등의 배경으로 쓰이기도 했다. 로비의 한 가운데에는 커다란 시계가 걸려있는데, 한국전쟁 당시 3개월을 제외하고는 한번도 멈춘 적이 없다고 한다. 전쟁 당시에는 시계가 파손될 것을 염려한 역의 직원들이 시계를 분해해 부품을 나눠가진 뒤 부산으로 피난을 갔고, 전쟁이 끝난 뒤 서울역에 다시 모여 시계를 조립해 제자리에 돌려놓았다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 당시 한국에서 제일 큰 시계로, '파발마'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로비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1,2등석과 3등석, 귀빈, 왕족 등 계급에 따라 나눠진 대합실, 한국 최초의 양식당, 한국 최초의 음식전용 엘리베이터 등을 만날 수 있다. 역 안에 이발소도 있는 것이 인상 깊었다. 깨진 유리창 조각이며 벽에 새겨진 총흔 등 한국전쟁 당시의 흔적도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박물관을 그렇게 싫어하면서도 서울 구 역사 투어가 재미있었던 이유는 어쩌면 파발마 덕분일 수도. 파발마는 '몹시 급하게 달아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시계의 별명을 듣는 순간, 대합실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기차 시간을 기다리며 시계를 바라보는 그때의 사람들이 그려졌다. 시계가 흔하지 않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벽에 걸린 둥그런 시계의 시침과 분침을 사람의 두 다리에 빗대 쉬지않고 열심히 달려가는 '파발마'를 떠올렸겠지. 오랜만에 내려가는 고향이니 급히 기차역 안의 이발소에서 머리도 다듬고, 주머니에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식당에서 배도 좀 채웠겠지. 그때였다면 나도 으레 그랬겠지. 그때의 사람들과 내 모습이 포개진다.


역사의 역歷은 지나간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말 그대로 역사는 지나온 자취이다. 역사가 싫다는 말은 뒤를 돌아볼 여유가 없다는 말이겠지. 그랬다. 말 그대로 참 바쁘게 살았다. 앞으로 어디에 한 발짝을 내딛을지 마음이 바쁘고 불안해, 내 뒤에 이어진 무수한 발자욱에 시간을 내지 못했다. 시간을 내지 못한다는 건 마음을 내지 못한다는 뜻이다.


문 닫힌 서울역 구 역사를 둘러보는 일에 비로소 흥미를 느끼게 된 건, 내 마음에도 좀 여유가 생겼다는 뜻

일까. 발을 디디다 보면 헛디딜 때도 있고 수렁을 디뎌 굴러떨어질 때도 있다. 난리통에 깨진 유리조각이며

벽에 난 총알구멍처럼 이해하고 싶지 않았던 그런 발자욱들까지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는 뜻일까.


11월이 시작됐나 했는데, 벌써 11월의 절반이 훅 지났다. 이렇게 또 겨울이 오고 이 추위가 언제 끝날까 싶을 때 어느새 더워지렷다. 어느 더운 여름날, 문득 지난날에 썼던 글을 뒤적거리며 '아, 이때 어머니와 서울역 구 역사에도 방문했었지.' 할 테고.


벽에 걸린 파발마는 오늘도 열심히 어디론가 달려간다.

급하게 달아난다.

나도 파발마의 등에 매달려 덩달아 어디론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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