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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반지 Aug 03. 2021

자기만의 벽


지난 주말엔 <스님과의 브런치> 오디오북 녹음이 있었다.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땐 편하게 또박또박 읽으면 되겠지 하고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고, 독자층 중에 나이 드신 분들이 제법 있어 오디오북 서비스를 제공하면 그분들이 좀 더 편하게 듣겠다 싶어 기쁜 마음으로 수락했다. 진행을 결정한 후 목소리 샘플을 보내달라는 업체의 요청에 살짝 긴장하긴 했지만 큼큼, 목소리를 가다듬고 서너 번 녹음을 한 후 이 정도면 됐다 싶은 목소리를 골라 메일로 보냈다. 생전 처음 듣는 '보이스 코칭'을 진행한다는 회신을 받고는 목소리가 안 좋으면 탈락인가 싶 자괴감에 잠시 젖기도 했만(다행히 참가자 전원이 대상이었다). 녹음 하루 전 한 시간 가량 온라인으로 보이스 코칭 수업을 들었다. 강사님은 소리를 분명하게 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내 목소리가 듣기 좋은 목소리라고 칭찬했다. 물론 다른 이들에게도 하나같이 좋은 목소리라 칭찬했기 때문에 그녀의 말을 썩 믿진 않았다. (시간이) 짧고도 (거리가) 먼 수업으로 무엇이 얼마나 바뀌겠나 싶었지만, 소리를 분명히 내야 한다는 사실 하나만이라도 잘 기억하기로 했다.


녹음 당일, 작은 소음이라도 잡혀선 안되기에 에어컨도 없이 완벽 밀폐된 후끈한 방에서 헤드셋을 쓰고 마이크 앞에 앉았다. 티브이에서 보던 것처럼 유리창 너머에 엔지니어와 업체 대표님이 나를 보고 있었다. 헤드셋으로 들려오는 "하이-큐"라는 신호에 내가 소리를 내면 곧이어 스튜디오 전체에 내 목소리가 울렸다. 그들이 의견을 주고받으며 내 목소리를 평가했다. 소리가 좀 울리는데요, 힘이 없어요, 안개가 낀 것 같아요. 마이크 위치를 잡는데만 30분이 걸렸다. 이제 읽으면 되나 싶었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몇 문장 읽자 입에 침이 고여서 목소리에 물기가 느껴진다는 피드백이 있었다. 어떡하나. 한 문장 읽을 때마다 직전에 입을 크게 벌리고 입을 몇 초간 말린 뒤 읽었다. 그런데 그건 그거대로 물기가 없어 쩍쩍 붙는 소리가 날 수 있다고 했다. 입 안의 습도를 고민하며 만든 목소리와 대충 꺼낸 목소리는 들었을 때 단박에 알겠지 싶어 최대한 집중했다. 원래는 열 꼭지를 모두 읽을 예정이었는데, 평소에 신경 쓰지 않던 부분들을 신경 쓰다 보니 한 꼭지를 채 읽기도 전에 등에서 땀이 줄줄 흘렀다. 다행히 차차 읽어나갈수록 긴장이 풀려 내 목소리에 껴있던 안개서서히 걷히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변수가 있었다. 눈물이 흐르기 시작한 것이다. 잠깐 멈췄다가 다시 해도 되는지 물었지만 채 몇 문장을 남겨두지 않은 꼭지의 마지막이라 이것까지만 하고 쉬자는 대답이 돌아왔다. 안개가 걷히나 했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내 내 목소리를 다들 알아챘을까. 자꾸만 번지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겨우 첫 꼭지 녹음을 마쳤다. 녹음을 마치자마자 화장실로 뛰어가 눈물을 닦았다. 어두운 방에서 글을 쓰면서 항상 소리 내어 읽었다. 천장을 보며 쉴 새 없이 중얼중얼 거리는 모습을 누군가 봤다면 정신 나간 여자처럼 보였을 것도 알고 있다. 편안하게 읽기 쉬운 글, 다정하게 흐르는 글을 만들기 위한 나름의 방편이었다. 그렇게 중얼중얼 거리는 내 눈앞엔 한 줌의 햇빛과 바람이 들어오는 낡은 창이 있었다. 문득 녹음을 하다 말고 그 벽이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입으론 그때의 똑같은 문장을 외고 있는데, 눈앞에는 벽 대신 유리창 너머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내가 드디어 한 걸음 앞으로 나가는구나, 마침내 내가 세상에 인정을 받는구나 같은 류의 낯 간지러운 감탄이나 요란한 호들갑이 아니라, 무어라 표현해야 할지는 알 수 없지만 어떤 것을 내가 뛰어넘었다는 감각 때문에 문득 눈물이 흐른 것이다.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의 주인공 찬실은 영화판에서 구르다 이렇다 할 작품 없이 나이만 먹은 PD이다. 영화만 바라보고 줄곧 달려왔지만 마흔이 된 찬실에겐 돈도, 집도, 남자도, 자식도 없다. 친하게 지내는 배우의 집에서 가사도우미 노릇을 하며 용돈을 버는 찬실은, 문득 스스로에게 물을 기회를 얻는다.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게 뭐지?" 영화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그동안 모아 왔던 비디오테이프를 다 내다 버리려다가도 마음을 다잡고 시나리오를 쓰던 찬실은, 어느 밤 다시 영화 같이 만들자며 모인 후배들의 뒤통수를 바라보다 그날따라 훤히 뜬 달을 향해 "우리가 믿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거, 보고 싶은 거"라고 나지막이 중얼거린다. 다 이루게 해 주세요, 라던가 서늘한 현실주의자의 것일 포기하게 해 주세요, 라는 말이 없다. 그 뒤로 누가 만들었는지 알 수 없지만 관객은 딱 한 명뿐인 어느 영화의 종영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찬실에게 영화는 무엇이었을까. "목이 말라서 꾸는 꿈은 행복이 아니에요. 저요, 사는 게 뭔지 진짜 궁금해졌어요. 그 안에 영화도 있어요." 극 중 찬실의 말을 빌려오면, 찬실에게 영화는 벽이었던 셈이다.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영화라는 세계 안에서 이것이 온통 나의 행복이 되어주기를 바랐지만, 찬실은 벽이 허물어지고 나서야, 자신이 정의한 영화라는 세계 바깥으로 나오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만의 영화를 향해 한 걸음 나아가는 인물이 된다.


이삿짐을 정리하다 3년 전 일기장을 발견했다. 여느 해의 일기장과 마찬가지로 올해의 목표란에는 '내 책을 내고 싶다'라는 문장이 적혀있었고, 그 아래에는 '나는 게으르고 소재도 없고 글 쓸 시간도 없는데...'라는 솔직한 진심이 적혀있었다. 책은 내게 무엇이었을까. 찬실이 줄곧 좇았던 지감독의 영화처럼, 막연히 내 책을 가지기를 소망하는 동안은 비루한 처지를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책을 내기만 하면 나는 엄청 행복하고 더 이상 내가 가는 길에 흔들리지 않을 줄 알았다. 운이 좋다면 생계에 대한 고민과 멀어질 수 있을 줄 알았다. 집안에 틀어박혀 고상하게 글만 쓰고 싶은 것, 그건 나의 허울 좋은 벽이었다. 그렇지만 막상 책을 내고 나니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세상의 수많은 책 중에 한 권 더해졌을 뿐이고 나는 여전히 게으르고 소재도 없고 글 쓸 시간도 없다며 푸념을 반복한다. 퇴근하면 가방을 던져놓고 웹툰이나 보기 바쁘다. 위대한 작가들은 저 멀리 있고 나는 과연 이 길이 나의 길인지 의심하며 뒷걸음질 치고 싶다. 그다음 책은? 내고 나면 또 그다음 책은? 끊이지 않는 물음표가 머릿속을 뱅뱅 돈다.


찬실이 말한 '믿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거, 보고 싶은 거'는 벽 안쪽에 있는 것일까 벽 바깥에 있는 것일까. 이상이 현실에 좌절될 때마다 믿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거, 보고 싶은 거 손 닿을 수 없는 벽 바깥에 있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내가 믿고 싶은 거 , 하고 싶은 거, 보고 싶은 거는 벽 안쪽의 세상에 있었는지도. 줄곧 벽 안의 삶만을  갈망하며 진짜의 삶을 모른 척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벽을 넘으려는 이들이 흘리는 눈물을 나는 알고 있다. 그들이 벽 앞에 서서 끝내 눈물을 터트리고 마는 이유는, 벽은 결국 자신을 지켜주는 가장 굳건하고도 안전한 보호막, 결국 그 자기 자신의 가장 굳건한 일부이기 때문일 테다. 벽을 넘는 이들은 자신을 파괴하는 사람, 파괴함으로써 자신으로 더 가까이 나아가는 인물들이다. 왜 자신과 가까워지는데 눈물을 흘리냐고 묻는다면, 아주 소중한 것을 영영 잃어버리는 기분이기도 하고 영영 잃어버린 줄 알았던 아주 소중한 무엇을 다시 찾은 기분 때문일지도.  


작은 벽을 넘은 나는 내가 알 수 없는 어떤 부분을 파괴했다. 앞으로 내 앞엔 여전히 수많은 벽들이 있겠지만,  앞을 서성이다 보면 언젠가는 벽을 뛰어넘을 수 있을지도 모르고 더 이상은 못하겠다며 그 자리에 주저앉을지도 모른다. 내가 어떤 선택을 하든 최대한 행복하기를 바란다.  벽을 넘은 내 목소리 나를 데리고 세상 밖으로 진짜의 삶 속으로 나아갈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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