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탐구 일지

엄마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딸의 반성문

by 기록친구리니






요즘 나의 관심사는 '진짜 나'다. 직장인일 땐 아침에 5분이라도 더 잘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나 고민했지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궁금해할 시간도 없었고 왜 궁금해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문제는 시험관 시술을 위해 일을 그만두고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부터다.



일을 할 땐 정해진 근무 시간 안에 해결해야 하는 수많은 업무를 위해서 내 몸이 자동으로 움직였다면, 집에서는 그 반대였다. 출퇴근 시간도, 시급하게 해결해야 하는 업무도 없으니 내 몸이 정말 극한의 의지를 다지지 않고서는 움직여지지 않았다. 게다가 그토록 바라던 24시간의 자유가 생겼건만 대체 그 시간에 무얼 해야 하는지 도통 모르겠는 거다.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모르겠는 나는 넷플릭스와 유튜브, 인스타그램, 포털 사이트 기사들과 한 몸이 되었다. 시험관 시술로 안정을 취해야 하는 이유도 있었지만, 어째 안정을 취하면 취할수록 이건 안정을 취하는 게 아니라 침대에 나를 방치하는 것 같은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마침 시험관 시술에 필요한 주사들로 호르몬을 거스르는 중이었던 내 몸이 찜찜한 기분과 콜라보를 하기 시작했다. 매일 늦은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고, 남편이 출근할 때쯤에나 잠이 들었다. 내 건강을 위한 조언을 건네는 남편에겐 모진 말을 쏟아 냈고, TV에 나오는 아기만 봐도 눈물이 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유산을 겪게 되면서 '내 존재 이유'에 대해서까지 의심하게 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우울증이었던 거다.



매일 이렇게 나를 방치하다간 큰일이 날까 두려웠다. 안 그래도 나를 걱정하는 가족들에겐 차마 말을 할 수 없었고, 그냥 이대로 있기엔 겁이 나서 심리 상담센터를 찾아갔다. 첫 상담에서 박사님은 대뜸 내게 '기록하는 것'을 좋아하느냐고 물으셨다. '심리 상담하러 왔는데 웬 기록?' 마음속에 여러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답했다. 실제로 난 기록을 좋아하니까. 박사님은 '진짜 나를 알아가기, 감정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기' 이 두 가지 처방을 내려주셨다. 그리고 그 처방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으로 기록을 추천해 주셨다. 우울한 감정이 들 때마다 저 두 가지 방향에 맞춰 기록을 해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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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얘기하면 난 기록을 통해 이전보다 나를 더 잘 알게 됐다고 말할 수 있고, 우울증에서 벗어나 나다움을 찾아가는 과정 중에 있다. 가끔 아무것도 하기 싫어 침대와 하나 되는 날들도 있지만, 방치가 아니라 힐링의 시간이다. 셀프 탐구일지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고민하며 기록해 본 결과물이다. 1번부터 30번까지 적어 내려가는 시간이 이전보다 훨씬 빨라졌다. 나를 어떻게 데리고 살아야 할지 몰라 방황했던 지난날의 나는 '진짜 나'를 잘 몰랐기 때문이었다는 걸 지금은 안다.



나를 조금 알 것 같고 나를 데리고 살만해지니 문득 엄마가 생각났다. 나를 이 세상에 보내준 존재. '내 존재 이전에는 우리 엄마가 있었는데... 난 우리 엄마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내가 나를 잘 알고 싶어서 셀프 탐구 일지를 썼듯이, 사랑하는 엄마를 잘 알고 싶어서 '엄마 탐구 일지'를 써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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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엄마 탐구 일지'라고 썼지만 어째 '엄마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딸의 반성문'이라고 이름을 바꿔야 할 것만 같다. 독립을 하고 결혼을 하며 엄마와 떨어져 산 지 오래되기도 했지만, 엄마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지질 않아서, 엄마가 좋아하는 게 뭔지 선뜻 떠오르지 않아서 숫자 1을 써놓고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엄마가 여기저기가 아프다고 곡소리 내는 모습, 오랜만에 본 딸 많이 먹으라고 내 접시에 고기를 가득 쌓아주던 모습만 떠오를 뿐 엄마의 사소한 모습들을 전혀 적을 수가 없었다. (아. 이놈의 눈물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육아를 하고 있는 지인에게 이 이야길 했더니 자신도 그렇다고 했다. '폰에도 온통 아이 사진뿐이야. 엄마 사진은 하나도 없어. 아이가 뭘 좋아하는지는 누구보다 잘 아는데 엄마가 좋아하는 건 뭔지 잘 모르겠어.' 육아를 하지 않는 나도 별다를 게 없다. 폰에서 엄마 사진을 찾으려면 한참을 뒤져야 하고 누군가 엄마에 관해서 물으면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었던 것들도 시간이 갈수록 줄어만 간다.



슬퍼만 하지 말고 기록의 방향을 바꾸기로 했다. 진짜 내 모습을 알고 싶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가며 기록을 시작했던 것처럼 엄마에게도 그걸 적용해 보는 거다. 서른 개의 질문을 던지며 엄마를 탐구해보기로 했다. 사실 30가지 질문을 써 내려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자식 이야기 빼고 엄마 자신에 대한 것만 물으려고 했는데 도대체가 생각이 나질 않는다. 그래도 더 늦기 전에, 후회하기 전에 엄마를 더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이 될 것 같아서 기대가 된다. 엄마의 답을 들으며 눈물이 날 것만 같은 느낌적인 느낌도 든다. 미루지 말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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