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대물림

새우튀김이 남기고 간 엄마의 마음 향기

by 기록친구리니





지난 어버이날에 시부모님을 모시고 정말 오랜만에 여행을 다녀왔다. 사실 여행이라기보단 당일치기 드라이브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창 밖 풍경만 봐도 함박웃음 지으시는 두 분을 보니 모시고 나오길 잘했다 싶기도 하고, 이런 시간을 자주 갖지 못하는 게 죄송스럽기도 했다.




강릉에서 유명하다는 물회를 먹고 해안도로를 달리며 한참 바다 구경을 했다. 새하얀 파도가 쉼 없이 부서지는 바다, 바다와 맞닿은 하늘과 모래사장, 그 풍경 사이를 오고 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한참 바라보던 두 분. 손꼽아 기다리던 소풍을 나온 어린아이 같은 두 분의 표정을 볼 때마다 괜스레 코 끝이 시큰했다. 시골집 밖을 나서자고 말씀드릴 때마다 괜찮다고, 코로나 때문에 걱정이라 집에 있고 싶다고 하셨었는데 주말에 시간 내어 시골에 내려온 아들과 며느리가 피곤할까 봐, 고생할까 봐, 애써 번 돈 쓰게 할까 봐 걱정이셨던 두 분의 깊은 마음이자 배려였다는 걸 이럴 때야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으. 글을 쓰면서 또 코 끝이 찡해진다. 부모님의 마음이란...)




집에 돌아오기 전 수산 시장에 들러 생선과 오징어, 생새우를 샀다. 엄마, 아빠는 어디 여행 간다고 이웃들에게 소문내고 온 것도 아닌데 시장에 들어서기 전부터 같이 나눠 먹을 분들을 떠올리신다. 남편은 제발 남 챙기는 거 그만하고 두 분 자신을 좀 챙기라며 잔소리를 하지만, 그런 두 분을 닮은 남편은 자기도 그렇다는 걸 좀처럼 모른다. 사람에게도, 동물에게도, 심지어 나무와 풀꽃들에게도 기꺼이 정을 내어주는 이 세 가족이 난 참 좋다. (친정 엄마가 '넌 인복이 좋은 사람이야'라고 어릴 때부터 얘기해 주셨는데 그 말이 진짜 맞다)







당일치기 여행의 피곤함은 집에 오니 배가 되었다. 하루 종일 운전을 했던 남편은 침대와 한 몸이 되었고, 아빠는 산책을 하고 오신다며 잠깐 집 밖을 나가셨다. 잠깐 머물다 가는 아들과 며느리를 위해 건강한 재료로 삼시세끼 요리를 해주시는 것이 낙인 엄마의 부엌은 불이 꺼지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여행을 다녀온 날도 예외는 없다. 내일 할 요리에 쓰일 음식 재료를 미리 손질해둬야 하기 때문이다. 부엌을 오가는 엄마의 발걸음을 지켜보는 며느리의 마음은 냉장고 문이 열리는 횟수만큼이나 아주 분주하다. 요리엔 잼병인지라 매번 주방보조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엄마의 동선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도와드려야 하기 때문에 프로처럼 날렵하게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주방보조 역할 6년 차면 프로라 불러도 되겠지...?)



불이 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부엌에서 생선을 손질하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면서 조금 전까지 여행을 다녀온 게 꿈인가 싶었다. 때마침 유튜브 먹방 영상을 보며 "엄마, 리니야~ 이제 좀 쉬어요"라고 외치는 남편이 얄미워지는 건 결코 기분 탓이 아니다. '남편아, 누워서 말로만 걱정하는 건 나도 할 수 있거든?' 남자들에게 결혼 후부터 효자 되기, 입으로만 떠들기 교육과정을 가르치는 곳이 분명 있을 거라던 지인의 이야기가 생각날 때쯤 산책 갔던 아빠가 들어오셨다. 아빠도 아들과 텔레파시가 통했다. "자기야~ 리니야~ 그만하고 피곤할 텐데 푹 쉬어요." 우리 집 두 남자들의 눈에는 한시라도 빨리 냉동실에 넣어달라 외치는 생선들과 손질을 기다리는 새우가 절대 보이지 않는다. 6년째 한결 같이 엄마와 내 눈에만 그런 존재들이 보이니 신기할 따름이다.








두 남자의 존재를 잠시 잊고 엄마는 메인 셰프로, 난 주방보조로서의 역할에 집중하고 있을 때였다. 난생처음 새우 손질을 해보는터라 새우 내장과 눈싸움을 하고 있었는데 엄마는 그런 나를 귀엽다는 듯이 한참을 가만히 바라보셨다. "리니야, 네가 거기 쪼그려 앉아서 새우 까는 모습을 보니까 엄마가 무슨 생각이 드는 줄 아나?" 갑작스러운 엄마의 질문에 새우 내장과의 눈싸움을 잠시 멈추고 엄마를 바라봤다. "네가 여기가 친정이면 지금 그렇게 새우를 까고 있을까 싶어서 엄마 마음이 괜히 찡한 거 있지. 여행 갔다 오고 많이 피곤할 텐데. 친정이면 맘 편히 쉴 텐데 괜히 엄마 도와준다고 거기서 새우 까고 있는 것 같아서 너무 미안하다."



눈에 고인 눈물을 엄마에게 들킬까 봐 얼른 고개를 돌려 새우 내장과 다시 눈싸움을 하는 척 부산을 떨었다. 난 전생에 대체 어떤 일을 했길래 이런 분을 시엄마로 만난 걸까. 엄마는 곧 엄마의 엄마, 그러니까 엄마의 친정 엄마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엄마가 8남매에 오빠만 7명이고 막내딸이잖아. 다른 집은 막내딸 고생 안 시키려고 부모가 다 해준다는데 우리 엄마는 그렇지 않았어. 새 언니가 집에 오잖아? 엄마 보고 자꾸 부엌에 가서 새언니를 도와주라는 거야. 엄마는 나이가 어리기도 했고 그때만 해도 며느리가 부엌일 하는 게 당연한 시대였거든. 엄마한테 막 소리쳤지. 다른 집은 며느리가 다 하는데 왜 자꾸 나더러 새언니들 도와주라고 하느냐고 말이야. 게다가 새언니가 한 명도 아니고 7명이잖아. 그때마다 도와주러 가라고 하니 엄마가 어린 마음에 얼마나 귀찮고 싫었겠어."


"와. 엄마 근데, 옛날 어른들은 되게 보수적이시고 또 시골이면 더 그랬을 것 같은데 막내딸한테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하니까 신기해요."


"그러니까 말이야. 명절 땐가? 엄마가 또 막 짜증을 냈지. 왜 자꾸 나더러 도와주라고 하느냐고. 새언니들이 다 하는데 나한테 왜 그러느냐고. 그랬더니 뭐라고 하셨는지 알아?"


"뭐라고 하셨어요?"


"경숙아, 새언니들도 너처럼 남의 집 귀한 딸이야. 시집와서 생판 모르는 사람들 틈에서 부엌일 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인 줄 아니? 너도 나중에 시어머니가 될 거잖아. 만약에 며느리가 들어오면 항상 엄마가 해 준 말 잊지 말아라. 남의 집 귀한 딸 데려다 일 시킬 생각하지 말고 네 자식 대하듯 대해줘야 한다."


"와..."


"그래서 널 볼 때마다 엄마가 해준 말이 자꾸 생각나. 새우 까고 앉아 있는 모습 보니까 남의 집 귀한 딸 데려다 고생시키는 것 같아서 엄마가 미안하고 고맙고 그렇네."








엄마가 들려주신 이야기를 밤새 곱씹다 잠이 들었고 새우튀김을 해 먹기로 한 아침이 밝았다. 어제 리니가 새우 손질하느라 너무 고생했다며 남편에게 기름 가져와라, 휴지 가져와라 말씀하시는 엄마를 보면서 '마음의 대물림'에 대해 생각했다. 어쩌면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큰 유산은 '마음'이 아닐까 하는.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 다른 이의 마음을 존중하는 마음, 내 것이 귀하면 남의 것도 귀하게 여길 줄 아는 마음, 누군가의 입장을 헤아려보는 마음, 마음속 이야기를 진솔하게 건넬 줄 아는 마음, 서로 부족한 게 있더라도 보듬고 안아주며 살아가는 그런 마음 말이다.


엄마의 따뜻한 마음 반죽이 입혀진 새우튀김은 내가 이제껏 먹어 본 새우튀김 중 역대급으로 제일 맛있었다. 새우튀김 냄새는 사라지고 없지만, 엄마의 마음 향은 내 마음에 진하게 스며들어 아직도 여전히 좋은 향기가 난다. 언젠가 내가 엄마가 되고 누군가의 시어머니가 된다면 엄마의 마음 향을 대물림해 줄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