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을 해야 하는 이유

by 기록친구리니




꾸준한 기록을 하면서 얻은 것들이 굉장히 많은데 그중 하나는 '나'라는 사람을 이전보다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새로운 도전 앞에서 망설임보단 설렘이 앞서는 나, 결과만큼이나 과정에서 얻는 배움을 소중히 여기는 나, 시작해보지 않고 망설이다 후회하는 상황을 싫어하는 나. 나를 이해할 수 없었던 시절에는 이런 나를 혐오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지금의 변화가 놀랍기만 한데 이것은 순전히 기록 덕분이라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기록은 내게 큰 선물을 가져다주었다.




깨달아 앎, 또는 잘 알아서 받아들임


나를 이해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이해'라는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 보면 '깨달아 앎, 또는 잘 알아서 받아들임'이란 뜻이 나온다. 즉 나를 이해한다는 것은 나를 잘 받아들인다는 뜻과도 같다.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라는 김국환 아저씨의 노래 가사를 타인에게 대입했을 땐 굳이 가사를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아도 가사가 이해됐다. 나를 모르고 내가 모르는 우리가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건, 비 오는 날엔 막걸리에 파전 먹고 싶은 마음만큼 당연한 거니까.



30대에 접어들고 예고 없이 들이닥치는 삶의 변곡점들을 경험하면서 '네'라는 가사는 어느새 '나'로 바뀌었다.

'내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나를 알겠느냐' 모음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문제가 너무 어려워져 버렸다.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나를 데리고 살았는데 내가 나를 모르겠다니. 이 문제는 생각보다 큰 충격이자 꼬일 대로 꼬여버린 내 마음을 더 엉키게 만들었다. 어디서부터 엉켜버린 건지 눈을 부릅뜨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었고, 온갖 것들이 내 몸에 덕지덕지 붙어 사지를 잡아당기는 기분이었다. 풀 수 있을 거라는 일말의 기대조차 하지 못하는 상태라고나 할까.







나라는 사람의 존재의 이유조차 부정하는 시간들을 보내던 어느 날, 문득 엄마의 한 마디가 생각났다. 북한 간첩도 무서워한다는 중학교 2학년 시절, 학교 숙제로 주머니 만들기를 집에서 하던 날 엄마가 해준 그 한마디 말이다. 서툰 바느질 실력이지만 잘해보고 싶은 마음은 있어서 열정을 불태우다가 엉켜버린 실을 부여잡고 끙끙대던 중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엄마의 짧고 굵은 한 마디. "리니야, 그렇게 막무가내로 잡아당기지 말고 엉킨 곳을 먼저 찾아야지." 이거였다. 모든 것이 바닥으로 추락하던 삶의 시간들 속에서 나를 건져 올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 말이다.



해결책을 찾았다는 기쁨도 잠시, 사람의 마음, 그것도 내 마음에서 엉킨 지점을 찾는 방법을 알 수가 없었다. 고민끝에 내가 선택한 방법은 누군가의 방법을 따라 해보는 거였는데 강의도 듣고, 책도 읽고 한 동안 자기 계발에 미쳐 살았다. 열심히 방법을 따라 하다 보면 어느새 괜찮은 내가 되어있을 줄 알았다.



이 방법의 가장 큰 문제는 그들의 모습이 나인 줄 착각하게 된다는데 있다. 현실의 나는 여전히 같은 사람인데 강의와 책 속의 사람이, 그들의 삶이 내 삶인 것 마냥 착각을 하게 되는 시점이 반드시 온다. 그 착각이 깨지는 순간, 속된 말로 현타가 온다. 꿈과 망상에 빠져있다 내가 처한 현실을 절절히 깨닫는 순간 말이다. 여러 번 현실 자각 타임을 경험하며 깨달았다. 나에 대한 이해가 없는 맹목적인 자기 계발은 나를 더 갉아먹는 행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엉킨 지점을 찾고 싶었다. 나를 더 이상 미워하고 싶지 않았다. 타인에게 사랑을 구걸하고,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해 살고 싶지 않았다. 너무도 간절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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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함 끝에 찾은 나의 해결책은 '기록'이었다. 기록이라 말하니 거창하게 보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끄적임'에 가깝다. 그때 당시 비가 오면 쏟아져내리는 엉또 폭포 같던 내 마음은 일기장에 수많은 이야기를 쏟아냈다. 고장난 수도꼭지마냥 콸콸 끝도 없이 잘도 쏟아져 나왔다. 내 안에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이렇게 많았는지, 쌓인 마음들이 이렇게 많았는지 처음 알았다. 하얀 종이 위에, 때로는 블로그에 온갖 이야기를 다 썼다. 물론 비공개다. (공개되었다면 전 직장의 상사들부터 눈에 불을 켜고 나를 찾을지도 모른다. 하하)



정제되지 않은 날 것의 기록이 내 숨통을 틔워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쯤, 신기하게도 기록이 내게 말을 걸어오는 경험을 했다. '너는 제대로 하는 게 없는 것 같지만 바꿔 말하면 뭐든 일단 시도하고 보는 모험 정신이 있어, 너는 크고 화려한 것들보다 작고 사소한 것들의 가치를 발견하는 재주가 있어, 관심사가 잡다하지만 그만큼 호기심이 많고 세상을 풍요롭게 누리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거야.'



이쯤 되면 거짓말하지 말라고 외치는 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난 200% 장담할 수 있다. 기록이라는 것은 엉킬 대로 엉킨 당신의 마음을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풀어낼 수 있는 거의 유일무이한 수단임을. 기록이 반드시 당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날이 있다는 것을. 적어도 쓰기 전보단 나 자신을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우리는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곤 끊임없이 무언가에 노출되어 살아간다. 그게 무엇이건 간에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노출된 것들에 아무런 대가도 없이 내 시간과, 마음과, 데이터를 끊임없이 내어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모든 것들이 연결되어 있고 홍수처럼 수많은 정보들이 쏟아지는 이 시대에 우리가 정작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나에 대한 데이터'가 아닐까?



신은 나를 이유 없이 사랑하지만, 사람인 나는 이유 없이 나를 사랑하기가 어렵다. 최재천 교수님은 '이해하려는 노력이 축적되면 사랑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씀하셨다. 나를 사랑하려면 나를 이해해야 하고 나를 이해하려면 데이터가 있어야 한다. 어렴풋이 떠올려보는 과거의 추억이 아닌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데이터 말이다. 난 그 데이터를 쌓을 수 있는 가장 쉽고 돈 안 드는 방법이 기록이라고 생각한다. 기껏 든다고 해봐야 노트와 펜 값 정도고, 요즘 같은 세상엔 블로그나 메모 앱 같은 곳에도 얼마든지 남길 수 있다.



지난 날의 나처럼 존재의 이유를 의심하는 시기를 지나는 누군가가 있다면, 마음 속 얽힌 실타래를 푸는 방법을 알고 싶은 누군가가 있다면 속는 셈 치고 오늘부터 기록하는 시간을 하루에 단 10분이라도 가져보길 권하고 싶다. 나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시절을 벗어나게 될 것이며, 마음과 계획대로 되지 않는 세상 속에 잠시 흔들리더라도 중심을 잡을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게 될지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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