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아진 걸 축하해
건강한 식습관을 가져보겠다고 나름 고군분투한 지 14일째다. 늘 다이어트를 하겠다며 호들갑을 떨었지만, 이번은 마음가짐이 사뭇 비장했다. 작년 12월에 받은 건강검진 결과와 시험관 시술 상담 내용 때문이다. 췌장암일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며칠 밤을 잠 못 이뤘고, 수개월 동안 호르몬의 노예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한동안 우울했다. 다행히 췌장암은 아니었고 호르몬 주사는 잠시 결정을 미뤄뒀지만 해결되지 않은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다. 나의 몸은 왜 이 상태가 되었는가?
문제의 원인은 크게 고민할 것도 없었다. 자극적인 음식, 불규칙한 수면, 운동 부족 3종 세트를 건강한 상태와는 멀어지는 방법으로 성실하게 실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음식만큼은 어떻게든 핑계를 대보려고 했는데 스마트폰 사진첩이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를 내밀어서 실패했다. '몸무게의 세트 포인트를 가뿐히 넘어선 살찐 몸, 앉아만 있어도 아픈 허리, 수시로 찾아오는 두통, 카페인 없이는 하루를 버틸 수 없는 피로한 상태...' 수치로 파악할 수 있는 건강 상태 말고도 나의 몸은 여기저기서 고장 났다고, 제발 좀 알아달라고 아우성치고 있었다.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고질병이라고, 유난 떨지 말라고 합리화하며 살아가기엔 내가 꿈꾸는 노년의 모습이 너무 지중해 사람이다. 더 이상 이렇게 있을 수는 없었다.
변화는 지금 시점의 나를 아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했던가. 노트를 펼치고 제일 먼저 지금의 내 몸이 어떤 상태인지 기록했다. 머리, 눈, 귀, 코, 입 등 신체의 모든 부위를 상세히 나눠서 썼는데 정상인 곳을 찾는 게 더 어려울 지경이다. 하지만 내가 열심히 노력해서 이 상태를 호전시킬 수 있다고 상상하니 이내 기분이 괜찮아졌다.
그다음에는 몸무게, 근육량, 내장지방부터 시작해서 팔 둘레, 배 둘레까지 수치로 측정할 수 있는 몸의 모든 것을 적었다. 몸무게가 전부는 아니지만, 숫자로 마주하는 내 몸은 생각보다 더 별로였다. 한숨이 그냥 절로 나온다. 하지만 이것 또한 나의 노력으로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니 이미 나는 근육 빵빵 에스라인, 얼굴은 브이라인이다.
자, 그다음은 뭘까? 비루한 이 몸뚱어리를 사진으로 남기는 거다. before 사진을 찍을 때 남편이 거실에서 티비를 보고 있었는데 혹시라도 사진을 찍고 있는 순간에 방문을 열고 들어올까 싶어서 문을 잠갔다. 여자의 예감은 틀린 적이 없지. 끈나시와 검정 속바지를 입고 타이머 맞춰가며 앞, 뒤, 옆 사진을 열심히 찍고 있는데 남편이 왜 문을 잠갔냐며 노크를 하기 시작했다. '뭐 좀 찍느라고'라고 둘러댔지만, 지금 생각하니 남편이 이상하게 생각했을 것 같다.(자기야, 나 이상한 짓 한 거 아냐ㅋㅋ)
기록으로 현재의 내 상태를 남겼으니 이제는 변화를 위한 실전이다. 우선 건강한 식습관을 위한 노력을 하기 시작했다. 극단적인 다이어트 식단은 할 자신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아서 '건강하고 맛있는 레시피'를 찾아다녔다. 평소에 좋아하던 음식인데 건강한 식재료로 바꿔서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레시피들이 많아서 어찌나 고마운지. 맛있는 다이어트 레시피를 친절하게 알려주는 인플루언서들과 유튜버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요즘 나의 최애 메뉴는 두부 리조또인데 물기를 짠 두부에 치즈와 토마토소스를 넣어 후루룩 비비면 끝나는 초간단 레시피다. 만들기도 쉬운데 포만감과 맛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서 자주 해먹는다.
수면 기록도 꾸준히 하고 있는데 11일부터 그래프 곡선이 달라졌다. 되도록 열 시에서 열한 시 사이에 잠들려고 노력 중인데 마음먹은 11일부터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수면패턴이 된 것 같아서 나름 뿌듯하다. 연휴도 지켜보려고 했는데 어제오늘은 새벽에 말똥한 상태로 있다. 시댁에서 올라오는 차 안에서 잠을 자는 바람에 밤에 일찍 잘 수가 없었고 그 여파가 다음 날 수면에도 영향을 미쳤다. 덕분에 오랜만에 브런치에 글을 쓰게 된 것은 좋지만, 오늘부터 다시 규칙적인 수면 패턴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잠들고 나면 아침에 일부러 일찍 일어날 예정이다. 정말 피곤해도 낮잠은 자지 않으리라 다짐을 해본다. 기록을 해두면 이렇게 내게 생긴 문제 상황에 대한 원인을 파악하고 대안을 세울 수 있다.
건강을 위한 노력을 해야겠다고 다짐을 하며 나름의 목표를 잡았다. 나의 생일인 4월 15일에 내가 목표한 몸의 상태를 만드는 것이다. 스마트폰에도 알람을 해두고 싶어서 디데이 앱을 다운로드했는데 이벤트 이름을 '더 나아진 걸 축하해'라고 해두었다. 말로 모건의 무탄트 메시지에 보면 이런 대화가 나온다.
내가 생일파티에 대해 이야기하자 그들은 열심히 귀를 기울였다. 나는 케이크와 축하 노래, 생일 선물 등을 설명하고 나이를 한 살 더 먹으면 케이크 꽂는 양초의 수도 하나 더 늘어난다고 이야기했다. 그들이 물었다.
"왜 그렇게 하죠? 축하란 무엇인가 특별한 일이 있을 때 하는 건데, 나이를 먹는 것이 무슨 특별한 일이라도 된다는 말인가요? 나이를 먹는 데는 아무 노력도 들지 않아요. 나이는 그냥 저절로 먹는 겁니다."
내가 물었다. "나이 먹는 걸 축하하지 않는다면, 당신들은 무엇을 축하하죠?" 그러자 그들이 대답했다.
"나아지는 걸 축하합니다. 작년보다 올해 더 훌륭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었으면, 그걸 축하하는 겁니다. 하지만 그건 자기 자신만이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파티를 열어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뿐이지요."
나는 그 말을 깊이 명심해 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문장을 읽고 나니 3개월 뒤 내 생일엔 나이 한 살 더 먹은 것을 축하하고 싶지 않아졌다. 안 그래도 매번 헷갈리는 나이 숫자를 곱씹기보다는 참사람 부족처럼 더 나아진 나를 축하하고 싶어졌다.
오늘도 어김없이 밤 열두 시가 되니 디데이 카운트 앱의 알림이 도착했다. 이 알림을 확인할 때마다 마음먹은 것을 실천해 보리라 다짐한 순간이 기억나고 81일 후의 내 모습을 기대하게 된다. 솔직히 귀찮을 때도 있다. 하지만 기꺼이 책상 앞에 앉아 기록을 한다. 아직 오지 않은 날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노트에 별것 아닌 내용을 기록하는 것만으로도 목표로 한 4월 15일의 내 모습이 기대되어 가슴이 떨린다. 설사 기대한 것만큼의 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더라도 실망하지 않을 거다. 기록이 나에게 말을 건넬 거라는 것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원하는 모습을 이루지 못했다고 해서 네가 살아온 시간이, 네가 한 노력이 헛된 것은 아니야.'
아직 오지 않은 날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기록하는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축복이자 특권이다. 오래오래 기록하는 사람으로 이 특권을 마음껏 누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