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답을 아는 사람은 오직 너밖에 없어

by 기록친구리니




아침, 저녁으로 날씨가 선선해지니 마음이 괜히 멜랑꼴리 해지는 것이 가을이 오긴 왔나 보다. 낮에는 높고 푸르른 하늘을 보면서 행복해지다가 가을바람이 손 끝을 스치는 저녁이 되면 '가을 타나 봐'라고 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그 기분을 느낀다. 예전엔 가을 타는 기분이 싫어서 어떻게든 바쁘게 살아가려고 노력했었는데 기록을 하고 난 뒤로는 그 감정마저 온전히 누리고 싶어 진다. 가을이 올 때마다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건 어쩌면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실감한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유튜버 리플레이 LEEPLAY님의 플레이리스트 중 '우리 나중에 피렌체 여행 가면 노을 보면서 같이 듣자'를 들으며 집 앞 산책길을 걸어본다.(https://www.youtube.com/watch?v=PQF3CXqXbfY) 신혼여행 때 피렌체 미켈란젤로 언덕에서 노을을 바라보던 그때의 나, 남편, 우리를 생각하면서 말이다.



남편과 결혼한 지 어느덧 7년 차가 되어간다. 7년 전 피렌체에서 얼굴을 맞대고 찍은 사진 속의 우리와 지금의 우리는 삶의 방식부터 서로를 대하는 태도까지 정말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물론 지금의 시간이 있기까지 시행착오가 있었다는 건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거라 생각한다. 두 말하면 입 아프다.



동갑내기인 우리는 유난히 자주 다퉜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남편을 향해 늘 가시를 세우고 있는 고슴도치처럼 살았다. 뭐가 그리 서운하고 속상했는지 필터링 없이 말 한마디 한 마디에 온 감정을 실었고, 기어코 내뱉었다. 남편의 표정, 말투, 행동이 거슬릴 때마다 독을 품은 표정으로 금방이라도 독침을 쏠 것 같은 말들을 수없이 내뱉었다. 헤어지자는 말도 여러 번 했다. 그때의 나를 묵묵히 받아준 남편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나랑 살아줘서 고마워^^)






그때의 나는 자존감이 굉장히 낮은 사람이었다. 남편이라는 사람에게 모든 걸 의지했고, 남편이 나를 조금이라도 사랑하지 않는 것 같으면 불안에 떨었다. 일에 몰입하며 나름의 성과에 취해있었지만 솔직히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은, 존재감을 증명하고 싶은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일이라도 잘한다는 소리를 들으면 내가 꽤나 괜찮은 사람이라 느껴질 것 같았다.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지 못하니 내가 어디로 흘러가는지 조차 모른 채 방황하고 또 방황했다. 가장 가까운 남편에게 상처를 주고, 자다가도 이불 킥하고 싶은 실수를 하고, 세상 모든 사람이 나만 쳐다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에 하루하루를 지옥처럼 살았다. 눈을 뜨는 게 싫었다. 아무도 나를 사랑하는 것 같지 않았으니까.



끝날 것 같지 않던 시간은 늘 그렇듯 시간이 지나니 괜찮아졌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라는 말은 깜깜한 터널을 걷고 있는 사람에겐 위로가 되지 않는다. 나 또한 그랬지만 진짜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 그때 당시 내 마음이 그 말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을 뿐. 다만 그 시간을 어떻게 지나가느냐의 문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내보기도 했고 정신없이 바쁘게 지내도 봤다. 어땠냐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땐 우울과 걱정이 파도처럼 밀려왔고, 정신없이 바쁘게 지낼 땐 잠시 잊고 지내다가도 감정이 태풍처럼 요동치는 순간이 왔다. 예고 없이 오는 감정이라 대책을 마련할 수가 없었다. 예고를 하고 오더라도 딱히 대안은 없지만 말이다. 마음의 힘듦은 가만히 내버려 둔다고, 바쁨 속에 방치한다고 저절로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정면으로 마주할 때 조금씩, 아주 조금씩 괜찮아졌다.



나의 마음을 정면으로 마주한 방법은 '기록'이다. 돈도 들지 않고, 지극히 개인적인 나의 마음을 누가 알게 될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가성비와 가심비가 넘치는 유일한 방법 기록 말이다. 마음이 요동칠 때마다 블로그에 비공개로 글을 썼다. 노트에 쓸까 싶기도 했지만 나의 바닥을 누가 알게 될까 봐 차마 쓰지 못했다. 요즘도 정말 나만 알고 싶은 이야기는 블로그에 비공개로 쓴다. (발행 전에 비공개인지 필수로 확인해야 한다!) 마음이 어려울 때 기록을 통해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은 실로 괴롭다. 마음을 힘들게 하는 상황, 순간, 사람, 관계, 환경 등 모든 것을 떠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기록을 했던 이유는 쓰지 않으면 알 수가 없어서다. 내가 왜 이런 힘듦을 겪고 있는지, 생각만으로는 절대 정리가 되지 않는다.








기록을 한다고 한 순간에 모든 것이 나아지진 않는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안다. 새하얀 종이에 써 내려가는 한 글자 한 글자가 모여 나를 바로 서게 하는 힘이 된다는 것을. 모이는 글자 수만큼 나를 이해하게 되고, 나를 이해한 만큼 나를 사랑하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새삼스럽지만 글을 쓰며 또 한 번 깨닫는다. 나를 사랑해야 하는 가장 첫 번째는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걸.


2020년 이준기, 문채원 주연의 '악의 꽃' 드라마 마지막 회를 보면 이런 대사가 나온다.


"현수야, 우린 어딘가에서 자신을 잃어버린 사람들이야. 많이 방황하고 헤매게 될 거야. 그래서 반드시 시작점이 필요해. 길을 잃지 않으려면."

"이제 누나도 없는데 누구한테서 답을 찾지"

"그 답을 아는 사람은 세상에 오직 너밖에 없어."



삶을 살아가며 우리는 어디에선가 자신을 잃어버리는 순간이 온다. 그 순간을 누구도 예측할 수 없고, 그런 순간이 온다면 많이 방황하고 헤매게 될 거다. 그래서 시작점이 필요하다. 길을 잃지 않으려면. 그 시작점이 나는 기록이라고 믿는다. 뭐든 적어보는 그 시간을 통해서 나를 잃어버린 순간으로부터 나를 다시 찾아낼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다.




그 답을 아는 사람은 세상에
오직 당신밖에 없어요



그리고 또 한 마디 하고 싶다. 당신도 나처럼 잃어버린 순간으로부터 당신을 다시 찾아낼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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