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넛 버터와 오후의 코끼리
“살아생전 부모님께 대접하고 싶은 마지막 음식이 있다면 그건 바로 석구 반점의 짜장면이다. 뉴욕 타임스”
“스튜디오는 지금 홍수에 빠졌다. 석구 짜장을 맛본 순간 입안에 감칠맛이 가득 퍼지게 되는 맛의 홍수라는 재난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CNN”
“밀가루를 잘 풀고, 뭉치고, 반죽하는 과정, 짜장면의 완성도는 이런 시시콜콜한 부분에서 판가름 난다. 석구 반점의 비밀은 바로 제대로 된 면이라는 기본에서 나온다. 워싱턴 포스트”
석구 반점은 짜장면 단 하나의 메뉴로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전설의 식당이었다. 주방장 최석구는 35년 전 혈혈단신으로 서울에 올라와 지금의 성공을 일궈냈다. 맛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던 최석구는 짜장면으로 최고가 되고 싶었다. 그는 최고의 짜장면을 만들기 위해 모든 인생을 짜장면에만 몰두했고, 결국 최고의 짜장면을 만들어 낸 것이다.
실력만으로 중식 명장의 칭호까지 얻은 최석구였지만, 그에게는 한 가지 고민이 있었다. 바로 자신의 뒤를 이를 후계자가 없다는 것. 그러던 중 이 소식을 전해 들은 방송국 PD가 그를 찾아왔다. 잦은 방송 출연 덕분에 친분이 두터운 김 PD였다. 김 PD는 최석구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바로 석구 반점의 후계자를 방송으로 공개 모집을 하자는 것이다. 최석구는 이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방송을 보고 전국 각지에서 재능 있는 인재들이 모여들 것이고, 이를 통해 후계자는 물론이고 가게의 인지도 또한 올라갈 것으로 생각했다.
“네, 지금부터 명장 최석구 님의 짜장면 만들기 시연이 있겠습니다. 후보자들께서는 잘 보시고 그대로 만들어주시기 바랍니다.”
방송은 시작되었다. 최석구는 양말을 벗고 깨끗이 발을 씻었다. 그는 준비된 재료들을 꼼꼼히 살펴보고 발로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이미 방송에서 여러 번 언급되었지만, 만성 후각장애로 코가 막혀버린 그는 발로 냄새를 맡았다. 최석구는 양발로 밀가루를 반죽하기 시작했다. 관객들은 웅성거렸다. 최석구가 발로 냄새를 맡는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발로 짜장면을 만든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최석구는 익숙한 발놀림으로 가느다란 면을 뽑아냈다. 석구 반점 맛의 비밀은 바로 최석구의 발로 만든 족타면에 있었던 것이다.
최석구가 카메라를 보며 말했다.
“저는 기계로 면을 뽑지 않습니다. 발로 밀가루 반죽을 쳐내고 정확히 135가닥을 8분에 뽑아내죠. 오직 발의 감각만을 이용해 탄력 있는 면을 만들어 냅니다. 이게 석구 반점의 짜장면의 핵심이죠. 면이 제대로 서야 온전한 짜장을 만들 수 있습니다. 후보자들께서도 이 점을 명심해 주시기 바랍니다.”
최석구의 요리 과정으로 모니터로 지켜보던 5명의 후보자가 차례로 곧 무대에 올라왔다. 그리고 최석구 방식의 면을 따라 만들기 시작했다. 발을 전혀 사용 본 적이 없는 이들은 양손으로 수타면을 만들었다. 하지만, 최석구 면 맛을 흉내 낼 후보자는 아무도 없었다.
족타면을 따라올 후보자가 나타나지 않자 무대도 술렁거렸다. 이대로 방송을 중단할 것인지 계속 진행을 해야 하는지 김 PD는 결정해야 했다.
그때 허름한 옷차림의 한 사내가 무대에 올랐다. 예정에 없던 갑작스러운 등장에 무대는 술렁이기 시작했으나 김 PD는 이 정체 보를 마지막 후보를 지켜보기로 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나일구라 소개했다. 그는 양발을 깨끗이 씻고 수건으로 닦았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최석구는 그의 발이 범상치 않음을 직감했다. 그는 본능적으로 나일구에게 달려가 그의 발을 유심히 살펴봤다.
“아니, 이런 발이 한국에 존재했다니…. 허허허 지켜보겠네. 나일구 군”
나일구는 밀가루를 풀고 발로 반죽을 하기 시작했다. 나일구는 강한 힘을 주며 발바닥으로 반죽을 쳐댔다. 그는 반죽을 엿가락처럼 늘렸다 꼬기를 반복하며 쫄깃한 면을 만들었다. 삶은 면은 탄력과 쫄깃함은 최석구의 반죽과 흡사했다.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이라고 봐도 좋을 듯했다.
“바로 이거야!”
김 PD는 소리를 질렀다.
“음, 완벽한 족타면이다.”
최석구가 말했다. 그도 속으로 차기 후계자를 이미 정한 듯했다.
“자, 그럼 최석구 명장님의 시식이 있겠습니다. 후보자들의 만든 면을 맛보시고 평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사회자가 말했다.
“이런, 이게 수타면이라니, 차라리 제면기로 뽑은 면이 낫겠군요.” 최석구는 수타면을 만든 후보자들에게 혹평과 질타를 날렸다.
최석구는 마지막 후보자 나일구의 면을 맛보았다.
“아니, 이건!”
최석구는 씹던 면을 뱉으며 소리쳤다.
“쫄면이다! 족타를 치는 과정에서 글루텐이 다량 생성되어 쫄면이 되었다. 짜장면 면발의 쫄깃함을 넘어 버린 거야!”
“자, 그럼 마지막으로 최석구 명장님께서 후계자 지목이 있겠습니다.”
사회자가 말했다.
“제, 후계자는…. 인천에서 온 4번 후보자 이득천 씨.”
“아니, 마지막 후보자 나일구 씨는?”
사회자 말했다.
“아쉽게도 그의 면은 중식이 아니라, 분식에 가까웠습니다.”
최석구가 말했다.
방송이 종료되고 출연자 대기실로 들어온 최석구는 나일구의 어깨를 치며 말했다.
“훗, 좋은 발 맛이었다. 언젠가 보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