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 이사가자고? 어디? 경기?

by 글솜


휴 ...아슬아슬 했다.


오전 7시. 오늘은 한달동안 타고다닐 SRT 정기권 예매하는 날. SRT정기권 발권 오픈 날 부터 변함 없었던 6시 50분 부터 준비하는 한결같은 태도 덕분에 오늘도 원하는시간으로 예매를 완료 할 수 있었다. 예매 완료 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날짜를 선택하고 들어갔더니 내가 예매한 앞뒤 시간 포함해서 벌써 전부 예매가 완료된건지 회색빛으로 변한게 보였다. 시간을 보니 7시 2분. 7시부터 열리는 발권 시간을 생각해 봤을때, 오픈한지 겨우 2분만에 왠만한 시간대의 예매가 끝난것이다. 정글 속 사자에게 쫒기듯 이 정기권 예매가 점점 치열해지는 모습에 땀이 등줄기를 타고 쓱- 내려왔다.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내가 오송 - 서울 출퇴근을 결정하게된 가장 큰 계기는 바로 이 SRT였다.


교통체중을 겪는 버스와는 달리 특별한 재난이 있지 않고서는 시간이 일정한 기차야 말로 출퇴근시간을 기다림과 두려움의 미학으로 만들지 않는 그 건실하고 정확한 모습에 내 이 금같은 시간을 맡길 수 가 있었건만, 탈 수 있는 사람과 시간을 한정하다 보니 SRT 예매는 언제나 사람을 촉박하게 만들기만 하였다.


힘겹게 SRT예매를 끝난 그날 아침은 홀가분하게 출근할 수 있었지만, 간혹 가다가 뜻하지 않게 예매를 놓친 순간에는 정기권 발권 일자에 맞춰 눈물을 머금고 타고다닐 좌석표를 예매하기도 하였다. 좌석표 예매는 정기권보다는 가격대가 있지만, 맘편하게 갈 수 있다는 점에서는 돈값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통로에 힘겹게 서있지 않아도 되고... 통로 좌석을 노리지 않아도..되고...여..역시 돈이..최고다.


거의 1분단위로 표가 매진되는 신기한 현상을 겪고 있을 무렵. 뜻밖의 위기가 나를 덮쳐왔다. 그건, SRT정기권 발권시 선택한 차량의 앞뒤 기차 또는 1시간 이내 차량만 탑승이 가능하다는 공지가 뜬 것이다. 공지를 보고 뒤통수를 맞은듯 머리가 멍- 해졌다.


이보쇼 SRT양반. 그 이게 무슨 청천벽력같은 말이요.출근시간은 그렇다 치고..퇴근시간은 어쩌란 말이요...


사실 이렇게 되면 출근시간도 살짝...위기다. 지정열차와 그 앞뒤 기차 또는 1시간 이내 차량만 탑승이 가능하다는건, 그 동안 출퇴근 시간대 영역 내 어떤 차량을 선택 해도 시간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탈 수 있어서 그래도 발권이 그나마 용이했는데 이렇게 공지한 것처럼 선택한 지정시간 앞뒤 또는 1시간 이내 차량만 탑승이 가능하게 변해버리면, 안그래도 치열한 정기권 티켓팅이 어마어마한 경쟁률을 뚫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안 그래도 인원제한을 둔 정기권인데, 시간마저 이렇게 제한을 둬버리면.... 으하... 해낼 수 있을까..? 자신감이 스멀 스멀 사라져 저 멀리 점이 되어버릴 것 만 같다...






“이상하다.. 왜 아직도 정기권 발권이 안되지..?”


오랜만에 시댁에 내려간 주말.

주말 일요일 아침은 정기권 예약가능한 날로 잊어버릴까봐 알람을 미리 맞춰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초조한 맘에 알람시간 보다 일찍 방에 들어와 핸드폰을 켜고 정기권 예매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특정 시점 이후로 날짜가 더 이상 보이지 않는것이다.

내가 원하는 날짜는 그 특정 시점 이후 날짜인데..뭐지?하며 어플이 업데이트가 안된건가? 아니면 오류인가? 생각하며 업데이트 리스트에 있는지 보기도 하고 어플을 껐다가 켜보기도 하는 둥 혼자만의 내적 갈등을 겪고 있을때, 방문이 드르륵- 하고 열리더니 남편이 성큼 방안으로 들어왔다.


정기권 예매한다고 들어간 내가 돌아오지 않고 조용하자 잘 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들어와 봤단다. 궁금해 하는 남편에게 어플을 보여주면서 이 이상한 상황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조용히 듣고 있던 남편이 핸드폰을 보면서 꿍얼꿍얼 거리고 있는 내 옆에 누워 묵직한 한마디 툭- 하고 던졌다.


“이사갈까?”

“응?”


예상치 못한 한방이다.

나처럼 어떻게-를 같이 외쳐줄지 알았건만, 이사라니 갑자기 이사라니 이게 무슨 소리요. 남편양반?


당황한 내 표정에 남편이 이사를 왜 해야 할지 차분하게 설명해주었다. 이사의 원인은 바로 나. SRT 예매가 점차 힘들어지는 나의 꿍얼꿍얼한 소리가 주 원인이였던 모양이였나 보다. 남편도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 그만 두겠다는 의사를 내비치기로 결정 했던 때라 직장으로 인해 오송에 머물 수 밖에 없는 상황이 해소가 될 예정이였고 게다가 곧 전세 만기가 다가오는 시점이라 이사를 하겠다면 지금이 딱 적기이긴 했었다.


하지만, 이사의 ‘이’ 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나였기에 남편이 말한 ‘이사’는 크게 와닿지 않았었다.

이사.. 이사 가는게 맞는걸까?


출퇴근이 남들보다 다소 힘들긴 해도 나처럼 기차로 출퇴근 하는 사람들이 많기에 나만 힘든거 아니네 라는 생각에 힘들다는 범주에 특별하게 넣지는 않았었다. 오히려 집 근처의 풍경이 마음에 들어 이곳에 사는게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했었기에 기차의 출퇴근이 내 삶속에서 사라질 꺼라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았었던 것도 있었다. 계절마다 변하는 집앞 호수공원은 사계절 다 예뻤지만, 특히 가로수마냥 심어진 벚꽃들이 봄에 활짝 핀 덕분에 봄밤에는 남편과 함께 마실나가듯 벚꽃길을 산책 하기도 했었다.


진해 진항제 빰치는 우리집 앞 벚꽃 가로수길


진해 진항제까지는 아니더라도 굳이 그곳에 가지 않아도 여유롭게 즐길 수 있었던 벚꽃길과 위치 덕분에 가까운 교외로 쉽게 놀러 나갈 수 있었던 탓에 주말에는 이리저리 정말 열심히도 돌아다녔다. 출퇴근이 남들보다 좀 힘든거 빼고는 나름 만족스러운 오송생활이였기에 이사까지는 크게 생각하지 않았었는데...

이사.. 이사 가더라도 지금 사는 집처럼 만족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사를 고려하지 않기에는 남편 말처럼 점점 정기권 발권이 어려워지기에 이사하는것도 이 상황을 타계하기 위해서는 나쁜 선택은 아니였다. 게다가 경기도 아닌가 서울까지는 아니지만 경기남부는 괜찮은 인프라도 갖추고 있어 나중에 아이를 낳더라도 교육이나 이런면에서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나름 고민 끝에 남편과 함께 2년전 처럼 주말마다 SRT를 타고 경기도로 올라와 집 구경을 하기 시작했다.




이 놈의 집. 언제나 이놈의 집이 문제다.


내 출퇴근이 편해야 하기에 역세권 위주로 다니다보니 마음에 드는 집은 금새 누군가가 휙- 하고 채가기 바빴다. 틈나는대로 집을 알아보러 다녔지만 괜찮다싶다가도 마음에 드는 집이 나오지 않거나 가격이 맞지 않아 그저 흠흠흠 거리며 돌아보기만 하였다.

오송 집까진 아니지만 나름 괜찮네 하는 집을 발견하긴 했지만, 그것도 금새 망설이는 사이에 누군가가 휙- 하고 가지고 가버렸다. 재빠르기도 하셔라....


그렇게 한참을 돌아보다가 도착한 곳은 광교.

그동안 봤던 집들과 다르게 시원하게 뻥 뚫린 도로와 가까운 마트. 그리고 근처 파출소에 걸어가면 10분 걸리는 지하철 역까지 완벽한 3박자를 이루는 모습을 보고 탐을 냈다가 과연 이런곳에 우리가 살 집이 있을지 두려운 마음으로 공인중개사 한 곳을 정하고 문을 열려고 하자 덜컹! 뭔가 걸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열리지 않았다. 불은 켜져 있는데 문이 열리지 않다니... 창문너머로 보니 사람이 없는걸로 보아 잠시 자리를 비운 모양이였다.


어떻게 할까.. 다음 봐뒀던 곳으로 가봐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찰나,다른 곳 공인중개사로 그냥 한번 가보자 라며 그 근처 공인중개사 가게 문을 잡고 들어섰고 우리는 오송의 집처럼 마음을 사로 잡는 집을 발견 하였다.

생각했던 가격대보다 좀 높아서 망설였는데, 공인중개사 분의 현란한 말솜씨와 홈쇼핑에서 익히 들었던 멘트인 ‘인기 있는 상품이라 곧 매진됩니다!’라는 말을 듣자 마자 이 집 놓칠 수 없다는 생각에 그자리에서 계약금이요!를 외치고야 만건 비밀이다.


그렇게 서울에서 충북으로 이사갔던 것처럼 우리는 다시 충북에서 경기도로 이사 갈 준비를 시작했다.


그때와 다른 점은 한명이 아닌 두명의 짐에 그간 살림살이가 늘어 1톤 트럭에 못싣고 갈까봐 전전 긍긍했다는 정도? 라고나 할까. 이삿날 당일 남편말에 따르면 마치 테트리스 쌓듯이 짐을 겨우 넣었다며 이삿짐 사장님의 실력에 감탄 했단다.


그렇게 계약금을 보내고 이삿날이 정해지면서 우리는 저녁에는 살림살이를 하나 둘씩 정리하면서 다시끔 멘붕을 겪었고, 낮에는 회사 근처 은행을 찾아 부족한 전세금을 대출하느라 바쁘게 보냈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이 오송의 생활을 마칠 이삿날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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