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 오송으로 출퇴근 하는 길이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이 금싸라기 같은 시간을 어떻게든 활용해야 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서울에서 살때는 퇴근하고 여기저기 다니며 이것저것 배웠었는데 출퇴근을 기차로 하다보니, 퇴근 후 무언가를 하기에는 집에 도착하면 현관부터 늘어져버리는 저질 체력을 가지고 있는 탓에 퇴근 후 집에서 뭘하겠다 라고 마음먹기 어려웠다. 집 - 회사, 집- 회사 쳇바퀴 도는 듯한 이 단조로운 생활을 헤쳐나가기 위해선 언제가 좋을까 골똘히 생각하다가, 회사 출근 전으로 체력 소모가 적은 시간이며 막 잠으로 체력을 완충 시킨시간인 아침 출근 시간을 활용하기로 하였다.
집 - 회사 까지 이용하는 여러 이동수단 중 오송역에서 기차를 타고 수서역까지 딱 40분 이 구간이 적합하다고 판단했는데, 나머지 시간은 내 발로 이동하는 시간이라 뭘 집중적으로 하기는 어렵다고 봤고 내발로 이동하지 않으면서 무언가를 집중 할 수 있는 이 구역이 알맞다고 보았다.
그 전까지는 몰랐는데, 내가 생각보다 하나에 꽤나 몰입하는 애였다.
자기개발을 하기로 마음먹고 하는 시간까지 정하게 되자, 내 머릿속은 ‘자기개발’로 한껏 가득차 다른 상념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어져 버렸다. 게다가 이제 그 시간에 어떤 자기개발을 할 것인가에 온 정신을 쏟다보니, 안그래도 가끔 멍- 때리던 애가 밥을 먹으면서도 아무말을 하지 않자 남편이 ‘무슨생각해? 요즘 자주 멍때리네’ 라며 눈에 초점을 맞추라는 식으로 내 앞에 손을 휘휘 저어보이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오랜 고찰과 통찰의 시간을 거쳐서 결정한 자기개발 첫번째 과목은 한국사 였다.
인문계고등학교를 거쳐서 대학땐 인문계열 전공을 선택했던 탓보다는 어릴때 부터 보고 자란 역사스페셜과 엄마가 책 좀 읽으라고 사준 한국사 전집, 그리고 부모님의 위인을 통해 역경과 고난을 헤쳐나가라는 뜻에서 보여주신 온갖 사극 (그러기에는 그 당시 사극은 전쟁만 나왔다) 덕분에 부모님의 의도와는 다르게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서 지대한 관심과 사랑을 어릴때 부터 쏟았었다. 의도와는 달랐으나 그래도 부모님의 눈물겨운 노력 덕분인지 학교다닐때 국사 그까이꺼 대충 훑어봐도 국사 시험은 나름 괜찮은 점수를 유지 했다. 다만, 흐름의 큰 틀 위주로 알다 보니 세부적인 정책들은 약했던 탓에 수능때는 국사를 아주 대차게 말아 먹었다.
이건 지금 생각해도 충격적이였다.
국사를 나름 사랑했고, 전공도 고고학이다 보니 선사시대쪽과 역사시대 쪽은 남들보다는 아-주 쪼금 잘 안 탓에 이 재능을 썩힐 순 없다는 밑도 끝도 없이 나타난 자신감이 다시 나를 사로 잡았고, 그럼 이참에 한국사자격증이나 따보자 라는 생각에 한국사 문제집을 선택 했었다.
이까이꺼 할 수 있지 암암 하며 당차게 집어들고 출퇴근용 가방에 꾹-꾹 눌러 담아 다른 분들은 휴식을 취하는 그 구간에 나는 눈을 반짝이면서 한국사 문제집을 탐독 했었다. 하지만 난, 누구인가. 서울에 살때도 지하철에서 부족한 잠을 채워넣던 그런 직장인 아니였는가
잠으로 시간을 보내던 내가 갑자기 오송- 서울로 출퇴근 한다고 그 습관이 갑자기 사라지지는 않았다. 분명, 나는 책을 손에 쥐고 삼국시대를 화려하게 연 백제 파트를 보면서 오송역을 출발 했었는데 갑자기 SRT가 종점역에 도착할 때 흘러나오는 SRT송이 귓가에 흘러 들어오고 있는것이다. 정신차리고 보니 손에 꽉 쥐었던 책은
손가락 끝에 겨우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고, 쉼없이 흔들렸을 머리는 무의식 중에 숙면을 취할 최적의 기대는 위치를 찾아 낸듯 벽에 다소곳하게 기대어 있었다.
막 잠에서 깬 멍한 머리로 상황판단을 하면서 손으로는 가방에 다시 꾹-꾹 눌러 넣는 한국사 문제집을 보며 나에게 깊은 한숨을 내쉬었고, 몇일간 한국사 문제집과 함께 사투를 벌이는 아침이 이어졌다.
몇번의 시행착오 끝에 숙면까지 이르지 않는 방법을 익혔지만, 그렇다고 집중하는 습관 역시 갖지 못했다.
오송- 지제역까지는 나름 멀쩡한 정신으로 집중했으나, 지제역에서 동탄역 근처는 꾸벅꾸벅 졸다가 동탄역- 수서역까지는 쏟아져 오는 잠을 이기지 못한채 그대로 넉다운으로 쓰러지는 일이 지속되었다.
왜 난 이 황금같은 시간을 잘 활용하지 못할까를 깊이 고민하다가 그냥 눈으로 읽기만 해서 그런거다 라는 나름의 결론을 내리고 그럼 눈 뿐만 아니라 말로도 할 수 있는 공부가 필요하겠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뜬금없이 선택한 두번째 과목은 바로 ‘영어’였다.
한국사와 다르게 영어는 인문계고와 인문계열 전공을 선택한 나에게 쥐약같은 공부였다.
새해 첫날, 올해는 영어 정복! 을 외쳤지만 그 다음해 목표로 넘겼던 그 나날들. 그렇다고 해서 멀리 할 수도 없는 이 저주같은 영어.
하지만 영어는 한국사와 다르게 말을 해봐야하기도 하고...그리고.. 한편으로는 영어를 잘 해서 나도 네이티브처럼 말하고 싶다 라는 소망도 한가득 담고 있기에 출근길 이 황금같은 시간 딱 40분 정도 할 수 있는 영어책을 찾아 헤메이기 시작했다. (안녕 한국사야)
맨 처음 후보군에 올랐던건 누구다 다 아는 ‘굿모닝 팝스’. 어릴때부터 굿모닝 팝스를 즐겨들었다던 애가 따로 영어공부 없이 네이티브 수준의 영어를 구사했다는 이야기도 많이 듣기도 했고, 영어 공부하다면 대부분 ‘굿모닝 팝스’를 떠올리기에 나도 자연스럽게 ‘굿모닝 팝스’를 맨 처음 생각했었다.
굿모닝 팝스 어플로 다운받아 듣기 시작했을때는 오- 역시 좋아 했지만, 방송시간이 아닌 재방송을 어플로 다운받아서 듣다보니 굿모닝 팝스에서 가장 매리트 있는 팝송의 전곡을 듣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나는 어휘력이 초급인데, 굿모닝 팝스를 듣고 따라하기에는 내 수준에서는 조금 버겁다는 생각도 들어 굿모닝 팝스 외에 다른 영어 책이 있을지 재 탐색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찾은 책이 ‘30초 영어말하기’책. 30초! 이게 정말 매력적인 단어라고 생각한다. 시작하기에 부담없는 이 느낌! 게다가 책 내용도 나같은 초급이 다루기에 딱 알맞은 책이라 주저없이 이 책을 손에 쥐었다. 이 책은 총 4권의 시리즈로 제작되었는데 마지막 목표가 3분 말하기. 30초말하기 부터 시작해서 이 시리즈 책으로 단계를 밟고 가다 보면 나도 어느새 3분동안 네이티브와 말 할 수 있을것 같은 분홍빛 희망을 마주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 이제 아침시간 자기개발 책은 이 시리즈 첫 책인 30초 말하기. 이거야! 하며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남편 손을 잡고 서점 계산대로 향했다.
30초 영어말하기. 이 책은 한국사와 다르게 나름 성공을 거두었는데, 하루 분량이 정해져 있어 굳이 40분을 다채우지 않아도 하루 분량만 말끔하게 끝내면 나머지 시간은 편안한 마음으로 즐길수가 있었다. 게다가 하루 분량도 그렇게 많지 않아서 오늘 분량을 끝내고 나머지 시간에는 숙면을 취하는 두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게 되어 큰 어려움 없이 30초 말하기 책은 완독 할 수 있게 되었다. 세상에.. 내가 이걸 끝내다니 아직도 그 감격스러움을 잊지 못한다.
완독 후 자신만만하게 그 다음 단계인 1분 말하기를 사고 다시 한번 그 뒤를 이어 갔으나...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1분말하기는 마지막장을 덮지 못하고 있다. 뜻하지 않게 앞쪽 페이지만 닿고 있는 상황이랄까... 책장에 곱게 꽂힌 영어책이 나의 양심을 푹-푹 찌르고 있는것 같아 쳐다보지 못하겠다.
요즘 다시, 영어 공부에 재미를 붙이고 있어 프렌즈도 보고, 동화로 된 영어 원서 책도 보고 있다. 그리고 30초 영어 말하기 책도 다시 펼쳐 영어로 자유롭게 이야기 하는 순간을 꿈꾸며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공부하고 있는 중이다.
30초 말하기 뿐만 아니라 1분 말하기의 마지막 장까지 돌파해서 시리즈의 마지막인 3분말하기 책까지 집에 들이는걸 목표로 삼고 있는데, 이 3분 말하기가 끝날 때 쯤에는 내가 네이티브와 간단한 이야기 정도는 할 수 있는 수준으로 올라설 수 있으면 좋겠다
이번에는 꼭! 성공 할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