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도 기차, 퇴근도 기차입니다.

회식은 어렵답니다 꺄-

by 글솜


출근을 했다면 퇴근이 있는법. SRT로 출근을 했으니, 이제 퇴근도 SRT이다.


출근길이 체력과 순발력을 시험하는 길이였다면, 퇴근길은 빠른 판단력을 요하는 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출근길과 마찬가지로 체력도 중요하지만 퇴근길은 빠른 판단력, 이게 가장 중요했다. 내가 사무실에서 몇시에 움직이느냐에 따라서 퇴근할때 탈 수 있는 기차 시간이 정해지기 때문인데 이 판단이 늦어진다면, 수서역 플랫폼에서 9시 기차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슬픔을 맛보게 된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이 빠른 판단력을 자유롭게 펼치지 못했다.

출근은 시간은 정해졌지만 퇴근은 정해지지 않았던 그 시절.. 이긴 했지만 난 SRT를 타야 하는 명목하에 퇴근이 다른 이보다 조금은 자유로웠다.

그래도 그럼 뭐하나 하필 프로젝트 땜에 거의 밤 늦게까지 남아 있다가 퇴근하곤 했는데 뭘.


회사에 내 활달한 기를 다 바치고 나서 남은 체력을 이끌고 집으로 가는 SRT로 향햐는 길은 늦은 시간이라 좌석도 좀 비어 있으면 객실안으로 들어가 쓰러지듯이 주저 앉았다. 그렇게 기력없이 좌석에 몸을 기대며 주위를 둘러보면 나처럼 의식만 남은채 집으로 퇴근하는 퇴근러들을 마주칠때가 있는데 이때마다 다시금 동지애를 불태웠다. ‘으아아- 힘내자!’ 하고


퇴근시간이 흩어져 있는 탓아 퇴근길의 SRT는 출근길과는 다르게 여유롭다고 할 수 있는데 이 덕분에 많은 삶의 단상을 가까이에서 지켜 볼 수가 있었는데, 그중에 제일 기억남는 일은 바로 이 일이다.


한 3살에서 4살 정도 되보이는 남자아이와 엄마가 나와 함께 객실 밖 통로에 같이 서 있게 되었다. 상황을 봤을때 좌석을 끊었지만 고요한 객실 안 공기를 견디다 못한 아이의 칭얼거림에 엄마가 하는 수 없이 밖으로 데리고 나온듯 하였다. 약간 들떠있는 아이의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반쯤 자포자기한 엄마의 표정은 바라보는 이를 안타깝게 하였다.


“엄마! 우리 기차타고 있는거야? ” “응. 기차타고 가고 있어”


기차타는게 재미있었는지 이동하는 내내 쉼없이 기차를 타고 가는건지 물어보는 아이 물음에 놓칠새라 끝없이 답해주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그분의 투철한 직업정신에 내심 감탄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나는 내 일에 이렇듯 투철한 마음으로 임하였던가 라며 반성하고 있을때,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동탄이 목적지인 듯 동탄역에 도착한다는 기차 안내방송이 나오자마자 엄마는 아이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듯 “이제 내릴꺼야, 이제 내려야 해, 알았지?”를 연신 말하고 있었지만 아이는 자기가 타고 있는 기차에 매료된듯 엄마가 주문처럼 되뇌이는 말에 대꾸도 하지 않는채 기차에 대한 이야기만 연신 풀어놓고 있었다.

그때 그 상황이 동탄역에 어떤 사고로 이어질지 나는 짐작도 하지 못한채 아이가 기차를 너무 좋아하나보네 라는 생각만 했었다.


그리고 동탄역에 도착한 SRT의 문이 열리고 엄마가 내리려고 아이 손을 잡자 마자 아이가 자지러지게 울며 객실 통로에서 드러 눕고 말았다. 아 - 나는 그 모습을 차마 보지 못해 두 눈을 질끈 감고 싶었지만, 자칫 잘못했다간 위험한 상황으로 돌변 할 수 있기에 어- 어- 라는 외마디 비명만 속으로 외치고만 말았다.

이 이후의 상황은 엄마와 아이의 숨막히는 대치 상황이 이어졌는데, 울며 불며 버티는 아이를 겨우겨우 기차 밖으로 옮긴 엄마는 스크린도어 앞에서 한번, 스크린 도어 너머로 한번 힘겨운 싸움을 이어갔다.

그 후 기차 문이 닫혀 보지는 못했지만, 엄마의 그 힘겨운 싸움에 깊은 애도의 마음을 표하며 동탄역을 떠났다.


퇴근길 뿐만 아니라 출근길에도 아이와 엄마가 힘겨루기를 하는 광경을 가끔 보게 된다. 아이의 높은 흥을 감당하지 못해서, 아이의 칭얼거림, 울음을 달래기 위해 예매한 좌석을 뒤로 한채 통로에 한참 서서 아이가 진정될때까지 어르고 달래는 기나긴 시간을 보내는걸 볼때 마다 나중에 내가 아이를 키우게 되면 어떻게 대처할까 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내가 저분들처럼 침착하게 아이를 잘 달랠 수 있을까?




주로 SRT를 타고 출근과 퇴근을 하고 있지만, 가끔 KTX도 이용할 때가 있는데 동탄을 빠져 나가기 전까지 어두컴컴한 지하로 달리는 SRT와 달리 KTX는 한강을 통과하면서 달리기에 SRT와는 다른 경험을 느끼게 해준다.

서울 중심부에서 시작하는 시발역(출발역)이다 보니, 서울 중심부를 쫙- 통과하게 되는데 KTX 창밖에 보이는 한강 불빛과 한강 가장자리를 붉게 빛내는 도로위에 한가득 차 있는 차들을 볼때 마다 아 - 서울에 와있구나 라는 걸 실감하게 된다. 그리고 이 풍경들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서울의 모습 이라 가만히 있지 못하고 핸드폰을 꺼내서 한장 또 그렇게 남겨 보았다.



오랜만의 KTX 퇴근길



기차를 타고 퇴근을 하는건, 지하철을 타고 움직일 때 보지 못했던 계절의 변화를 쉽게 느낄 수 있는데 가장크게 느꼈던건 퇴근시간의 노을의 모습이였다.

그 전까지는 잘 느끼지 못하다가 일정한 시간에 퇴근을 하다보니 여름에 나타나는 노을의 시간과 겨울에 나타나는 노을의 시간이 달랐다는 점이였다. 우리 모두가 다 알듯이, 여름은 해가 길고 겨울은 해가 짧아 여름의 퇴근은 체감상 하루가 길게 느껴져 좀 빠른 퇴근을 하는 기분이 들고, 겨울의 퇴근은 금새 어두워져 하루고 너무 짧게 느껴져 아쉽게만 느껴진다.


가끔 운 좋게 객실 밖 통로에 있는 의자를 차지하거나, 객실안 비어있는 창가자리를 앉을때 마다 볼 수 있는 퇴근길의 풍경은 업무와 사람에 지친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힐링같은 시간이 되곤 하였다.



SRT 퇴근길 풍경, 한동안 내 핸드폰 갤러리는 이런 풍경 사진만 한가득이였다



퇴근을 기차로 하다보니, 뜻하지 않는 좋은점도 생겼는데 그건 바로 회식 빠르게 빠져나오기.


서울에 살때는 지하철이 늦게까지 다니다보니 회식자리가 생겨도 1차에서 끊고 나오기가 좀 힘들긴 했는데, 퇴근을 기차로 하다보니 1차 중간에도 잽싸게 끊고 나올 수 있게 되었다.

가끔 주체못하는 흥에 겨워 기차 막차시간까지 버티다 간적도 있긴 하지만, 재미 없는 회식의 순간에는 이 퇴근길의 고단함을 십분 발휘해 먹을꺼만 먹고 딱! 나올 수 있게 되어 꽤나 나쁘지 않았고, 기차 시간에 맞춰 움직이거나, 정차역인 오송역에서 잘 내리기 위해서 술도 거의 안먹다시피 하다보니 의도치 않게 이제는 술 한잔만 마셔도 띵- 하는 수준에 까지 이르게되어버리고 말았다.


...의도치 않은 금주라니... 술 못마시는 내가 겨우겨우 소주 반병을 만들어 놨더니만... 원상복귀라니. 노력이 허사가 되어서 슬프긴 하지만, 이 참에 술 못마신다 라는 타이틀이 붙어도 나쁘지 않을것 같았다.


이제 누가 뭐라해도 술 못마셔요 오호홋-을 시전해도 넘어갈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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