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지하철 같죠?
그러니까 말이다.
이거는 지하철이 아닌 기차인데 왜 나는 오늘도 잔뜩 몸을 움츠린채 기차 통로에서 서 있어야 할까?
SRT로 출퇴근한지 1년쯤 되었을 무렵, 등뒤로 맸던 가방을 품에 꼬옥 안으며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서로가 널찍하게 떨어져서 통로 가장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순간이 엇그제 같은데 그 모습은 옛날 옛적 이야기 마냥 저 먼 신기루가 되어 사라지고 숨쉴 공간만 겨우 남긴채 다들 최대한 몸을 움츠려 나름의 공간을 확보하고만 있었다.
객실 밖 통로의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객실 안 복도 사정도 만만치 않다.
복도 한가득 가방을 맨 직장인들이 차지하고 있다 보니, 기차 안을 돌아다녀야 하는 승무원들은 우거진 숲속을 헤쳐나가 듯이 그 인파들을 요리조리 피해 객실 안과 밖을 돌아다닐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분들이 그런 일만 하나? 그 어수선한 와중에 정기권 발권표도 검사하고 다녀야 하기에 그분들의 수고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나 같으면 좀비처럼 워-워- 하며 다닐텐데, 눈 마주치거나 뭔갈 물어볼때 얼굴에 미소를 띄고 친절하게 답변해주시는 승무원들을 보면서 맘속으로 ‘우리 힘내요..화이팅’ 라는 생각이 절로 났었다 .
지금 생각해보니 그냥 생각만하지말고 당 떨어질때 대비해서 달달한 사탕이나 젤리같은것 좀 챙겨서 드릴껄..
시간이 지날 수록 점점 차오르는 출퇴근 이용객 들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그동안 이야기 한 오송역 외에 다른 역 이야기도 잠시 해야 할것 같다.
출근시간에 이용하는 수서행 SRT 기차는 종점인 수서역에 도착하기 위해선 오송역 외에 2개의 역을 더 지나야 하는데, 바로 지제역과 동탄역이다.
지제역은 위치 때문에 그런지 모르겠지만 오송역과 동탄역에 비해서 타고 내리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적기에 이 역까지만 해도 기차에 가까운 모습이지만, 동탄역에 들어서는 순간 SRT는 기차보다 지하철에 더 가까운 모습을 띄게 된다.
오송- 지제역까지는 이용객의 숫자가 그렇게 많지는 않아서 승무원분들도 타고 있는 사람들도 한결 여유로운 모습이기도 하고 이 순간까지는 기차가 지상을 달리고 있을 뿐더러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보다 높게 위치해 있는 고속철도의 특성 덕분에 출근을 위해 도로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차들의 모습과 해가 서서히 밝아오는 하늘의 모습을 비교적 손쉽게 눈에 담을 수 있다.
그렇게 풍경을 헤치며 달리다가 갑자기 눈앞에 짙은 어둠이 깔리며 창 밖의 어둠이 기차안으로 스며들기 시작하는데, 이 어둠이 시작되는 순간이 바로 동탄역에 가까워졌다는 이야기이며, 그동안은 기차였던 이 SRT가 지하철로 변신하는 순간이 다가온다는 이야기였다.
천연색이 수놓았던 풍경을 대신하던 호박색의 길다란 불빛이 창밖을 이어가다가 어느새 호박색의 긴 실선이 점선과 같은 모습을 띄기 시작했을때, 익숙한 형광등의 불빛이 보이면서 주위가 밝아지기 시작하더니 SRT가 정차하는 소리가 들리게 되면 지하철의 모습을 한 동탄역에 도착하게된다.
동탄역은 일반 기차역과 조금 다른 모습이긴 한데, 지하에 위치해 있고 정차역이여서 그런지 지하철처럼 큼지막한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어 있다.
지하철의 스크린도어와 다른 모습은 스크린도어와 기차사이에 서 있을 수 있는 넓은 공간이 있어 승무원들이 정차시 그곳에 서있기도 하고 동탄역에 내려보지는 않았지만 스크린도어 한쪽을 가득 채운 광고판도 보이지 않는다는게 조금 다른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마 오송역 아래부터 SRT를 타고 오는 사람들도 오송역 플랫폼에 줄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고 똑같은 생각일 것 같은데, 동탄역에 기차가 도착하고 기차문이 츠-윽! 프레스 같은 소리를 내며 두껍고 육중한 문이 열리면 투명한 스크린도어 너머로 길다랗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누가봐도 출근을 위한 SRT를 기다리는 직장인들이라는걸 한눈에 알수 있는데 마치 사당역에 도착한 2호선을 타기위해서 결연한 의지를 뿜어내는 직장인들과 같은모습에 흠찟 하였다. 드래곤볼에 나오는 상대방의 파워수치를 재는 파란색의 안경이 있다면 아마 그들의 의지를 차마 다 재지 못한채 터져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어디까지 이어져 있을까 할 정도로 길게 늘어뜨린 줄은 스크린도어가 열리는 그 순간 파도치듯이 무질서하게 기차 안으로 들어올것 같지만, 서 있는 줄대로 차분히하게 바쁜 그 와중에도 소리없이 질서 정연하게 테트리스 쌓듯이 객실 안 복도부터 객실 밖 통로까지 빈틈없이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한다. 이렇게 동탄역 출근러들이 차안으로 빈 공간을 찾아 차곡차곡 매꿔갈때 , 그전에 타고 있던 다른 출근러들은 그 동탄분들을 맞이하기 위해 나름 준비를 하는데 몸을 한껏 벽에 붙인다던지, 가지고 있던 짐을 최대한 몸에 밀착 시킨다든지 아니면 최대한 뒤로 후퇴해 반대편 기차문 근처까지 밀려난다는지 등 여러가지 작업을 하기 시작한다.
가끔은 다른사람의 신발 뒷꿈치에 내 신발 앞코가 찰싹 붙어있기도 한다.
하지만, 안팎의 각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차 문이 닫히는 바로 앞까지 가득 찰 때도 있고, 바로 앞사람이 겨우 타는걸 목격하고 공간이 남아 있는 호차를 찾아 발빠르게 움직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하는데,
이런 긴박하고 숨막히는 순간에도 기차문이 열리지 않는 안쪽 통로 의자에 자리잡으신 분들은 나름 평화롭게 이 사태를 담담하게 관망하는 행운을 누린다.
이 모습들을 한장의 그림으로 남길 수 있다면 기차문 근처는 지옥도요 안쪽 통로 의자 근처는 홍차 한잔을 즐기며 그 지옥도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동탄에서 사람을 가득 채운 SRT가 승무원들의 수신호에 맞춰 서서히 육중한 문을 닫고 출근러들의 마지막 종점인 수서역을 향해서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자 동탄에서 SRT를 탄 사람들과 함께 20분이라는 시간을 보내고나면 종점에 다다를때 나오는 SRT송이 흘러나오면서 이 길고 험난한 출근길이 마무리 된다.
승무원분들의 손놀림과 함께 기차문이 츠-윽 하며 열리면 자기 순번을 기다리며 보이지 않는 차 안의 줄을 통해 움직이지 않는 땅에 발을 내딛게 되면, 차안에서 함께 했던 순간들을 잠시 뒤로 한채 바쁘게 플랫폼 너머에 있는 3호선과 분당선을 향해 다들 바삐 사라진다.
가득찼던 객실이 순식간에 텅 빈 모습을 나도모르게 빤히 쳐다보다가 정신차리고 서둘러 플랫폼을 벗어났다.
기차이지만, 지하철 같은 이 기차와 작별하고 아침보다 조금은 숨통틀것 같은 퇴근시간의 기차를 생각하면서.
우리 내일 아침 또 만나요. 그때는... 제가 좀 더 벽에 붙어볼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