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로 출근하는 직장인 입니다.

by 글솜


7시 16분 SRT수서행 기차. 오송역 5번 플랫폼.


남편 직장에서 40분, 내 직장에서 1시간 30분 소요 되는 우리가 살기 시작한 청주 오송.

그리고 그 출퇴근을 가능하게 만들어준 SRT.

일정시간에 도착하는 기차 덕분인지 내 출근 시간은 ‘7시 16분’ 으로 내 의지와 상관 없이 정해져 버렸다.

단, 한계를 넘어선 자연재해는 제외.


꽤 먼거리에서 출퇴근 하는 탓에 한번은 지각이나 차를 놓치는 일도 있었을 뻔도 한데, 서울 - 오송 출퇴근을 한 그 기간동안은 기차 연착을 제외하고는 다행히 내 사유로 늦어본적이 없었고 그때 당시 팀장님도 그건 참 신기하다고 생각하셨단다.


기차로 출퇴근을 시작하면서, 뜻하지 않는 스킬 하나를 터득하게 되었는데 그건 바로 누가 기차로 출퇴근하는 직장인인지, 단순 이동을 위한 이용객인지 그저 플랫폼에 발 딛는 그 순간 빠르게 캐치하는 기술이였다.


추운 겨울이나, 뜨거운 여름에는 이 기술은 쓸 수가 없다. 다들... 맞이방으로 들어가 버려서....다만 , 그때를 제외하고 플랫폼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모습은 플랫폼 바닥에 쓰여있는 몇호차 앞에 가지런히 줄지어 서있는 사람들과 벤치에 앉거나 이리저리 흩어져서 자신이 탈 기차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사람으로 나뉘어 지는데, 이 중 출퇴근을 하는 직장인은 바로 OO호차라고 써 있는 곳 앞에 가지런히 줄지어 서 있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5번 플랫폼에 들어섬과 동시에 망설임 없는 표정으로, 맹수가 사냥감을 노리듯이 몇호차가 기재되어 있는 곳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보이지 않는 벽이 있는거마냥 어느지점에 딱 선 후, 자기가 원하는 기차가 올때까지 핸드폰을 켜고 이어폰을 꽂으며 자신들의 할일을 하기 시작한다.


한 사람이 그렇게 서 있으면 이윽코 다른 한 사람이 자석에 이끌리는 것처럼 그 뒤를 잇는데, 그렇게 잇고 잇고 잇다보면 플랫폼에는 아침 출근시간만 볼 수 있는 기다란 줄이 만들어 진다 . 잠깐의 이동을 위해 플랫폼 위를 배회하던 사람들은 그 가지런한 플랫폼 위의 질서를 보고 잠시 당황해 하다 그 줄에 합류하기도 하고, 그 줄에 관심 없는 듯 줄 밖에 서서 기다리기도 한다.


물론, 나는 그 줄에 뒤따르는 사람이거나 그 줄을 만드는 사람이기도 한다. (제일좋은건 역시 맨 앞자리!)


출근길이 익숙해 질 무렵 눈에 익은 사람들이 하나, 둘씩 보이기 시작하는데, 이때쯤이면 또 다른 사실 하나를 발견 할 수 있게 된다.


그건 이 기차와 출퇴근을 하는 분들은 거의 대부분 늘 자신이 기다리는 OO호차가 거의 정해져 있다는 점이다 . 나는 주로 5호차 앞에서 기다리곤 했는데 , 어느 순간부터 내 옆인 6호차 자리에 늘 같은 사람이 서 있다는걸 알아 챘다.


내 고정 자리가 5호차 앞이된 사연은 딱히 특별한건 없었는데 SRT정기권 발권 전 개별좌석을 끊던 시절. 주로 5호차를 타게 되어서 였는데, SRT정기권이 발권 된 이후에도 다른 호차를 타본건 아니지만 내가 기다리는 5호차는 객실 밖 복도에도 그렇게 사람들이 많았던 건 아니여서 크게 다른 호차로 옮겨야 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어쩌면 내 옆 6호차 자리를 지키던 그분도 나와 비슷한 사유로 그자리가 자연스럽게 기차를 기다리는 고정자리가 되지 않았을까?


나는 5호차 앞에!


아는사람은 알겠지만 SRT는 입석이 없다. 다만 출퇴근을 하는 사람들은 지정좌석이 없기 때문에 비어있는 좌석이 있으면 앉을 수 있고 운이 좋으면 통로에 비치되어 있는 의자에 앉아서 갈 수 있는데 이 의자는 객실안 좌석처럼 비켜줘야 할 사람에 대한 부담이 없기에 수서역까지 마음 편하게 앉아 있을 수 있었다.


정기권이 생긴 이후, 내가 노리는 자리는 이 객실 밖 통로에 있는 의자였는데 이 의자는 다행스럽게도 오송역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비어 있어서 기차 문이 열리면 후다닥 하고 자리에 앉곤 했었다.


통로에 있는 자리이긴 하지만 나름 창문이 있어 그 자리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가는 재미도 쏠쏠 하였다. 창문모양이 객실과 다르게 길다란 타원형이다 보니 비행기 창문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깨어있는 동안은 여행가는 기분으로 바쁘게 움직이는 창밖을 보곤 했었다. 물론, 가다가 중간에 기절해서 많이 보지는 못했지만.


다시 어두컴컴한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 하는 요즘. 그 창문 너머로 봤던 그 풍경들이 가끔 그리워진다.


앞서 설명 한 것처럼, 나 말고 SRT로 출퇴근 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았다.

7시에 기차역에 도착해서 플랫폼으로 가기전 위치한 대합실에는 언제나 정장입은 사람들이 좀비마냥 무리를 지어 우르르 모여있곤 했었다.


출근용 가방과 잠을 깨워줄 따뜻한 커피를 손에 꼬옥 쥐면서 자신이 타고 갈 기차를 기다리거나, 커다란 TV에 나오는 아침 뉴스에 시선을 빼앗기기도 하다가 대합실 한켠에 마련된 음식점에서 허기진 배를 채우기도 했다. 편의점에서 김밥을 사서 가는 사람들 덕분에 이른 시간이지만 편의점도 커피숍도 항상 불이 켜져 있었다.


새벽의 서늘함과 따뜻한 커피의 향, 그리고 뜨뜻하면서 뭉근하게 퍼지는 국수집의 온기는 출근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평온하게 감싸는 공기 같다는 생각을 간혹 하곤 했었다.





SRT 이야기만 해서 이 기차 출근길은 SRT 만 있다고 생각 할 수 있는데, 오송역은 SRT 와 KTX가 다니는 곳이라 KTX를 타고 출근하는 직장인도 심심치 않게 찾아 볼수 있다. 나도 간혹 좀 이른 출근이나, 본사가 있는 광화문으로 갈 일이 생기면 SRT가아닌 KTX를 타고 출근 하기도 한다.


SRT가 아닌 KTX를 타는 날은 객실 안 고객이 되어 객실 밖의 긴 타원형의 창이 아닌 커다란 직사각형의 창으로 밖을 구경 할 수 있는데, 주인이 오기 전 잠깐 앉는 자리가 아닌 온전한 내 자리기에 느긋한 마음으로 햇빛에 반사되는 한강을 바라보곤 하였다.


SRT와 KTX는 서로 종점이 다르기에 지나가는 길이 다른데, SRT는 지상으로 움직이다가 동탄부터는 지하로 쏙- 하고 들어간다. 그때부터는 어느 지하철과 마찬가지로 어두컴컴한 풍경만 보여주다가 수서역에 다다르면 인공적인 불빛이 출근러들을 맞이하게 된다.


반대로 KTX는 지상으로 움직이다 보니 종점에 다다르기 전, 널다란 한강과 그 양옆을 에워싸는 집들과 도로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 모습을 볼때마다 진짜 서울에 도착한것 같은 느낌이 들어 조금이라도 눈에 담아가고자 창밖으로 시선을 떼지 못하게 된다.


SRT가 KTX보다 좀 더 쾌적하고, 좌석간의 배치도 넓고 깨끗하고 대표색인 보랏빛이라 마음에 들지만 KTX는 SRT가 보여주지 못하는 한강을 잠시나마 볼 수 있어서 KTX를 타러 가는길이 더 설렌다. KTX 타고 집에 가거나, 출근하는 날은 사무실로 출근 하는 날 보다 여유롭게 움직이는 날이라는건 비밀이다.



출발시간과 도착시간이 정해져 있는 기차 덕분에 출퇴근시간도 강제 고정되어 거의 정해진 시간에 사무실 도착했지만, 뜻하지 않는 자연재해로 인해 늦은적이 몇번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10시 넘어서 사무실에 도착한것도 아니였지만.... 기차가 10분씩 연착 할때마다 기차 플랫폼에 있는 커다란 시계를 보면서 발을 동동 굴리거나 비슷한 시간에 도착하는 서울행 KTX를 타기 위해 옆 플랫폼으로 날아가듯이 달려가는 우리, 기차 출근러 들.

같은 처지여서 그런지 저 멀리서 볼때마다 동질감과 대단함을 같이 느끼게 해주는 그 분들 덕분에 지치지 않고 나름 잘 다닐 수 있었던것 같다.


말하지 않았지만 눈빛을 교환하지도 않았지만, 어쩌면 서로가 서로를 힘내자고 응원하고 있지 않았을까?


음.. 너무 앞서갔나...?





서울- 오송 출근길에 익숙해질 무렵, 심심해서 인터넷을 이리저리 뒤지다가 다큐 3일에 서울 - 오송 출퇴근 하는 직장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걸 우연하게 봤는데, 그분 마지막 말이 기억에 남는다. 제작진이 힘들지 않으세요? 라는 말에 너무나 덤덤하게 ‘아뇨. 힘들지 않는데요?’ 라며 체력적으로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그 분을 보고 다음날 집 근처 정관장에 가서 홍삼 한달치를 사서 먹었었다.


아무리 그래도.. 좀...힘....아무튼 이 기나긴 출퇴근을 위해서는 그분처럼 체력을 키워야 할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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