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부부가 떨어져서 살아서 어떻해~
같이 살아야지
결혼은 했지만, 아직 서울에서 살고 있을 무렵
결혼 후 처음 뵌 시댁 친척어르신께 인사드리자 걱정스럽다는 표정 과 함께 미간의 주름을 한껏 잡으시면서 하신 이야기. 이제 갓 결혼한 파릇파릇한 신혼부부가 직장때문에 서로 떨어져 사는게 많이 안타까우셨나보다.
친척어르신 말씀을 뒤이은 어머님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안타까워 하시는 친척분을 위해
- 주말부부는 삼대가 덕을 쌓아야지만 이룰수 있는거라던데, 제가 그 덕을 보나봐요! - 라는 멘트를 날릴 준비를 하고, 눈을 반짝이며 어머님 말씀 끝나기를 기다렸지만, 새식구온다고 열심히 준비해주신 달콤하고 맛났던 간식들을 입에 쏙- 넣으며 다음으로 기약하였다.
일면식도 없던 (아니, 나만 없던) 친척 어르신의 말처럼, ‘주말부부’ 라는 화두는 어르신들 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풀리지 않는 답없는 수수깨기 중 하나였다.
서로의 직장이 서울과 청주라, 나와 어르신들의 희망과 기대에 부흥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희생이 절대적으로 필요 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내가 부서를 옮기면 이 고민과 걱정거리가 해소 될테지만, 나 역시 나만 생각하다 보니 부서이동은 아에 배제한 상태였다.
결혼 준비를 하는 동안, 이런저런 고민을 했었지만 쉽사리 결론이 나지 않았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흘러 결혼식을 올리고 꿈꿨던 신혼이란 문을 열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주말 부부였다.
서로의 생활을 합치는 것보다 결혼 준비땜에 이것저것 신경쓸게 많아서도 그랬겠지만 누구의 이동거리를 더 멀게 할껏인가... 를 쉽사리 정할 수가 없었다.
남편 과 나의 의견이 다른것도 쉽게 정하지 못한 것도 이유 중에 하나였는데,
서울- 청주를 오고가는 기나긴 출퇴근길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또한 쉬운일이 아니기에 남편은 평일에는 각자의 생활을, 주말에는 같이 있는게 나을꺼라고 했었고, 서로를 위해서도 그 편이 어쩌면 현명한 판단이라고 여겨 남편말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주말부부로 살다가 자식들 다 보내고 합쳤더니 맨날 싸우기만 한다더라구요."
"진짜요?"
"서로 몇십년동안 따로 생활했던 패턴이 있는데, 싸울수 밖에 없지"
주말부부를 고민한다는 말에 주변에서 하나 둘씩 이런 저런 이야기를 물어다 주셨는데, 그 중에 가장 충격적인 이야기는 긴 주말부부 생활로 인한 부부간의 갈등.
차분이 생각해보면 달랐던 서로의 생활을 삶의 모습을 합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불협화음은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 인데, 다들 주말부부하면 떠오르는 농담같은 말에 주말부부의 폐해를 생각하지 못했었나 보다.
주말부부는 삼대가 덕을 쌓은거? 아니다 아니야.. 이거는 다 거짓부렁인거다
남편과 나는 대학교 CC로 시작해 10년 연애라는 기록을 세우고 연애 초반에 농담삼아 했던 말처럼, 정말 연애 10년차에 결혼식을 올렸다. 서로가 서로에게 한 이 소름끼치도록 정확하게 일치해버린 예언을 우리는 아직도 믿기 힘들어 하며, 특히 나는 주변사람들에게 의미 심장하게 말하곤 한다.
말 함부로 하지 말라고.. 정말, 정말 들어맞아버린다고 말이다. 가장 가까운 예시인 나를 들면서.
10년간 연애기간동안 매일같이 본 순간도 많았지만, 남편이 청주로 직장을 잡게 되고 나는 여전히 본가가 있는 광주에 있다 보니 얼굴 볼수 있는 시간이 일주일 한번에서 한달에 한번으로 길어져 버렸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데, 다행히 우리는 몸은 멀어졌지만 마음은 멀어지지 않아 연애의 시간을 길게 누릴 수 있게 되었고 내가 광주에서 서울로 부서이동을 하게 되므로써 한달에 한번 봤던 우리는 일주일에 한번으로 볼 수 있는 시간이 다시 짧아지게 되었다.
한달에 한번 보다가 다시 일주일에 한번씩 보기 시작하면서 서로 우리 너무 자주보는것 같다며 각자 시간이 없어 라며 농담삼아 말하곤 했었는데, 그게 결혼 후까지 이어지게 될줄은 몰랐었다.
결혼 하고 나서는 같이 있을 줄 알았는데..
“우리 같이 살자....”
“하지만 어떻해...”
협의되었던 주말 부부가 다시 화두의 쟁점에 서게 되었다. 끝나지 않는 나의 칭얼거림에 남편도 난감한듯한 표정으로 그저 바라보기만 할 뿐이였다.
그래, 안다 나도 칭얼 대고 있긴 하지만 지금 이 상태에서는 우리에겐 방법이 없을꺼란걸
그냥, 단순한 답없는 칭얼거림이라는걸.
하지만, 이 복잡한 난제를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었는데 바로 내가 살던 서울 집이 어느덧 만기일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연장 할껀지 말껀지에 대한 답을 이 때도 내리지 못한 채 우리는 다시금 각자의 지역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