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시 오송읍으로 전입신고 하러 갑니다.

by 글솜

회사에 하루 연차를 내고, 서울에서 오송으로 이사가던날

어두컴컴하고 긴 터널을 통과하자 높다란 빌딩과 도로에 한가득 채운 차가 아닌 한적한 시골같은 풍경이 눈앞에 쫘-악 펼쳐졌다. 그 풍경에 다시한번, 아- 진짜 내려왔다는게 실감났다. 시야 막힌 곳 없이 확 트여서 참 좋았지만.... 내가 여기서 잘 살 수 있을까?


서울에서 30분만에 끝난 이삿짐이 충북이라고 해서 달라질건 없었다. 여기서도 딱 30분만에 끝난 내 이삿짐

매일 퇴근후 밤새 정리했던 짐이 너무나 빠르게 옮겨지고 나니 허탈했다. 사실 시작은 이제부터인데.. 옮기는게 다가 아니라 그 짐을 이제 제자리에 가져다 놓는게 더 큰 일이라는걸, 이사 초보인 나는 미처 알지 못했다.


짐을 대충 옮기고, 하루가 끝나기 전에 전입신고를 하고자 집근처에 있는 읍 출장소로 바로 갔다.

전입신고서를 작성 후, 읍사무소 직원분이 주민등록증 뒷면에 이사한 주소가 기재된 투명한 스티커를 서울 주소 아래에 붙여주시자 이제 정말 시민이 아닌 도민이 되었구나-라며 새삼 변한 주소를 쓱- 어루만져보았다.

서울시민에서 충북도민이라니, 본가에 있을때도 광역시에 살았던 덕분인지 한번도 주소지에 OO도가 기재된 적이 없었는데 이것도 참 새로운 경험인가 싶었다.


그렇게 주민등록증을 보면서 혼자만의 상상에 잠겨 있었을때, 갑자기 직원분이 건네주신 빨간 쓰레기 봉투

이게 뭔가요?라는 표정으로 바라보니, 전입 기념 선물이라고 하셨다.


전.입.선.물?


참, 사람의 마음은 간사하다

서울을 떠난 그 울적했던 마음이 이 전입선물에 얼음 녹듯 사르륵 사라져 버리고야 만걸 보니 말이다.

서울에 전입신고 할때도 혼인신고 할때도 기념 선물따위 없었는데! 여기는 선물이라니!

직원분께 건네받은 빨간 쓰레기 봉투를 품에 꼬옥 안으면서 다짐했다.

청주 , 오송! 이제부터 너를 내맘에 품기로


그렇게 쓰레기봉투에 감탄하고 있을때, 이어진 선물은 바로 ‘청주사랑카드’. 여기저기 혜택이 있다고 설명해 주셨지만 이미 쓰레기봉투에 맘을 빼앗겼던 나의 귀는 어떤 내용도 제대로 담지 못했고 남편과 함께 그곳을 유유히 빠져나왔다. 그 덕에, 사용기간이 정해졌던 그 카드는 단 한번도 유용하게 사용하지 못했다.


이게 타지역에서 청주로 전입시 주는거라고 들었는데... 왜 한번도 사용을 안했는지... 지금도 의문이다. (그냥 받기만 하고 지갑속에 넣어서 보관만 했었다)

그와 반대로 내맘을 사로잡았던 전입기념 큰 쓰레기 봉투는 이사짐을 풀고 정리 할때 아주 큰 힘이 되어주었다

뭐, 쓰레기 봉투만 잘 썼으면 된거지


아무튼 .. 그렇게 전입신고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


이삿날은 중국집이라는 널리 알려진 공식에 맞춰 집 바로 옆 중국집으로 갔지만.. 문이 닫혀있어 중국집이 아닌 그 옆 편의점 컵라면을 먹었다.

그것도 집에서 못먹고 편의점 간이 식탁에 앉아서 남편과 둘이 호로록 게눈 감추듯이 먹었었다. 편의점 간이 식탁에서 먹었던 라면이 이상하게 맛있어서 며칠 뒤 편의점에 다시 가서 그 라면을 사먹었는데 이게 왠걸.

이상하게 그때의 그 맛이 다시 나지 않았다. 공장에서 나온 똑같은 기성품의 라면인데 말이다.


분말가루의 비율, 면의 굵기 등 배합이 달라진게 없었을텐데도 그 맛이 나지 않는걸 보면 그때의 온도, 분위기, 감정이 양념처럼 나오지 않았던 탓이지 않을까.




옮기만큼 손쉽게 끝날 줄 알았던 이삿짐이 해가 저물어 주위에 어둠이 내려 앉을때까지 반도 정리하지 못했다. 정말 딱 내 물건만 있었는데, 뭐가 이렇게 많을까 싶다.

남편은 아직 살고 있던 원룸 계약이 끝나지 않아서 한동안 이 집과 그집을 왔다갔다 해야 한단다.

그 말은 거실 한 가득 쌓여 있는 저 박스 더미는 다 내꺼라는 이야기. 3년간의 시간이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는 모양이다. 아침에는 아쉬웠는데 정리하는 저녁에는 아쉬움보다는 아찔할 지경이다.


이삿짐 박스가 반쯤 가리고 있는 이전 살던 집처럼 벽 한가득 차지한 창 너머로 노을로 붉게 물든 하늘이 눈에 한가득 들어왔다


다른건 몰라도, 이사한 우리집 노을 맛집인건 틀림없다.



노을 맛집 우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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