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오송으로

by 글솜


“어디로 이사가요?”


몇날 며칠 정리했던 이사짐을 남편과 용달차 기사님이 30분만에 정리를 끝내는 걸 보고 허탈해 하고 있을때

1층 사무실에서 나머지 서류를 정리하던 공인중개사분이 넌지시 물어보셨다.

전날, 9시에 이사짐 옮길꺼다 라는 말에 -그렇게 빨리요?- 했던걸로 보아, 10시도 안된 나름 이른시간에 서두르는 모습에 내심 궁금하셨나보다.


“충북이요”


정확히는 청주시 오송읍..이지만 ‘오송이요’라는 말에 거기가 어디냐, 어디에 있는거냐...부터 시작해서 결국,

네이버 지도까지 켜서 보여주는 시련을 겪고 싶지 않아 그냥 간단하게, 도 이름만 알려드렸다.


“어머, 서울아가씨가 지방 가서 어떻게 살아”


이 말을 들은지 벌써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나름 신선한 대화였던지 글을 쓰는 지금도 그 공인중개사분의 목소리가 귓가에 생생하게 멤돈다.

아니, 어쩌면 내가 그 앞에서 - 저 원래 지방아가씨인데요....- 라는 말을 타이밍 맞게 못받아쳐서 그런건지도 모르겠다. 그분 말에 ‘ 그러게요...’라며 어색하게 눈웃음만 치고, 좀전과 다른 의미의 허탈한 표정으로 사무실 밖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남편을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광주에서 서울로 운 좋게 부서이동을 해서 살았던, 첫 자취의 로망을 실현한 6평 오피스텔은 난생 처음 오롯히 가져본 나만의, 나를 위한 공간이였다.

보증금을 보태주신 엄마의 취향을 못 들어오게 막을 수는 없었지만, 고요하고 싶으면 고요하게 혹은 시끄럽게 해도 엄마의 매서운 등짝 스매시와 같은 누구의 방해 없이 내가 하고싶은대로 할 수 있었던 나만의 공간.


자취의 로망을 실현시킨다고, 인터넷에서 발품팔아 주문한 얼룩말 스티커는 더위 먹었던 그해 여름부터 내가 이사가기 직전까지 집의 위트를 담당하였고, 나름 좋은 뷰를 가지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잘보였던 건너편 오피스텔 덕분에 벽 한가득 차지했던 창문은 나무가 그려진 커다란 커튼으로 가려졌는데, 생각해보니 커튼을 젖혀서 생활했던 적은 별로 없었던것 같다.


우리집의 위트를 담당했던 얼룩말. 스티커 붙이느라 너무 힘들었다



겨울에는 굳이 난방을 돌리지 않아도 오후 2시부터 쏟아져 들어오는 겨울 햇살과 옆집, 윗집, 아랫집의 훈훈한 온기 덕분에 따뜻하게 살았지만, 그 따뜻했던 햇살이 여름에는 살인적인 열기로 바뀌자 지옥을 선사해주었다.

겨울때처럼 들이치는 오후 2시의 햇살은 작았던 그 집에 한가득 열기를 뿜어냈고, 막 시작한 자취 초보생인 나는 에어컨 = 전기세 폭탄이 너무 뇌리에 박혔던지, 에어컨이 있던 풀옵션이였건만 선풍기로 버텼던 호기로 인해 자취를 시작한 첫 여름에 집에서 더위를 먹는 쾌거를 이룰 수 있었다.


그때 그 자취방에서 더위먹은 이야기를 할때마다 남편은 아직도 웃음꽃을 피운다.

그래, 내 더위로 너 하나 웃겼으면 된거지 뭐.


혼자 사는 딸이 잘 먹고 잘 자는지 걱정되 지방에서 올라오신 엄마와 함께 아담하게 보낸 밤.

동이 트면 신나게 지하철도 타고다니면서 서울 구석구석 구경도 하고, 가끔 큰 맘먹고 엄마가 올라오는 일정에 맞춰 예약한 호텔 마사지샵에 가서 호화스러운 휴일도 보내기도 했었다.


언제나 맛났던 엄마표 집밥도 덤으로 얻어먹으면서.


그때 남자친구였던, 남편이 자취방에 놀러오면 예약했던 뮤지컬과 서울하면 고궁이지! 하며 고궁구경에 회사에서 회식 할때나 회사동료분과 같이간 카페나 술집이 괜찮으면 남편과 함께 서울의 휴일을 즐기기도 했었다.

현타가 심하게 온 평일에는 퇴근길에 뮤지컬, 연극을 보러다녔는데 지금 생각하면 정말이지 신나게 돌아다녔던것 같다.


휴일 아침에 급 예매한 연극. 생각보다 무대와 너무 가까워서 신기했다



그렇게 신나게 돌아다니다 보니, 통장이 텅장이 되는건 순식간이였지만 덕분에, 결혼 전 제일 기억에 남는게 뭐냐고 물어본다면 자신있게 3년간의 자취 생활이라고 바로 답해 줄 수 있다.


그렇게 살았던 그 집을, 결혼이라는 선택과 함께 더 살지 말지 고민이 필요한 순간이 쑥 하고 다가왔다.

나름 원거리 커플이였던 만큼 각자의 직장이 1시간 40분 정도 떨어져 있었던 상황이였고, 남편이 서울로 직장을 옮기길 바랬지만 남편의 특수한 직종 덕분에 쉽사리 직장을 옮길 수는 없었다.

그와 반대로 내가 다니는 회사는 전국에 지점이 있을 정도로 내가 맘만 먹으면 부서이동이 가능했지만, 안타깝게도 난, 부서이동을 할 생각이 아에 없었다.

부서이동은 하기 싫었고, 신혼이기에 남편과 떨어지기 싫었던 나는 내 일생에 아주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바로, 충북에서 출퇴근을 하기로.


충북에서 출퇴근 하는것도 어렵지 않겠다라고 생각 할 수 있었던건, 막 SRT가 개통해서 운행을 시작했을 때인 2016년 12월.


결혼하고 첫 시댁 어른들을 뵈러가기 위해 그 SRT를 타고 남편이 기다리고 있던 오송역까지 내려가보니, KTX보다 쾌적한 객실 환경과 승차감, 종착역인 수서역과 오송역과의 시간이 딱 40분 이라는 것.

그리고 이사하기로 마음먹은 시점에 마법같이 나타나 나와 남편을 사로잡았던 투룸 신축 오피스텔까지.. 어떻게 이렇게 모든게 계획했던 것 마냥 딱딱 맞춰서 나타났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나는 서울이 아닌 오송에서 살 수 밖에 없었던 운명의 이끌림을 받은건 아니였을까?




공인중개사 분의 정리가 끝나고, 나머지들 (가스비 등등...)은 차후 연락해서 정리하기로 하고 3년간의 서울의 흔적을 가지고 있던 내 모든걸 싣은 파란 용달차에 몸을 싣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용달차가 부르릉 하며 시동이 걸렸다.

덜덜덜 떨리는 감각에 그제서야 정말, 이 서울을 떠나는게 실감이 났다. 많이, 오래 있지도 않았는데 그 짧은 3년동안 여기에 정이 많이 들었던건지.. 광주를 떠났을때와 다르게 섭섭함과 아쉬움이 휘몰아치듯이 덮쳐왔다.

첫 독립했던 그 순간과 짧지만 몽글몽글했던 많은 기억을 담고 있던 마냥 작지만은 않은 그 공간을 떠나는게, 아쉬움과 섭섭함을 불러온게 아닐까 싶다.


출발하는 용달차의 창 너머로 다시한번 첫 자취방에 인사를 보냈다.


안녕, 나의 서울. 다음에 만나




*여담이지만, 그렇게 이삿짐 차를 타고 내려가는 길에 걸려온 공인중개사분의 전화. 내가 도시가스비를 과납했다는 이야기


도시가스비를 언제.. 그렇게 과납한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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