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타고 출퇴근 합니다.

by 글솜
나랑 얼마 차이 안나네



약간 김빠진 듯한 회사 동료분 말에 “..그러게요...” 라고 희미하게 웃었다.


오송으로 이사하고 난 첫 출근날.

집에서 역으로 가는 길은 출근길인데도 여행가기 전날처럼 긴장되고 살짝 설레었다.

나에게 기차란, 명절날에는 흡사 BTS 티켓팅 처럼 치열하고 간절했으며,간혹 본가로 내려갈때 기분전환 삼아 타고 가던 출근용이 아닌 여행에 더 치중한 교통수단이였는데, 이걸 타고 출퇴근을 하게 될 줄이야...


특히나 막 이사했던 시점은, SRT정기권이 오픈되지 않았을때여서 정기권이 오픈되기 전까지 일반기차 타듯 좌석예매하면서 이용을 했었는데 그덕인지 출근길보다는 생각보다 힘겹지는 않았었다.

게다가 시선을 살짝 돌리면, 굴처럼 어두운 지하철 창밖에 아닌 다채로운 색감의 풍경들이 더 들뜬 기분을 선사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출근길인듯 출근길 아닌듯한 오묘한 기분과 함께 들어선 사무실.

사무실에서 유일하게 지하철과 버스가 아닌 기차를 타고 출근한 어린 직원의 아침의 고단함을 듣고 싶었는지 하나, 둘씩 호기심 어린 눈빛과 목소리로 이것저것 물어보셨다.


“집에서 회사까지 얼마나 걸려? 집 문 딱 나서는 시점부터”

“음....한... 1시간 2~30분 정도 걸리더라구요”


집에서 나와 오송역까지, 오송역에서 수서역까지, 수서역에서 회사까지

교통수단은 자차, 기차, 지하철, 버스.. 총 4가지이고 충북과 서울의 거리감도 있지만 생각보다 걸리는 시간은 약 1시간 30분 .

집에서 회사까지 오는 수단을 이야기하면 다들 놀래다가 소요시간을 이야기 하면 뭔가 허탈해 하면서 허무하듯이 ‘나랑 얼마 차이 안나네...’ 라며 되뇌이거나 ‘ 그것밖에 안걸린다고?’ 라고 놀라면서 하나, 둘 내 옆에서 소리없이 스르륵 사라지셨다.


흡사 녹음기를 틀어놓은 것 마냥 똑같은 질문에 나름 명쾌(?) 했던 내 답변에 다들 내심 놀라셨는지 다들 허탈하게 돌아섰는데, 돌진하듯이 다가온거에 비해 스르륵- 하고 사라지는걸 보니, 아마 이분들이 원했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었나보다. (다들...참...)


그렇게 나름 설랬고, 사람들을 살짝 실망시킨 아침과 함께 뒤이어 파도처럼 몰려오는 업무에 치어 이리저리 흔들리는 멘탈을 잡다보니 어느덧, 그 누구보다 간절히 기다리던 퇴근시간.


이때는 어느 기업이든 마찬가지로 정시 퇴근이 7시 이후로 생각했던 시절이라, 6시 40분에 7시 이후 퇴근기차를 예매하고자 SRT 앱을 켰었다.

흥얼거리며 여유롭게 출발역과 도착역을 입력하고 기차표를 예매하고자 기차 시간표를 본 순간,

7시 이후 퇴근이고 뭐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급하게 노트북을 끄고 팀장님께 고개만 까딱 인사한 후 정신없이 사무실을 벗어났다.


집에가는 기차 7시 기차가 7시 10분과 30분 이렇게 2대. 8시 기차는 눈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그 다음 기차는 9시이후인 상황.


아무리 계산을 해봐도 시간상 7시 10분기차는 어려울것 같았고, 남은 7시 30분 기차는 어떻게든 타야, 그대로 9시까지 기차역에서 정말 우두커니 기다리는 불상사를 간신히 아주 간신히... 막을 수 있을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KTX라는 또다른 대안이 있었지만 그때의 나는 그 또다른 대안을 생각해 내기에는 머릿속은 이미 하얗게 변해있던 상황이고, 온통 SRT로 가득찬 내머리와 함께 힘차게 움직이는 내 두다리는 온갖 상황에 대한 시뮤레이션을 급박하게 돌리기 시작했다.


회사에서 수서역까지 넉넉잡아 30분, 이것도 버스와 지하철이 딱딱 들어맞아야 했었다.


버스를 타고, 3호선을 타면서 수시로 지하철 앱과 시계를 번갈아 보면서 발을 동동 굴리며 3호선인 수서역에 내려서 SRT플랫폼까지 죽어라고 뛰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뛰는 내 모습을 역무원이 보면 그래도 1~2분은 벌수 있지 않을까... 라는 일말의 희망과 함께 3호선 수서역에 도착하자마자 탐크루즈와 툼레이더의 라라에 빙의한것 마냥, 매의 눈으로 사람들의 틈새를 찾아 비집고 들어가 기나긴 통로의 끝에 위치한 SRT역으로 미친듯이 내달렸다.


이 달리기가 어쩌면 내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정말 열과 성을 다한 달리기지 않았을까.


열과 성을 다한 이 달리기 덕분인지, 아니면 아직 초행길에 들어선 이들을 보살피는 초심자의 운 덕택인지

아슬아슬...까지는 아니지만 턱까지 차오른 숨을 그래도 고르는 여유를 선보이며 7시30분에 오송으로 떠나는 보랏빛의 SRT 퇴근 기차를 탈 수 있었다.

예매한 좌석에 앉자마자, 이 긴박한 퇴근길의 사태를 전해들은 남편에게 ‘기차탔어’ 라는 안도의 카톡을 보내고는 마치 바람빠진 풍선마냥 좌석에 흐물흐물 늘어지고 말았다.


나중에 들은 내용이지만 평화롭게 일하던 애가 사색이 되서 노트북을 급히 끄고 나가는걸 보고

팀장님은 -저 기차가 마지막인가 보네- 라고 생각하셨단다.

(팀장님, 그 기차... 마지막은 아닙니다....하지만.. 뭐...굳이 아실필요까지야....)


이렇게 설렜던 출근길과 혼돈의 도가니였던 퇴근길이 공존했던 기차 첫 출퇴근길.


퇴근길에 마중나온 남편과 함께 포근한 우리집으로 돌아오니 긴장했던 탓인지 온 몸이 노곤노곤 하면서 평소보다 빠르게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평소보다 저녁밥은 두배로 맛있었다!




“응? 나는 오송 집값이 얼마인지 물어보던데?”


늦은 저녁밥을 먹으면서 남편에게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해주니

남편은 회사동료분들께 나와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보통.. 시간을 물어보지는 않는 모양이다.... 하긴 내출근길이 특이하긴 하지...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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