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칭얼거림과 서울 자취방의 월세 만기일로 인해, 우리는 연애와 결혼에 뒤이어 또다른 결정을 내려야 했다.
외부출장이 잦은 남편의 직업 특성상, 출근-퇴근-집 일정한 패턴으로 생활하는 내가 있는 곳에 신혼집을 차리는걸로 우선 방향을 잡았고, 만기도 다가오겠다
지금 살고 있는 서울 자취방은 딱 둘이 누우면 그 어떠한 공간도 남아 있지 않아 자취방보다 좀 더 넓은 투룸을 보러다니기로 잠정 합의하였다.
음... 지금 생각해보면 합의보다는.....나만의 선택이였던 것 같기도..
하지만, 이것도 누군가의 출퇴근이 아닌 주말부부라는.... 전제로 보러다닌거였다.
집을 보러다니면서 내가 평일에 혼자 있다보니 남편은 주변이 안전한지를 주의 깊게 살펴봤고, 나는... 다른것도 아닌 전세금에 대해서 현타를 맞고 있었다.
둘다 사회 생활을 한지 꽤 되었지만 은행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는 빌라의 전세도 구하기 어려웠던 상황.
너무 손쉽게 몇억씩 부르는 말들과 가격이 괜찮으면 입지가 좋지 않거나 , 입지가 괜찮으면 가격이 좋지 않은 이 복잡미묘한 상황에 또 다시금 좌절하고 말았다.
서울에서 구경했던 집 중에 가장 기억에 남은 집은, 집 전체가 독특했었다.
투룸이라고 했지만 거실이라고 따로 말해주지 않는 이상 거실인걸 모를 정도로 작은 공간과 부엌은 거실보다는 조금 컸지만 약간 길쭉한 느낌이였다. 거실이 나올 구조가 아닌데 투룸이라는 조건을 위해 거실이라는 구조를 억지로 만들어낸 것 같은 참 독특한 구조 였다.
집 구경동안 흔들리는 나의 동공을 눈치챘는지 묻지도 않은 이 독특한 구조의 설명을 거의 반 강제적으로 듣게 되었다.
“요즘은 명절에 가족이 많이 안모여서 거실을 좁게 안방을 크게 빼요”
아...그렇군요..그런데 그건 자녀 결혼시킨 어르신들한테 해당할것 같은데요...저희는 신혼부부인데요...
라는 말을 다시 꿀떡 삼키며 “그렇겠네요...” 라는 말만 내뱉었다.
이 이상한 집 구조는 건물의 입구에 비하면 오히려 양반이였는데 이 집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곳’을 꼭 지나야 했었다. 그건 바로, 비스듬하게 앞쪽에 위치해 있는 다른건물 빌라 주차장. 그 주차장을 통과하지 않으면 들어갈 수가 없었는데, 이것도 알고 봤더니 집구경 했던 빌라와 통과한 주차장 빌라의 주인이 같다는 사실.
이 사실도 그 공인중개사 분이 말씀해주셔서 알게되었다. 너무 태연하게 말하는 공인중개사분 덕분에, 오히려 저게.. 당연한건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런 현타를 여러차례 겪고 나니, 서울에서는 내가 생각하는 그런 평범한 집을 구할 수는 없을것 같았다.
내가 생각한 집은 그저 거실 하나에 방 두개인데, 나름 평범하다고 생각했던 이 조건이 생각보다 맞추기 힘든 조건이였나보다.
“오송역 근처에 원룸이 많네?”
남편을 청주에서 만난 날 즐겁게 놀다가 기차를 타고 집에 가기 위해서 오송역으로 향하던 길.
내눈을 사로 잡은건 오송역 근처에 빼곡하게 들어선 원룸촌이였다. 원룸촌 너머로 보이는 아파트 단지들까지... 그리고 그 아파트들 사이에 위치해 있는 상가들.
전체적으로 연식이 좀 되어 보이는 아파트 들이였지만, 전반적으로 오송역과 멀지않은 역세권에 위치해 있어 괜찮아 보였다.
이 역세권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지하철이 아닌 기차 역세권이라는게 좀 달랐긴 했지만...
서울 집보러 다니며 지친 내 심신이 오송역 부근에 위치한 집들을 보면서 마음속 그 무언가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는걸 느꼈다. 왠지 여기는 서울과 다르게 내가 꿈꾸던 그 평범한 구조의 집을 왠지 구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 그래 어쩌면 여기가 내가 살 곳인거 아닐까?
오송으로 집보러 다니자는 내 말에 남편이 한차례 반대를 했지만, 남편도 서울 집에 상처를 받았는지 격렬한 반격은 이뤄지지 않았고 본격적으로 오송역 인근 원룸촌으로 주말마다 내려와 집을 보러다니기 시작했다.
서울에서 구경했던 다른건물 주차장을 통과한 그 집이 특이하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왠걸, 오송에도 그집을 뛰어 넘는 집이 한채 있었다.
매주 내려와 찾아본 원룸촌에서 특별하게 맘에 드는 집을 발견 못해 서울 집투어 때와 마찬가지로 점점 지쳐가고 있을때 투룸 구조의 전셋집이 나왔다는 말에 남편과 함께 종종걸음으로 앞서가는 공인중개사를 따라 가면서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랬다. 이제 이번 집이 마지막이였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간절히 바라면서 도착한 빌라.
공인중개사 분의 소개와 함께 현관문을 열었을때 맞이한 집의 첫인상은 ‘어둡다’ 였다.
어둡고 칙칙한 그런 느낌이 들었지만 채광이 별로인가 보네, 오늘 날씨가 이렇게 흐렸던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방 이곳저곳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이 집은 다소 좁은 복도같은 통로에 방이 양옆으로 있는 구조였는데, 처음 본 방의 구조가 커서 옆방도 이정도면 거실, 안방 이렇게 나눠서 써도 될것 같았다. 처음 구경한 방에는 화장실과 세탁실 겸 베란다가 있어 ‘음 나쁘지 않네 여기는 거실로 해도 괜찮겠네.’ 라는 생각과 함께 바로 옆 통로에 위치한 다른 방문을 열었는데
눈앞에 펼쳐진 구조에 내 눈을 의심했다.
“ 이 구조, 방금 전에 본것 같은데...”
흡사 데자뷰를 본것 마냥 정말 방금전 거실로 쓰면 되겠네 라고 생각했던 그 구조와 동일한 베란다 겸 세탁실과 화장실이 떡 하니 나타난 것이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남편과 내가 서로를 바라보고만 있자, 공인중개사 분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원래, 여기에 벽이 하나 있는데 집주인이 벽을 트고 투룸으로 개조 한거래요”
그제서야 이 복사한 듯한 방들의 구조가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현관문 앞에 있던 똑같은 크기의 신발장 2개도 그래, 그제서야 납득이 되었다.
원래는 각자 다른 집인 원룸이였는데, 벽을 허물고 하나의 집으로 소유자 분이 리모델링을 하신거였다.
그저 벽만 허물었을 뿐인 상태여서 리모델링이라고 하기도 민망하지만....각각 방이 하나씩 있는 원룸 두개를 합쳤으니, 계산상으로는 투룸이 되어 그 집이 투룸 매물로 나온거였고, 정처 없이 투룸을 찾아 헤맨 우리한테 소개가 된거였다.
1+1을 하신거구나.. 벽을 없앴구나...그래서 방이.. 그래도... 리모델링을 하실꺼였으면 좀...더 돈을 쓰셔도 되셨을것 같은데.....
씁쓸한 맘과 충격적인 진실을 안고 뒤 이은 공인 중개사분의 말은 뒷등으로 조용히 흘린채 남편과 나는 그저 멍한 표정으로 그 집에서 나왔다.
“꼭, 오송역이랑 가까워야 하나요? 좀 거리가 있어도 괜찮나요?”
충격적인 진실을 품고 있었던 그 집을 뒤로 한채, 마지막으로 찾아간 다른 공인 중개사무소. 오송역 근처로 집보러 왔다는 말에 오송역과 거리가 좀 있어도 괜찮냐는 물음에 아무리 멀어도 오송역에서 5~10분 정도 거리만 차이 나겠지.. 라는 생각에 거리가 좀 있어도 괜찮다고 했더니 신축매물이 나온게 있다며 우리를 이끌었다.
이 이끌림이 몇주간 있었던 지친 심신을 어루고 달래주는 마지막 발걸음이 될줄은 이때는 짐작하지 못했었다.
“신축이에요. 바로 앞에 식자재 마트 보이시죠? 그리고 전망이 확- 트여서 좋아요”
이 집이였다. 내가 꿈꾸던 평범한 구조를 갖춘 집. 나름 큰 거실이 있는 투룸 구조의 오피스텔 이였다.
이어지는 공인중개사 말 처럼, 전망은 가히 장관이였다. 집 앞 큰 호수와 그 호수를 품고 있는 공원이 넓다랖게 펼쳐져 있었고 거실 한쪽 벽면을 가득채운 창으로 따뜻한 햇살이 가득 쏟아지고 있었다.
큰 대로변에 위치해 있고, 집 바로 근처에 정류장이 있어 남편이 출장가더라도 집에 오는길은 걱정없어 보였다. 게다가 조그마한 경비실까지.
그동안 정처없이 헤매고 떠돌았던건 어쩌면 이 집을 만나기 위한 시련의 순간이였고, 이 집은 시련의 순간을 잘 통과한 우리에게 내려준 선물인게 아닐까 할 정도로 이 집은 우리 맘에 쏙 들었다. 게다가 우리가 생각한 예산과 전세금이 딱 맞아 별도 은행 대출 없이도 계약이 가능했다는 점까지.
테트리스 게임의 일자형의 긴 블럭 하나로 복잡하게 쌓인 블럭을 한번에 클리어 한것처럼 이 집은 우리 고민을 한번에 다 해결 해 주었다.
그날 계약금을 넣고, 본격적으로 이사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계약할 집을 구하고 시댁에 내려간 주말.
아버님이 근처에 살고 계신 고모님을 뵈러 가자는 말씀에 후다닥 아버님 차를 타고 30~40분 걸리는 고모님댁에 놀러 갔다.
가는 길, 빈손으로 가기도 뭐해서 근처 시장에서 순대와 (??) 무주 지역 막걸리를 손에 들고 말이다.
결혼식날 스쳐서 본 분들이라 나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나를 기억하는 고모님께 반갑게 인사드리며 남편과 함께 거실에 앉아 차려주신 주전부리를 야금야금 먹으며 얼굴도 모르는 자녀분들 이야기를 들으며 연신 감탄사를 뿜어낼때 나는 뜻하지 않는 한방을 맞고야 말았다.
“ 따로 떨어져서 산다며? 에휴 신혼부부가 따로 살아서 어떻하누?”
고모님 자녀분이야기의 소재가 다 소진되었는지, 너무 자연스럽게 우리 이야기로 넘어왔다.
반사적으로 감탄사를 내뱉던 뇌가 갑자기 나타난 우리 주말부부이야기에 고장난 기계마냥 순간 정지해버린 사고회로로 인해 발빠른 대처를 못하고 있을 그때 아버님이 발빠르게 고모님의 말씀에 답변을 해주셨다.
“ 애네 이제 같이 산데요”
“ 아이구 정말? 잘됐네, 그래 같이 살아야지 따로 살면 안돼”
아버님의 대답을 들으신 고모님의 표정이 밝아지면서 연거푸 잘했네 잘했어- 라시며 좋아 하셨다.
같이 사는 일이 이렇게 칭찬받을 일인가 싶다가도, 그래 뭐 다들 좋아하면 된거지, 힘들었지만 마음에 쏙 든 집도 구했으니- 라는 생각과 함께 잠시 우리이야기로 멈칫했던 이야기 보따리를 다시 술술 풀어놓으시는 어르신들의 말씀에 다시 감탄사를 내뱉는 역할에 몰입 하였다.
함께 살기 위해 집을 구하러 다닌 시간은 매우 힘들었지만, 그래도 남편과 같이 살게 되어서 좋았다.
기나긴 연애 동안에 떨어져 있던걸, 결혼함으로써 드디어 같은 공간과 시간을 공유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도.
만나지 못했던 평일에 나누었던 카톡 문자 하나하나에 녹아져 있는 기분을 알아보겠다고 혼자 연구하던 그 시간도 이제는 불필요 하다는 점까지도.
드디어, 저희 함께 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