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속 300km 마지막 출근길 입니다.

by 글솜


금요일로 정해진 이삿날.


거실 한쪽과 옷방으로 사용하고 있는 방 한켠에 쌓여있는 이삿짐을 보고나자 마음이 울렁거리며 왠지 기분이 이상해졌다.

마지막이라니. 이집과 마지막은 아직 먼것 같았는데, 이삿짐을 싸면서도 실감나지 않던 이사가 바로 내일로 다가오니 그제서야 실감하기 시작했다.


매일 한결같이 집에서 오송역까지 아침 저녁 가리지 않고 바래다준 남편 덕분에 출근길도 퇴근길도 그렇게 힘들거나 지치지 않았고, 높다란 건물에 둘러쌓인 곳에 있다가 도착한 오송은 노을진 붉은 빛을 혹은 어두운 밤 달이 떠 있는 하늘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어 덕택에 눈이 항상 즐거웠었다. 그리고 가끔 남편보다 일찍 도착해 집까지 걸어가는 날에는 집 앞 호수공원을 일부러 가로질러 푸른 잔디나 나무들을 한껏 보면서 숲이 나무가 가깝게 있다는게 팍팍한 내 정서에 얼마나 좋은것인지 온 몸으로 체감 할 수 있었다.


왜 다들 숲세권 숲세권 하는지 이제 알겠다싶었다.


기차타는 시간 때문에, 남들보다는 좀더 일찍 일어나 겨울에는 어두컴컴한 하늘을 맞이하기도 했지만, 새벽의 어둠을 뚫고 붉은 빛이 점차 하늘을 물들기 시작할 때면 눈을 뗄수 없을 정도로 예뻐서 한참을 바라보기도 했던 출근길. 지하가 아닌 지상으로 다닌 덕택에 누릴수 있었던 아침과 저녁 해의 시간 이 모든게 오송에 살기 시작하면서 느낄 수 있었던 감사하고 소중한 순간의 시간이였다.



이제는 차가운 새벽의 공기와 보이지 않던 어둠이 짙게 깔린 새벽하늘이 붉은색으로 점차 물들어가는 모습은 평범한 내 일상이 아닌 앞으로 내가 이렇게 일찍 일어나 움직이지 않는 이상 보기 어려운 순간이 된다니..

천성이 게으른 나로선 이 순간을 앞으로 못볼 확률이 더 높기에 이제 당분간 못볼 이 찰나의 순간을 휴대폰에 담았다.


금요일이 이삿날이다 보니, 회사에는 금요일에 연차를 내고 났더니 이사 전날인 오늘이 SRT를 타고 출퇴근의 마지막 날.

SRT 정기권 발권은 이사때문에 발권할 필요가 없어서 이사하기 전날까지 좌석을 예매해서 다니기로 하였다.

그동안 발권 가능 날에 느꼈던 초조함에서 이제 빠져나온다고하니 약간 홀가분하기도 하고, 점점 SRT정기권 발권하기가 힘들어지고 있다 보니 지금 그 정기권 발권 무리에서 빠져나오는게 적기라는 생각도 든다.


익숙하게 대합실 근처를 지나 전광판에 표시된 호차를 쳐다보지 않고 바닥에 남들은 보이지 않는 선을 따라가듯이 5번 플랫폼에 들어서는 계단에 몸을 맡겼다.


이제는 굳이 몇번 플랫폼인지 확인하지 않아도 감각으로 5번플랫폼에 자연스럽게 들어설 수 있는 가히 기차를 타고 출퇴근하는 직장인의 조건을 드디어 다 갖추었건만 여기서만 통용되는 스킬이라 다른 곳 다른 역에서 사용하기는 어려울꺼다. 게임처럼 스킬 전수하기 이런게 있다면 이제 막 기차로 출퇴근하는 직장인에게 공력을 전달해 주듯이 쓱- 하고 전달해주면서 되게 멋있는척 하며 저편으로 사라질.....아 ...음...너무 영화를 많이 봤나 보다..


정기권이 아닌 좌석을 예매한 덕분에 늘 서있던 5번 호차 앞이 아닌 따뜻한 맞이방에 들어가 멍하니 밖을 바라보았다. 통 창으로 되어있어 기차가 오는지 몇시인지 밖에 사람이 많은지 등등을 확인 할 수 있어 좋고, 사실 더 좋은건 겨울에는 따뜻한 훈기와 여름에는 더위를 물리치는 빵빵한 에어컨이 나오기에 아침의 찬공기와 후끈한 열기를 잠시나마 피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였다.


오송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다 보면 이른 시간때문인지 근처 호수공원 때문인지 가끔 이렇게 짙은 안개가 오송역을 뒤덮을 때가 있는데, 이럴때 앞으로 갈 기찻길을 보고 있으면 도로시 처럼 정해진 목적지가 아닌 새삼 다른 곳으로 우리를 이끌고 사라져 버릴 것만 같다.

이런 안개를 앞서서 뚫고 갈 수 밖에 없는 기차 차장님들은 어떤 기분으로 운행하시는걸까? 내가 생각하는 그런 판타지같은 생각보다는 온몸을 잔뜩 긴장하면서 운행하시겠지? 오늘도 조심 또 조심.. 하면서 말이다.



KTX 처럼 기차 도시락을 먹거나 무궁화 처럼 간식칸이 따로 있는 건 아니였지만 그 역사에서 파는 간식을 사들고 타는 재미도 있어서 퇴근길에는 수서역에서 파는 초밥이나 아니면 삼송빵집의 시그니처 빵 혹은 편의점에서 파는 계란만 한가득 담긴 샌드위치를 입에 물고 오물거리거나 더울땐 소프트 콘을 사서 먹으며 집으로 가는 기차를 타기도 했었다. 가끔 SRT수서역사 내 비치된 피아노를 연주하시는 분이 있어 그분의 연주를 들으며 내가 탈 기차를 기다리는 재미도 있었다.


이제 오늘이 지나면 굳이 SRT를 이용하지 않는 이상 경험할 수 없는 또다른 장면이겠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어느덧 내가 탈 기차가 5번 플랫폼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오송에서 출근하는 마지막 출근길의 마지막 기차.


자꾸 마지막이라고 하니까 뭔가 아련한 감수성에 짙게 잠겨 눈물이 터져야 할것 같지만 생각보다 담담했다. 그냥... 뭐랄까 아 이제 아침잠은 좀더 푹 자겠네 이정도 랄까? 게다가 돌아온 저녁에는 남은 짐을 정리해야 하니 사실 그것만으로도 머리속이 복잡했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에 해야 할 전입신고에 전세보증보험가입까지 이래저래 해야할 일이 산처럼 쌓여 있어 안타깝게도 감상에 깊게 젖여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뭐 기차 풍경은 마지막이니라는 생각에 좌석 예매시 창가에 앉아서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볼 수는 있어서 마지막 기차 출근길은 나쁘지 않았다.


퇴근 길. 역시나 마중나와 있는 남편 차를 타고 집으로 향하는 길. 서울 - 오송으로 출퇴근 하는 나만큼 아침 저녁으로 바래다 주느라 고생한 남편님.

가끔 지쳐 잠들어 마중 나오지 못해 집으로 걸어간 적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힘들다는 내 투정에 한결같이 바래다주는 수고를 해주신 남편 덕분에 힘들었지만 힘들지 않았던 출근길이였다.


“그동안 바래다주고 데리고 오느라 고생했어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동안 출근하느라 고생했어.”


서로의 수고로움에 덕담과 같은 말을 남기고 우리는 그렇게 오송역을 유유히 떠났다.


안녕- 오송역아 그동안 고생 많았어!

안녕- SRT 다음에는 출퇴근 하는 직장인이 아닌 여행하는 이용객으로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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