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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의 거짓말과 우울증.
어떤 게 먼저였을까?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거짓말로 만들어 낸 세계와 자신만이 알고 있는 진실 사이의 큰 간극이
동생을 정신적으로 피폐하게 만들고 고립시켰을까?
아니면 우울증에 취약했을지 모를 동생의 성격적인 면 때문에, 또는 내가 모르는 동생이 겪은 과거의 어떤 일들 때문에 정신적인 문제를 갖게 되었고 그게 동생으로 하여금 거짓말을 하게 만들었을까?
선후관계를 알 수 없지만 동생은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을지 모를 거짓말과 우울증으로 자살시도를 해버렸고
다행히 잠에서 깨어났었다.
잠에서 깬 동생은 엉엉 울면서 가족들에게 미안하다고 했었다.
그날. 동생이 나와 가족들을 속여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날.
나는 동생에게 내 눈을 쳐다보라고 하고 말했다.
"내 눈 봐. 이제 내게 거짓말하지 마. 그러겠다고 약속해. 알겠어?"
동생은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동생의 눈을 나 역시 쳐다보고 있었지만
동생의 어떠한 감정 같은 것을 읽을 수는 없었다.
동생의 눈에서 어딘가 모르게 약간의 공허함이 느껴진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나는 힘주어 말하며 내 눈빛에 진심을 담고자 했고, 그 마음이 동생에게 전해지길 바랐다.
그러나, 동생이 그날 이후에도 나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마치 내 마음속에 생겨버린 깊고 어두운 씽크홀로 추락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내가 그린 동생과 나 그리고 우리 가족의 미래는 '동생이 정신과 진료를 잘 받고 우울증이 얼른 호전되는 것'이었다. 그 이외에 다른 미래가 있을 거라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왜 동생은 치료를 받지 않는 걸까?
왜 병원을 제대로 가지도 않았으면서 갔다고 거짓말을 한 걸까?
왜 알바를 한다고 한 장소에 있지 않았을까? 그것도 거짓말이었을까?
거짓말이었다면 가족 중 그 누구도 밖에서 일을 하라고 다그치거나 종용하지 않았는데 왜 거짓말을 한 걸까?
동생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언젠가 조언을 구하고자 찾아간 정신과 의사가 한 말이 떠올랐다.
"동생이 병원 진료 안 받으려고 할 수도 있어요.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치료받을 의지가 있기보다는 그냥 상황을 덮어놓고 지내면서 가족들에게 의지하려 하는 거죠." 정말 내 동생이 이런 마음인 걸까?
부모님은 언젠가 내게 얘기했었다.
"네 동생 젊고, 머리도 좋은 편이잖니. 앞으로 좋아질 거라고 믿는다.
좋아질 거라고 생각해야 또 희망이 있지 않겠니."
동생이 병원 진료를 제대로 받지도 않고 또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아는 나와
그 사실을 모르는 부모님.
내가 감당하고 있는 슬픔, 씁쓸함, 실망과 무기력함이 안개처럼 내 주위를 감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