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나는 나 스스로를 정신적으로 꽤 건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나는 직장에서나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일에 감정적으로 크게 휘둘리지 않았고,
나를 심리적으로 많이 힘들게 하거나 위축되게 하는 일은 딱히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들이어서 가능했던 거 같다.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이 있어도 그 사람들은 내 인생에서 크게 중요하지 않은 인물이라고 여겼고,
어떤 고민이 있을 때는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나 다운 선택을 하려고 노력했다.
직장과 개인적인 삶에서 직면하는 많은 문제들을 대하고 해결하는 나의 방식을 보며
나 스스로에 대해서 더 알게 되었고, 그 방식들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자존감도 높아졌고 심리적으로 안정된 상태라고 느꼈다.
그래서인지 나의 친구들이나 동료들은 나에 대해
심지가 단단한 사람, 외유내강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줬다.
그런데, 굳건했던 나의 정신건강은 동생의 문제 앞에서 속절없이 그 생기를 잃고 피폐해졌다.
누군가 나를 힘들게 하면 나는 언제라도 그를 '내 곁에 두는 사람'이라는 심리적인 영역 밖으로
내보낼 수 있었지만 가족인 동생은 그럴 수가 없다.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정신과 치료를 잘 받고, 거짓말을 하지 않는) 방향으로 움직여주지 않는 동생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대상이었고, 통제할 수 없는 대상이 가족이라는 사실은
그 어떤 문제보다 나를 정신적으로 힘들게 만들었다.
동생의 문제는 내게 있어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난제였다.
말 안 듣는 동생과 부모님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내가 하여야 하는 역할이 있었다.
부모님은 동생에게 직접적으로 물어보기 불편하신지 종종 동생의 안부를 함께 사는 나에게 물으셨다.
'윤서는 요즘 뭐 하면서 지내니?' '병원은 잘 다니고 있니?' '네가 보기엔 좀 어때?' '앞으로 어떻게 한다니?'
동생에 대한 얘기가 대화의 주제가 될 때면 자주 나의 노고에 대해 미안함과 고마움을 표현하셨고,
'동생이랑 같이 산다고 우리 딸이 고생이 많네.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네가 제일 답답하지.'
가끔은 당부의 말을 덧붙이셨다.
'그래도 가족이고 동생이니까 어쩌겠니. 동생 잘 챙겨주렴.'
짐작은 해도 언니인 내가 다 헤아릴 수 없을 엄마 아빠의 마음이란 걸 알기에
꾹 참다가도 가끔 짜증을 주체하지 못할 때가 있었다.
'엄마 아빠도 하기 어려운 질문을 왜 나한테 물어보라고 해? 직접 물어봐'
그렇게 짜증을 내고 전화를 끊으면 순간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게 후회스럽고 속상했다.
한편으로는 이 정도는 할 수 있다고 나 스스로의 정신건강을 위해 '나의 짜증'을 합리화했다.
부모님은 내게 동생을 잘 챙기라고 했다.
부모님의 당부 때문이 아니라 내 동생이니까 당연히 동생이 잘 먹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친구들과 며칠 여행을 가기 전이면 장을 잔뜩 봐 놓았다.
동생이 내가 없는 동안 제대로 챙겨 먹지 않을까 봐 동생이 먹을 음식들을 사놓았다.
업무에 운동에 여행준비도 다 못 했는데 여행 전날 장을 보고 밤늦게 귀가했던 날이 있었다.
'왜 나는 서른이 넘은 동생이 먹을 음식을 챙겨야 하지?'
내 처지가 가여웠지만 동생에게 화풀이할 수 없었고, 누군가를 붙잡고 하소연할 수도 없었다.
동생이 병원을 불과 한 달도 다니지 않았는데 몇 달을 다니는 것처럼 거짓말을 했고,
적절한 치료를 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나는 고민했다.
알고 보니 동생이 병원에 제대로 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부모님께도 알려야 하나 생각했지만,
속상해하고 실망할 부모님의 표정을 보는 게 싫었다.
부모님께 알리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려 했다.
동생 스스로와 우리 가족을 위해서는 동생이 정신적으로 건강해져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치료가 필요하다.
또한 동생의 거짓말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가야 했다.
동생과의 대화가 필요했다.
꺼내기 불편하고 껄끄러운 주제였지만 동생의 정신건강을 위해서는 모른 척 넘어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언제 어떻게 동생에게 '네가 지금까지 또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어.'라는 사실을 알리고
병원 진료를 다시 받을 것을 강하게 권유할 것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