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그렇게 내가 동생과 대화를 하여야겠다고 결심한 뒤,
적당한 때를 고른다는 이유로 이야기 꺼내기를 미루다가 두 달 가까이 흘렀다.
적정하지 않은 때와 장소를 골라서, 즉흥적으로 이야기를 꺼냈다가
이도 저도 아닌 결론이 나거나 설득이 잘 되지 않을까 봐 신중했다.
마침내 적당하다고 생각되는 날짜를 골랐는데,
그날은 내가 친구들과 여행을 다녀온 뒤의 평일이었다.
그 주 주말에는 동생과 같이 부모님 댁에 방문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친구들과 여행을 다녀온 후, 부모님 댁에 내려가기 전에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결정했다.
내가 이야기하기로 한 날의 다음날은 마침 팀장님이 연차여서
혹시 동생을 혼자 두기 걱정스러운 상황이 되는 경우
여차하면 나도 연차를 쓰기가 부담스럽지 않은 날이었다.
동생에게 이야기하는 날을 이렇게 여러 가능성을 고려하며 섬세하게 정해야 하다니, 피곤했다.
내가 이렇게까지 에너지를 쏟고자 하는 사람이 있을까?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거나, 그 사람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 모두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기에
상대방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노력을 쏟지 않는 않는다.
회사에서 만나는 사람이거나 친구라 하더라도 나를 힘들게 하면 그냥 무시하면 될 일이었다.
(상대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거나 친한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노력을 해보겠지만).
하지만 상대가 동생이었고, 대화의 주제는 동생 입장에서는 전혀 달갑지 않을 주제였다.
동생에게 결단과 행동의 변화(진료를 잘 받고 거짓말을 하지 말 것)를 요구하는 것이었기에
단호하지만 너무 몰아붙여서도 안 되었고 적절하게 전달이 되어야 했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동생이 어떻게 반응할지, 어떤 감정 상태가 될지,
그 뒤에 나와 동생의 관계가 어떻게 흘러갈지 예측하기 어려웠기에
얘기를 꺼내는 일 자체가 조심스러웠다.
내 마음속의 D-day를 정한 날,
동생에게 밖에서 저녁을 먹자고 제안했다.
집에서 둘이 있을 때 얘기하는 것보다, 식당에서 다른 사람들이 있는 공간에서 얘기하는 게
서로 덜 감정적이게 될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이 있는 개방된 공간에서는 동생이 마냥 대화를 회피할 수 없을 테고,
조금이라도 더 정제된 감정표현을 하게 되지 않을까?
동생이 좋아하는 메뉴를 제안했고,
퇴근 후에 동생과 밖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동생이 싫어하는 얘기를 꺼내고, 동생과 우리 가족의 문제를 직면하러 가는 길이었기에
퇴근 후에 식당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거웠고, 착잡했고, 약간의 긴장도 되었다.
이야기가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갈까? 내가 요구하는 것처럼 동생이 병원을 다니겠다고 할까?
미래를 알 수 없는 채로 식당에 도착했다.
메뉴를 보며 음식을 고르고, 주문하고 동생과 밖에서 식사를 한 여느 때와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물티슈로 손을 닦는 나의 마음은
그 어느 식사자리에서보다 불편했다(높은 직장상사와의 식사자리가 더 마음 편할 것 같았다).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할지 모른 채로 내 앞에 앉아 있는 동생.
동생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약해질 것 같았지만, 오늘 나는 하기로 결심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
음식이 나왔고, 우리는 저녁을 먹기 시작했다.
'언제 이야기를 꺼내야 하지?'
밥을 먹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얘기하면
음식을 많이 먹지도 않았는데 이야기 때문에 식사를 금방 끝마치게 될 것 같았다.
나는 어느 정도 식사를 했을 때 이야기를 꺼냈다.
본론을 말하기 전에 미리 생각해 놨던 서론을 꺼냈다.
"너 이제 정기적인 일을 찾아봐. 하루에 4-5시간이라도 좋으니까.
규칙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해봐. 일일 알바만 간간히 하지 말고.
일할 준비가 아직 안 되었으면, 뭐라도 배우고 싶은 걸 찾아봐.
학원비는 부모님이나 내가 내줄 수 있으니까."
동생은 아직 일할 마음이 없고 딱히 배우고 싶은 것도 없다고 했다.
나는 이제 병원 진료 이야기를 꺼내기로 했다.
"너 왜 병원에 한 달도 안 다녔으면서 나한테 몇 달 동안 병원 다닌다고 거짓말했어?"
"... 왜 또 거짓말을 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