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동생의 얼굴에 순간 당황한 기색이 보이긴 했지만
동생은 내 예상과 달리 크게 동요하지는 않았다.
몇 달간 병원을 다니지도 않으면서 왜 다닌다고 했는지에 대한 내 물음에 동생은
‘언니가 걱정할까 봐‘라고 대답했다.
‘왜 치료를 안 받냐’고 물으니 자신은 치료를 받아도 좋아지지 않을 거라고 했다.
그걸 왜 너가 판단하냐고,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말하는 나에게 동생은
‘언니는 모른다’고 얘기했다.
나는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못 했던, 마음에 차곡차곡 담아 온 말들을 얘기했다.
내가 원하는 단 하나는 너의 우울증이 나아져서 너가 잘 지내는 거라고.
나에게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가족들은 속이지 말라고.
너에게 지금은 와닿지 않겠지만 스스로 돈을 벌어서 쓰는 기쁨이 얼마나 큰지 아냐고,
큰돈은 아니더라도 너가 쓸 용돈 정도는 벌어야 한다고,
지금처럼 혼자 집에만 있지 말고 밖에 나가서 사람들과 지내야 한다고,
학원을 다니면서 배우는 것이든, 돈을 버는 것이든 매일 하는 일이 있어야 한다고,
이 모든 걸 위해서는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치료를 안 받으면 우울증이 나아지지 않을 텐데 어쩌려고 그래. 아직도 그냥 이렇게 살다가 죽으면 그만이지 하는 생각이야?”
동생은 아무 말이 없었다.
정신과 의사가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내가 너를 좀 더 이해할 수 있을까 해서 정신과에 가서 의사랑 상담을 했었어.“
“의사가 그러더라. 서른도 넘은 성인이 자살하는 건 막을 수가 없다고,
설사 주변에서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본다 해도 죽으려고 마음먹으면 짧은 시간 안에도 실행할 수 있다고.“
나는 덧붙였다. 나는 너가 죽는 걸 생각하기도 싫지만 너의 생에 대한 선택은 오로지 너에게 주어져있다고.
내가 하루 종일 동생 옆에 붙어있을 수 없는 현실을 차치하고라도
자신의 삶에 대한 선택을 그 어떤 타인이라도 대신할 수 없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이렇게 얘기하면 동생이 자신의 삶에 대해 조금이라도 책임감 비슷한 감정을 가지게 될까?
동생이 자살시도를 하고 나서부터 나는
외출을 했다가 집에 들어올 때
동생이 쓰러져있는 장면을 목격할까 봐
너무 끔찍한 상황을 마주할까 봐
안 좋은 생각과 걱정을 하며 불안을 느끼곤 했다.
이런 나였기에 동생에게 ‘너가 죽는걸 나는 못 볼 거 같으니, 내가 익숙한 곳에서는 죽지 말라고‘ 얘기했는데,
이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나는 동생에게 죽지 말고 살라는 의미로 얘기했는데,
동생은 죽으라는 말에 무게를 뒀다.
“안 보이는 데 가서 죽으라고? 알겠어”
동생은 울먹이며 얘기하더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나는 동생의 팔을 잡고 어딜 가냐고 물었다.
주변의 시선을 의식한 동생은 내게 목소리를 낮추라며, 집에 가겠다고 했다.
급하게 결제를 하고 식당에서 집으로 걸어오는 동안
나는 동생에게 화도 내고(너 왜 나한테 계속 거짓말을 하는 거야? 너 거짓말하는 거 이제 나 알아차릴 수 있어. 다 티나. 지긋지긋해 거짓말.)
타이르기도 했다(널 가족들이 어떤 마음으로 지켜보는지 알아? 조금만이라도 생각해 보면 안 돼?).
나는 그동안 하고 싶었던 말을 쏟아냈고 동생은 냉소적인 웃음을 지으며 쌀쌀맞게 말대꾸를 몇 번 했을 뿐이었다.
그렇게 집에 도착했지만 나는 이야기하는 걸 멈추지 않았다.
동생에게 같이 병원에 가자고 말했다. 나는 너를 포기할 생각이 없다고.
동생은 병원에 안 가겠다고 했다. 그 누구에게도, 가족들에게도 말 못 할 무언가가 있다고 했고
자신은 의사에게도 그것에 대해 말하지 못할 거라 했다.
‘뭐가 있었다는 걸까? 어렸을 때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었나? 아니면 또 병원에 가지 않으려고 하는 말일까?’
동생이 방금 한 말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머리가 순간 복잡해졌다.
그게 뭔지 나에게만 이야기해 보라 해도 동생은 고개를 저었다. 자신은 치료를 받아도 좋아지지 않을 거라고 했다.
‘그럼 의사에게도 그거에 대해서 얘기하지 마. 그냥 정기적으로 병원에 가고 처방받은 약을 먹어‘
동생은 그러기도 싫다고 했다. 울면서 내게 자신을 포기하라고 했다.
동생의 슬픔과 우울이라는 심연의 깊이와 크기를 나는 가늠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조금만 더 자세히 내게 설명해 준다면 좋을 텐데.
나를 붙잡고 ‘언니, 나는 이게 힘들고 저게 힘들어 이런 일이 있었고 저런 일이 있었어’라고 세세하게 말해준다면 좋을 텐데.
동생은 자신의 슬픔과 우울을 나에게 설명하고, 나누려 하지 않았고 그래서 더 어려웠다.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진실은 무엇일까.
자신을 포기하라는 동생을 보며
찰랑, 내 마음 끝까지 슬픔이 차오른 느낌이었다.
내 마음이 수용할 수 있는 슬픔을 넘어, 수포를 일으키고, 넘쳐흐를 것만 같았다.
치통, 요로결석, 산통. 신체적인 고통의 종류와 강도에 따라 고통의 정도를 수치화 한 걸 본 적이 있다.
마음이 아픈 것도 정도에 따라 정량화해서 서열을 매길 수 있을까?
그날 나는 힘든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었다. 단지 힘들다는 단어를 쓰는 것 밖에.
결국 나는 몇 달간 신중하게 때를 정하고 할 말을 골라 준비했던 동생과의 대화를 통해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치료를 받겠다고 동생을 설득시키지 못했고
병원을 가지 않으면 나랑 같이 살지 못한다는 얘기는 꺼내지도 못했다.
오히려 동생의 우울한 감정만 극으로 치달았고, 얼마나 병이 깊은지 다시 한번 확인했을 뿐이다.
협상으로 비유하면 소득 하나 없는, 망한 협상이나 다름없었다.
동생은 한동안 울었고, 울음을 멈춘 뒤에는 멍하니 앉아있었다.
그런 동생을 보며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어쩌면 동생이 입원 치료가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동생을 혼자 두고 출근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결국 그다음 날 연차를 쓰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