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길 물 속은 알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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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윤슬

회사를 가지 않은 날 아침.

자고 있는 동생을 바라보았다.

어제 밤늦게까지 멍하니 앉아있었던,

지금은 자고 있는 동생의 가슴이 들숨과 날숨으로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가만히 보다가

집을 나왔다.


집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 시켜놓고 창 밖을 바라보았다.

내 마음을 말해주듯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참 어려웠다.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이렇게 와닿을 날이 올 거라고는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동생이 취직을 했다고 했을 때 난 부모님이 아닌 언니였지만 왠지 모를 안정감을 느꼈고

부모님이랑 동생과 곗돈을 모아 일 년에 한두 번 여행을 다니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어려운 사람이 왜 다른 사람이 아닌 동생일까.

동생의 마음을 이해하기가, 동생을 다루기가,

너무 어려워 9시 뉴스에 나올 정도로 논란이 된 대입 논술시험 같다.


창밖으로부터 시선을 거두고,

핸드폰을 들어 입원이 가능한 정신의학과를 검색해 보다가,

조울증을 겪고 있는 어떤 이의 정신의학과 입원 후기를 읽었다가,

답답한 마음에 임상심리상담을 예약했다.

예전에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를 찾아가 동생의 문제를 털어놓은 적이 있었는데

심리상담은 어떨지 궁금했다.

뾰족한 수가 있겠냐만은 동생의 심리를 이해하고 상황을 개선할 실마리를 찾는데 도움을 준다면

시간당 10만 원이 넘는 금액이지만 아깝지가 않았다.

열병이 난 사람이 다급하고 절박하게 해열제를 찾듯 그렇게 나는 심리상담을 예약했다.

나로서는 실패로 끝난 어제의 그 대화 이후로 동생은

하루 종일 핸드폰이나 노트북을 할 뿐 나와 이야기를 하려 하지 않았고,

또한 내가 제안한 식사자리에서 동생이 그동안 거짓말하고 진료를 제대로 받지 않은 걸 이야기해서인지

밥을 먹으러 나가자는 나의 제안을 모두 거절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장 빠른 날짜로 상담을 신청했다.


그렇게 찾은 심리상담에서 나는

주어진 짧은 시간 안에 작년 겨울 동생의 자살 시도부터 최근까지 있었던 일을 압축하여 이야기하기 위해

말을 빨리 해야만 했다.


나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젊은 여자 상담사님은 마치 얼굴표정으로 나에게 공감을 표해주시려는 듯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을 보며 나는 새삼 내가 처한 이 상황이, 동생의 문제가 얼마나 무겁고 심각한지 느꼈다.

동생의 자살시도 후 벌어진 상황을 받아들이고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 가족 모두가 가족이 놓인 상황과 충격적인 경험에 무뎌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한 나는 때때로 동생의 행동과 그로 인해 초래된 상황이 얼마나 평범하지 않은 것인지 상기하곤 했다.


심리상담 선생님은 내가 동생에게 불편한 주제의 이야기를 꺼내서

동생이 부정적인 감정(죽고 싶다)을 표출하고 우는 것이 마냥 나쁜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해 주셨다.

상담 선생님은 동생이 울고, 감정을 표현함으로써 억눌린 감정을 해소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또한 선생님은 동생이 반복적으로 거짓말하는 이유에 대해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되는 거 아닐까요?라고 하시며 나에게 통찰을 주었다.

병원 진료를 가기 싫었던 동생은 병원에 안 간다고 하면 나와 가족들이 계속 병원을 가라고 종용할 것이기 때문에,

그런 불편함과 마찰을 겪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병원을 가지 않기 위해서’ 병원을 다닌다고 거짓말을 한 것이다.

또한 직장을 다니지 않는데도 다니는 것처럼 속인 것도

직장을 다니지 않는다고 말하면 당장 자신의 입장이 곤란해짐과 동시에 가족들을 보기가 민망해지고

일을 찾아야만 하는 압박을 느낄 것이므로, 직장을 다니지 않으면서 다닌다고 거짓말을 한 것이다.


마냥 동생이 왜 계속 거짓말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상담 선생님이라는 타인의 ‘언어’로 그 이유를 들었을 때

어렵지 않지만 정확한 답을 몰랐던 문제의 답을 알게 된 느낌이었다.

마치 처음 mbti 테스트를 했을 때

내가 모호하게 알았던 나의 성격적 특성들이 mbti 결과지의 활자를 통해 명확하게 규정되고 설명되는 것처럼 느꼈을 때와 비슷했다.

물론 동생이 거짓말을 하는 데에는 다른 복잡한 동기와 배경이 있을 수 있지만

자신의 뜻대로 하고 싶다는 마음은 거짓말을 도구로 삼는 하나의 단순하고도 분명한 이유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덧붙여 상담 선생님은 동생이 진료를 제대로 받지 않은 사실과 동생의 상태를 부모님과 공유하고

나 혼자 모든 짐을 지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동생의 상태가 불안정하다면 동생이 자살시도를 한 적이 있다는 걸 감안할 때

입원치료를 고려해 볼 것을 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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