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23

by 하윤슬

동생에게 병원을 가라고 설득하기 위한 대화를 시도했지만 실패로 끝나고,

답답한 마음에 임상심리상담사를 찾아가 상담도 받았지만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나는 너가 거짓말 한 걸 알고 있다며 병원 진료를 다시 받으라고 종용했던 그날 밤 이후로

동생은 한동안 나에게 말도 붙이려 하지 않았었다.

시간이 점차 흘러 동생과 나는 서로의 동거인으로서 일상에서 필요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지만

내가 산책이나 쇼핑을 같이 가자고 할 때마다 나의 제안을 거절했다.

뿐만 아니라 내가 밖에 나가서 점심이나 저녁을 먹자고 해도 동생은 가지 않겠다고 했다.

내가 밖에서 저녁을 먹자고 하고, 작심한 듯 자신이 듣고 싶지 않은 얘기들을 꺼내서였을까?


그런 동생이 나 역시 탐탁지 않았고 서운했다.

물론 내가 그런 이야기를 꺼냈던 게 동생에게 큰 스트레스였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그동안 그 이야기를 꺼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날들을 망설여왔던가

나도 어렵게 꺼낸 이야기인데 나의 제안에는 조금이라도 귀 기울여보려 하지 않고 오히려

집 근처에 나가서 밥을 먹자는 일상적인 제안도 재차 거절하는 게 마치 시위를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결국 동생은 또 자신의 감정만 생각하는 것 같아 나도 야속한 마음이 들었다.

우울증 환자라는 이유로 동생을 어디까지 포용해야 할까?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던 나였는데, 또 사건이 발생했다.

퇴근해서 집에 왔는데 대개 그 시간에 집에 있던 동생이 보이지 않았다.

동생에게 전화를 했는데 받지 않았다.

한 5분이 흘렀을 때쯤 동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나 집에 왔는데, 어디야?“

“알바하고 이제 집에 가“

알바를 했다고?


며칠 전에도 동생이 알바를 했다고 한 날이 있었다.

동생은 그날 유명 의류 브랜드의 물류창고에서 일일 알바를 했다고 했다.

인터넷에 해당 브랜드의 물류창고 일일 알바 후기를 검색해 보았다.

후기들은 한결같이 아침 9시에 시작해서 저녁 6시에 끝났고, 알바가 채 끝나기도 전 당일에 알바비가 입금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동생은 알바가 오후 3시면 끝난다고 했다.

나는 알바비는 언제 들어오는지 물어보았고, 동생은 ‘며칠 걸린다’고 했다.


지긋지긋한 거짓말.

전화기 너머로 알바를 했다는 동생의 목소리를 듣자 이번에는 참지 못 했다.

나는 나의 감정이 폭발하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격앙된 목소리로 물었다.

“알바를 했다고? 무슨 알바를 했는데?“

그러자 동생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되돌아왔다.

“언니, 왜 내가 알바했다고 할 때마다 그렇게 의심하는 듯이 꼬치꼬치 물어봐?“

나는 참지 못하고 그동안 마음에 품고 있었지만, 동생에게 말하지 않은 그날의 일에 대해 얘기했다.

“너 **화장품 브랜드 팝업스토어 일일알바 하러 간다고 한 날, 내가 택시 타고 너 알바한다는 데 가봤거든?

근데 매장 다 둘러봐도 너 안 보이던데 어디 있었어?“

“……언니가 택시를 타고 거길 왔다고? 왜 왔어?“

“너 알바 잘하고 있나 궁금해서. 너 일하는 거 보고 싶어서. 어디 있었냐고 그때. 전화도 안 받고.“

나의 질문에 동생은 ‘현장 직원이 핸드폰을 일단 한 군데에 보관하라 해서 잠깐 못 받았다고,

그리고 자신은 다른 층에 위치한 창고에 물건을 가지러 갔었다‘고 대답했다.

동생은 진실을 말하고 있는데, 내가 동생을 믿어주지 않는 게 아닐까? 동생이 정말 억울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럼? 며칠 전에 했다는 **의류브랜드 물류창고 알바는? 내가 후기 찾아보니까 다 6시에 끝난다는데 왜 너만 3시에 끝나?“

“나는 6시까지 일하기 싫어. 3시까지만 하는 거니까 했지. 내가 알바를 하지 않으면 어떻게 대출이자를 갚겠냐고”

“그럼 그동안 통장에 알바비 입금된 내역 보여줘 봐. “

“싫어. 내가 왜 그래야 되는데. 아 믿기 싫음 믿지 마. 진짜 지금도 겨우겨우 하고 있는데.”

울먹울먹 하던 동생의 목소리와 배경의 소음이 어느 순간 끊겼다.

‘전화를 끊어버려?’ 나는 화가 났지만, 동생의 마지막 말이 마음에 걸렸다.

만약에 알바를 했다는 동생의 말이 사실이면 어쩌지?

알바한다고 했던 말 중 몇 번은 거짓말일 수 있지만 몇 번은 진짜일 수도 있지 않을까?

감정을 가라앉히고 동생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알겠어. 이제 앞으로 너가 알바한다고 하면 의심하지 않을게. 그 대신 부탁인데 앞으로 나한테 거짓말하지 마.“

“거짓말 아니라고…!“

거기서 멈춰줬으면 좋았으련만 동생은 끝내 자신의 감정을 정제되지 않은 막말로 표출하기로 했나 보다.

동생의 그다음 말이 날카롭게 내 맘에 생채기를 냈다.

“차라리 뒤지라고 해. 안 보이는 데서 뒤지라고 했지?”


뚝. 동생이 전화를 끊어버렸고,

동생과 소통하려는 나의 노력과 열정, 동생이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

동생과 현재의 상황에 대한 나의 인내, 이 모든 것들도 뚝 끊어져버릴 것 같았다.

이렇게까지 말했어야 할까? 동생이 말로 낸 상처가 너무 쓰라렸다.

험한 말로 얻어맞은 나는 전화를 끊고도 한동안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 동생을

내가 언제까지 보듬고 갈 수 있을까?

내가 계속 노력을 이어갈 수 있을까?

나는 내가 그다지 착하지 않음을, 그렇게 마음이 넓지 않음을 알고 있다.

동생이 내 마음을 알아주길 기대하고 기대하고 기대하고

좌절해도

기대할 수 있을까?

그러고 싶지 않아지면 어쩌지?

내가 힘들지 않기 위해 동생에 대한 내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게 되면 어쩌지?

분노 뒤에 두려운 절망감이 들었다.


퇴근했지만 업무 관련 검토할 자료가 있었고,

이 감정 상태로 곧 집에 들어올 동생과 함께 있고 싶지 않았다.

노트북을 가방에 넣고 나갈 준비를 하고 있던 때, 동생이 도어록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동생을 쳐다보았고, 동생은 그런 나를 매섭게 쏘아보았다.

동생은 나를 지나쳐 집 안으로 들어가고, 그런 동생을 뒤로한 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집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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