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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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윤슬

내가 동생에게 확인하고 싶었던 또 한 가지.

그건 동생이 ‘병원 진료를 잘 받았는지’였다.

동생의 자살시도와 그동안의 생활이 거짓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난 이후

부모님의 집에 내려갔었던 동생은 부모님이 아닌 나와 함께 생활하기를 원했고,

다음과 같은 두 가지를 ‘잘 받겠다‘는 조건으로 다시 나와 함께 살게 되었다.

첫째: 병원 진료와, 둘째: 나의 전화와 연락.


나는 병원 후기와 보유 의료 기계, 가능한 치료 종류와 같은 정보를 인터넷으로 알아보고 병원을 정해서 동생을 데리고 직접 병원에 갈 계획이었다.

그런데 서울에 올라온 지 이틀째 되는 날 회사에서 근무를 하고 있던 내게 동생은 카톡을 했다.

‘언니 나 집에 있는데 다시 안 좋은 생각이 들어서 그냥 집 근처 정신의학과에 진료받으러 왔어.‘

나는 ‘안 그래도 내가 병원을 알아보고 같이 데려가려고 했는데 왜 혼자 갔냐’고 얘기했다.

나는 동생이 정신의학과를 다니게 되면, 내가 동생의 진료과정에 관여되기를 바랐다.

먼저 동생이 자살시도를 했고 회사를 다니는 것처럼 가족들을 속여왔다는 것을 의사에게 알림으로써

의사가 동생의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해 동생이 적절한 진료를 받을 수 있게 되길 원했다.

그 이후에는 동생이 어떤 치료를 받고 있는지, 동생의 우울증의 호전의 정도는 어떠한지를 파악하길 원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갑자기 혼자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겠다고 하는 동생의 연락은 내 계획과 달랐고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동생이 스스로 병원에 갈 결정을 했다는 사실을 동생의 상황 개선의 신호로 여겨도 될까 하는 섣부른 기대감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동생의 병원 진료는 시작이 되었다.

동생은 매주 금요일 병원 진료를 보았다.

나는 금요일에는 퇴근 후에 동생에게 병원 진료에 대해서 물어보곤 했다.

처음에는 ’병원 선생님은 어때?‘, ’상담은 잘해주셔?‘, ’진료나 상담이 별로이면 병원 알아볼 테니까 바로 얘기해‘라고 얘기했고,

동생은 그때마다 딱히 안 좋은 점은 없다는 식으로 대답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의 질문은 ‘약은 잘 먹고 있어?’, ‘약 부작용은 없어?’, ‘오늘은 진료 때 뭐 했어?’가 되었다.

동생은 의사 선생님이 6개월 정도는 약을 써야 한다고 얘기했다고 했고, 약의 용량을 점차 늘려나갔다가 줄일 거라고 얘기했다고 했다.

‘생각보다 약효가 드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구나.‘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동생에게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다.

그것은 동생이 매일 한 번씩 복용하는 정신의학과 약을 자신의 가방 안에 보관한다는 점이었다.

나는 동생에게 물었다. “왜 매일 먹는 약인데 꼭 가방에 넣어 놓는 거야? 그냥 밖에 꺼내놔. “

동생은 그냥 그러고 싶다고 대답했다.

나는 그 뒤에도 재차 약을 왜 꺼내놓지 않는 거냐고 얘기했고

동일한 나의 질문(이자 제안이자 요청)이 반복되자 동생도 감정의 날을 세우면서

처방받은 약을 가방에 보관하기를 고집했다.

서른이 넘은 동생이 약을 본인의 가방 안에 보관하겠다는데

내가 어떻게 할 도리는 없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다.

결국 내가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 냈는데 그건 가끔 동생 몰래 동생의 가방을 열어보는 것이었다.

동생이 약을 잘 먹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동생의 가방에 있는 약봉투를 꺼내서 일별로 소분된 약봉투의 개수를 세어 기억해 놓았다.

며칠 뒤 다시 동생의 가방 속 약봉투를 꺼내보았다.

소분된 약봉투의 개수가 며칠 전 확인한 개수와 똑같았다.

심지어 약봉투가 접힌 모양까지 비슷해 보였다.


동생은 약을 먹지 않고 있구나.


그로부터 한 달 후쯤 동생에게 약을 잘 먹고 있는 거냐고 물으면서 약봉투를 보여주라고 말했다.

동생은 가방에서 약봉투를 꺼내서 내게 보여줬다.

내가 한 달 전에 확인한 그 약봉투와 똑같은,

꺼내본 적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약이 담겨 있는 모양까지 비슷해 보이는 약봉투를 동생은 내게 건넸다.

나는 화와 슬픔이 섞인 감정을 억누르며 얘기했다.

“너 나한테 약 안 먹으면서 먹고 있다고 거짓말하는 거 아니지? 나한테 거짓말하지 마.”


시간이 흐른 어느 날 동생은 내게 얘기했다. “의사 선생님이 상태가 호전되어서 이제 병원에 오지 않아도 괜찮대“

병원을 다니기 시작한 후 언젠가 동생은 의사 선생님이 용량이 더 높은 약을 처방해 주기 시작했다고 얘기하면서

용량을 높였다가 우울증이 점차 호전되면 다시 낮추신다고 했다고 말했었다.

그렇게 동생은 병원을 안 다니게 되었고 약을 먹을 필요도 없게 되었다.




그런데 동생이 알바를 간다고 하고 연락이 되지 않은 날.

‘동생이 알바를 한다고 거짓말하는 것 같다‘는 나의 예감이 선명해졌고,

나는 동생이 다녔던 병원에 전화를 했다.

“그 병원에서 진료받았던 환자의 언니인데요. 혹시 동생이 병원에 언제 마지막으로 방문했는지 알 수 있을까요?

개인정보라 알려줄 수 없다는 병원 간호사의 사무적이고 차가운 대답이 돌아왔다.

“동생의 말을 다 믿을 수가 없어서요. 제가 꼭 확인을 하고 싶어서 그런데 알려주실 수 없을까요?“

오죽하면 이렇게 전화까지 해서 물어볼까 하는 안쓰러운 감정이 생겼을까?

간호사는 동생이 마지막으로 병원에 진료를 보러 온 날짜를 알려줬다.

그건 동생이 의사가 병원 진료를 이제 더 오지 않아도 된다고 얘기한 시점보다 삼 개월이나 더 전의 시점이었고,

진료를 시작한 지 채 한 달이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 사실은 동생이 또다시 나에게 3개월 가까이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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