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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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윤슬

저녁 약속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금요일 저녁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동생은 침대에 누워서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이번 주에는 연달아 저녁 약속이 있었다.

나는 회사에서, 퇴근 후에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하고 식사를 한다.

나와는 달리 다른 사람과 교류 없이 하루 종일 혼자였을 동생에게 부채감이 들었다.


누워있는 동생에게 가까이 다가가 대화를 걸었다.

저녁은 뭐 먹었는지 물었다. 동생이 단답으로 대답했다.

그때 불현듯 금요일은 동생이 집 근처 정신과 병원에 가는 날이라는 사실이 생각났다.

‘동생이 병원 가는 것도 까먹고 있었네?’ 약간의 미안함을 느끼며 혼자 생각했다.

나는 질문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오늘 병원 갔어? “ ”응 “

“약 받아왔어?” “응”

“약은 어딨어?” “가방에”

나는 왜 약을 가방에 넣어 놓느냐고 물었다.

동생은 약에 대해서 왜 자꾸 물어보냐며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동생은 약을 항상 보이지 않는 곳에 두었다.

매일 먹는 약을 왜 가방이나 서랍 안에 넣어두는 건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동생이 약을 꼬박꼬박 제대로 먹고 있는지도 궁금했다.

그래서 종종 약을 챙겨 먹었는지, 약은 어디에 뒀는지 물었었다.


나는 동생이 정신과 진료에서 선생님과 무슨 이야길 했는지,

약을 먹으면서 증상이 호전되는 것을 느끼는지,

약의 부작용은 없는지가 궁금했지만

관련 주제를 꺼낼 때마다 동생은 자세히 말해주지 않았다.

자세히 말해주고 싶어 하지 않았다.


같이 좋아하는 예능 프로그램,

정치,

연예인,

웃긴 유튜브 영상 이야기를 할 때면 얘기를 잘하고 웃기도 하는 동생이었지만


병원 진료,

동생이 받은 은행 대출,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얘기할 때는 입을 닫았다.

내가 약간이라도 더 파고들거나 계속 질문을 하려고 하면

태도가 적대적으로 바뀌었다.


약에 대해서 물어보자 나에게 짜증 섞인 말투로 대답하는 동생을 보자

나도 기분이 상했다.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는

동생이 치료를 잘 받고 동생의 상황이 개선되는 것이었다.

구체적으로는 동생의 우울증이 호전되고,

삶에 대한 의지를 갖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것이었다.

큰돈이 아닐지언정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지킬 수 있는 경제적인 활동을 하고

직장에서 사람들과 교류하며 살아가는 것.

평범한 삶을 살아갈 에너지와 의지를 동생이 갖게 되길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이처럼 너의 나아짐이 나에게 너무나도 중요하다는 걸 조금도 알아주지 않는 동생의 태도에

섭섭했고 화가 났다.

‘우울증에 걸린 거지 5살 어린애가 되어버린 건 아니잖아?‘ 속으로 생각했다.

‘그렇다면 타인이자 언니인 나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노력을 해야 되는 거 아니야?’


동생에게 등을 돌리고 누웠다.

감정은 상했지만

너의 짜증이 나의 감정을 상하게 했다고,

걱정돼서 물어보는 언니의 마음을 조금은 헤아려주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얘기한들

동생이 자신의 행동이 내 감정에 어떤 파동을 일으켰는지 생각해 보고

나의 감정을 풀어주려는 노력 같은 걸 할리는 만무했다.

그렇게 동생과 말한마디 하지 않은 채 잠이 들었다.




그다음 날.

지난밤의 부정적인 감정이 남아있었지만

토요일엔 동생과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동생은 평일처럼 도서관에 가겠다고 했다.

”같이 갈까? “ 나는 물었다.

동생은 혼자 가겠다고 했다.

“나도 책도 읽고 공부해야 해. 같이 가자.”

동생은 그 도서관에는 노트북 자리가 인기가 많아 잘 없다고 했다.

그렇게 동생은 혼자 집을 나갔다.


나의 기분은 곤두박칠쳤다.

동생은 왜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걸까?

세상에 하나뿐인 언니로서

나는 동생의 모든 이야기를 들어줄 준비가 되어있는데.


왜 직장을 대책도 없이 그만뒀냐고,

도대체 왜 어떻게 그렇게 가족들을 속여왔냐고

다그친 적도 없다.

동생의 삶에 대한 끝없는 의문과 동생에 대한 원망이 마음속을 가득 메웠지만

그 감정의 10%도 표현하지 않았었다.


이기적인 동생이 미웠고,

동생의 상태, 나를 비롯한 다른 가족들과의 관계가 크게 나아지지 않는 거 같아 답답했고,

앞으로도 좋아지기보다 나빠질까 봐 절망스러웠다.


한 번 나아진 기분은 좀처럼 좋아지지 않았다.

나의 기분을 좋게 하는 방법은 알고 있었다.

오후에 날씨가 춥고 귀찮기도 해서 운동 일정을 잡지 않았었다.

차라리 운동을 하러 나갔다면 좋았겠다고 생각했다.


동생의 자살시도와 자살시도가 드러낸 동생의 어두운 민낯은

우리 가족에게 발생한 큰 지진과도 같았다.

큰 지진 후에는 크고 작은 여진이 온다.

이미 큰 충격에 약해진 지반과 건물이

여진 때문에 손상을 입듯이

나의 정신도 손상을 입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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