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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따뜻해져서 미세먼지 농도가 높아진 날이었다.
회사를 빨리 마치고 나왔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정신의학과로 향했다.
예약자는 동생이 아닌 나였다.
극단적인 시도까지 한, 우울증을 앓고 있는 동생과
같이 사는 건 시간이 흐를수록 버거워졌다.
자신의 처지가 민망하고 면목이 없어서일까
아니면 우울하고 무기력하고 에너지가 없어서일까
동생은 내게 어딜 가자거나, 뭘 먹자거나 하지 않았다.
나의 일상에 대해서도 궁금해하지 않았고
내가 먼저 대화를 걸지 않으면 말이 거의 없었다.
오히려 걱정이 돼서 카톡을 하거나 전화를 하면
“왜 전화했냐. 연락했으면 용건을 말하라.”는 둥 쌀쌀맞게 굴어서
나의 기분을 수직하락하게 만들었다.
우울증이면 염치가 없어도 되는 건가?
나를 비롯한 가족들이 어디까지 동생을 수용해줘야 하는 걸까?
가장 염려스러운 부분은 동생이 정신과 진료를 잘 다니고 있는지
정신과 약을 꼬박꼬박 성실하게 먹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점이었다.
동생에 대해 이해되지 않는 수십 개의 구석이 있었지만
그중 하나는 정신과 약을 보이지 않는 곳에 둔다는 점이었다.
동생은 정신과 약을 주로 자신의 가방 안에 보관했다.
나는 매일 먹는 약을 왜 밖에 꺼내두지 않냐고 물었지만
동생에게 돌아온 대답은 그냥 그러고 싶다는 거였다.
정신과 약을 보이지 않는 곳에 두는 동생의 행동
나의 출근으로 동생의 일거수일투족을 알 수 없는 상황
나는 거의 매일 동생에게 구두로 약을 먹었냐고 확인했다.
그때마다 동생은 먹었다고 했지만
이미 많은 거짓말이 탄로 난 동생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었다.
동생이 부모님 집에서 서울로 올라오고 싶다고 했을 때 내가 동생에게 당부한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전화를 잘 받을 것
둘째는 병원을 다니며 치료를 받을 것
동생은 그러리라고 대답했었다.
동생이 약을 잘 먹지 않거나 불성실하게 진료를 받는다면?
정신과 치료에 의지가 미미하다면?
그래서 동생의 상태의 개선을 기대하기 힘들다면? 이대로의 상태가 지속된다면?
생각만으로도 숨이 막히는 기분.
출구가 보이지 않는 안개 낀 미로 속에 있는 느낌이었다.
동생을 조금이라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동생의 상태 개선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을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전문가에게 조언을 구할 수 있을까 하여
집에서 멀지 않은 정신의학과에 예약을 해 두었었다.
전화로 진료 예약을 할 때
어디가 불편해서 내원하냐는 간호사의 물음에
잠깐 멈칫한 나는 뭐라고 해야 할까 생각하다가
우울감이라고 대답했다.
나는 원래 긍정적인 사람이고 작은 것에도 금방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존재가 자랑이었던 내 동생이 엄청난 거짓말로 가족들을 속여왔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미래가 희망적이기보단 비관적으로 느껴졌고 전반적으로 기분이 다운되었다.
때로는 명치가 아픈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니 우울감 때문에 진료를 받겠다고 하는 것도 아주 거짓말은 아니라며
병원 방문을 합리화했다.
의사 선생님께 그간 있었던 많은 일들을 나름 일목요연하게 핵심만 말씀드리려고 노력했다.
선생님은 동생이 회사에 다닌 건 맞는 거냐고 물으셨다.
그 부분이 확실하지 않다고 대답했다.
선생님께서는 그 부분도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고 하셨다.
선생님은 동생이 신입사원 연수를 받으러 간 적이 있냐고 물었다.
흐린 기억을 더듬어보다가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선생님은 갔었으면 흔적이 있었을 거라고 말했다. 교재라던지 교육 중에 착용했던 명패라던지.
아차 싶었다. 동생은 그런 물건을 집에 가져온 적이 없었다.
연수 중에 교재를 안 받았을 리는 없고 받았다면 집으로 가져왔을 텐데?
동생의 거짓말은 얼마나 오래된 것일지
동생이 꾸며온 삶에 대한 의심은 한층 더 짙어졌다.
내가 조언을 구하고 싶었던 부분은 앞으로 동생의 상태를 개선하기 위해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였다.
의사 선생님도 쉽지 않아보이셨나보다.
동생이 직장을 다닌 적이 있다는 것도 거짓인지 일단 알아보고 그 후에 생각해 보라고 하셨다.
나는 동생이 병원 진료와 약 복용을 성실히 하지 않는 것 같으면 어떻게 해야 할지 물었다.
선생님은 이런 사람들은 보통 병원진료를 안 받으려 할 수 있다고 대답하셨다.
나는 다시 질문했다. “왜요? 우울증으로 힘들잖아요 진료를 받으면 나아질 수 있는데…”
“물론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면 우울하겠죠. 근데 이 상황을 개선시키고 싶을 의지가 없을 수도 있어요.
그냥 상황을 덮어놓고 지내다가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다다르면 또 어떤 식으로든 가족들이 알게 되고 의지하는 유형인 거죠. 앞으로 살아가면서 내가 동생을 책임지고 가겠다 각오하셔야 할 수도 있어요.”
내가 맞게 들은 게 맞는지 귀를 의심하고 싶었고,
내가 들은 게 맞다면 너무 속단하시는 거 아닌지 선생님의 말이 야속하게 느껴졌다.
물어보고 싶은 게 더 있었지만 선생님은 진료해야 할 대기 환자가 나 뒤로도 여럿 있었다.
“오늘은 이 정도 마무리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처방받은 약 없이 진료비만 내고 병원을 나왔다.
그래도 환자로 방문한 건데 우울감 개선 약을 처방해 준다고 하면 받아올 생각이었다.
그런데 나이 지긋하신 의사 선생님 눈엔 난 지극히 정상이었나 보다.
우울감 때문에 왔다곤 하지만 골칫덩어리 동생을 둔 애타는 언니가 정신과의사에게 조언을 구하려 왔다는 걸 잘 아셨으리라.
속 시원한 해답을 얻고 싶었는데 오히려 답답함이 커졌다.
냉정하게 상황을 인식하고 동생이 나아질 거라는 근거 없는 희망을 거두어야 하는 걸까?
오늘 만난 선생님 말씀처럼 언니니까, 가족이니까, 동생을 책임지겠다는 마음을 먹어야 하는 걸까?
그날은 내가 동생에게 하루에 한 번 이상은 하던 카톡을 하지 않은 날이었다.
퇴근시간이 훨씬 지났음에도 동생에게 연락 한 통 오지 않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