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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에 내 얼굴을 비춰보고 있었다. 내가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궁금했다.
동생은 일주일에 한 번씩 병원에 간다고 했지만,
진짜 가고 있는 건지 약은 잘 먹고 있는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우울증에 걸려 극단적인 시도까지 한 동생에게 치료를 잘 받고 있는 거냐고 다그치기도 조심스러웠다.
나는 동생이 진료를 잘 받고 있는 건지 담당 의사 선생님은 어떤 분인지 궁금했고,
내가 병원에 같이 가는 게 어떻냐고 물었지만 동생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몇 달간 가족을 속여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이미 신뢰가 깨진 동생이었으므로,
동생이 얘기한 동생의 과거가 어디까지 진실인지도 궁금했지만, 물을 수 없었다.
예민한 부분을 건드리면 동생은 또 울고불고 불안정한 상태가 될 것 같았다.
* * *
며칠 전 동생이랑 집 근처 카페에 있을 때,
나는 작정하고 동생이 받은 대출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동생은 매달 대출 원리금으로 30만 원 정도를 상환하고 있었다.
동생 말로는 원금이 크지 않다고 했지만
일을 하지도 않고, 모은 돈도 없는 동생이 대출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불편했다.
아빠는 동생에게 대신 상환해 줄 테니 대출받은 금액을 알려달라고 했지만,
동생은 자신이 차차 갚아나갈 거라면서 자세한 내용을 알려주지 않았었다.
오늘은 동생을 설득해서 대출에 대한 정보를 알아낼 작정이었다.
'가족들이 상환해 줄 테니 대출 금액이 얼만지 얘기해 봐.'
'매월 원리금을 갚아야 한다는 게 부담이지 않아? 그냥 얘기해서 아빠가 우선 상환하면 너 마음도 편해질 거야. 상환한 금액은 네가 알바라도 해서 차차 아빠에게 갚아 나가면 돼.'
'가족들이 걱정하는 마음은 모르겠어? 도대체 왜 알려주지 않으려고 하는 거야?'
내가 포기를 하지 않자, 동생은 집에 가겠다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나도 따라 일어나서, 이미 카페 문 밖을 나서서 걸어가는 동생 팔을 붙잡았다.
동생은 울고 있었고 소리치며 내 팔을 뿌리치려 했다. 나는 동생의 격한 반응에 당황했지만 팔을 놓지 않았다.
나는 집에 들어와서 우는 동생을 끌어안고 달래는 거 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네가 아직 말하기 불편하면 물어보지 않겠다'며 동생을 진정시켰다.
그날 저녁 나는 약속이 있어 나갈 계획이었지만 불안정한 동생을 혼자 두고 나갈 수 없었다.
약속을 취소하고 집에 머물렀었다.
* * *
궁금한 건 많고 답답했지만 동생과의 관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아 보였고, 무력감을 느꼈다.
나 혼자 정신과를 방문해서 동생의 상태를 얘기하며 의사에게 조언을 구해봤지만,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절망감만 커졌다.
동생은 왜 지금도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지 않는 걸까?
언제까지 이 상황이 계속될까? 동생은 언제 우울증이 호전되어 사회에서 제 몫을 하며 살아갈까?
동생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내가 놓치고 있는 게 있지는 않을까?
부모님은 점점 연로해지시는데... 안쓰러운 엄마아빠.
친구들에게도, 친한 회사 동료들에게도 말할 수 없는 가족의 이야기였다.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는 웃고 떠들어도,
혼자 집에 오는 지하철 안에서는 동생, 나, 우리 가족이 마주한 상황이 머릿속을 잠식했다.
그렇게 생각에 잠기다가 문득, 지금 나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궁금했다.
최근 생긴 나의 새로운 버릇은
내가 직면한 불행이 나의 얼굴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지는 않은지
종종 거울 속에 내 얼굴을 들이밀며 확인하는 것이었다.
어느 날 거울을 들여다보는데 순간 내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웃을 일이 적으니 눈가에 주름지는 걱정은 안 해도 되겠네'
얼음을 살갛에 대면 반사적으로 '차가워'하고 말하듯이
내 의도와 상관없이 나의 뇌에서 튀어 오른 이 생각에, 혼자 쓴웃음을 지었다.
이런 암울한 상황에서도 '눈가에 주름이 안 지겠다'라는
긍정적인 요소를 떠올리는 나의 뇌의 알고리즘이 어처구니가 없었다.
나는 뼛속까지 긍정적인 사람인데,
어쩌면 지금의 고통을 견딜 수 있는 건 어처구니없는 나의 긍정 회로 덕분일까?
같은 부모님으로부터 유전자를 물려받은 나와 동생인데 어쩜 이렇게도 다를까?
나의 긍정적 사고의 능력치를 동생에게 조금이라도 떼어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