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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빵

빵계의 주식 식빵

by 윤슬

어렸을 적 내가 가장 많이 먹던 빵은 '식빵'이었다.

아빠 혼자 외벌이에 세 자매를 키우신 엄마는 아마 가성비를 따져 식빵을 선택하셨을 것이다.

지금 떠올려 보면 우리가 먹던 식빵의 양은 마치 업소용처럼 커서, 일부는 냉동실에 넣어 두어야 할 정도였다.


하지만 세 자매의 식욕 앞에서 식빵 한 봉지는 오래가지 못했다.

엄마가 토스트나 샌드위치를 만들어 주고 남은 식빵을 그 자리에 앉아서 그냥 야금야금 뜯어먹거나,

달콤한 딸기잼을 발라서 하루 만에 순삭 하곤 했다.

한창의 세 자매에게 식빵 한 봉지란 마치 하이에나 세 마리에게 겨우 토끼 한 마리를 던져 준 듯한 광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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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한 끼를 빵으로 대충 때우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셨다.

간단히 토스트 하나를 만들더라도 계란에 온갖 야채를 다져 넣고, 마가린에 식빵을 구워 주셨다.

또 어떤 날은 감자를 쪄서 으깨 만든 샌드위치를 주시기도 했다. 그 토스트는 반만 먹어도 정말 든든했다.

가끔 나는 “엄마, 오늘은 간단히 식빵만 먹을래요”라고 말씀드렸지만, 그 ‘간단한’ 토스트도 엄마에게는 절대 간단한 요리가 아니었을 것이다. 엄마에게 식빵이란 어떤 존재였을까? 한 끼 간단히 해치우는 나와 달리, 엄마에게는 '식빵' 우리 아이들을 즐겁게 해주는 좋은 식재료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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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5학년때 요리 과제 비슷한 걸로

샌드위치를 도시락으로 싸와야 했던 날이 있었다.

지금이야 식빵 크루아상 치아바타에 야채와 햄 등이 들어가는 것이 정석이지만

샌드위치를 한국식으로 재해석했던 엄마는

역시나 식빵에 마가린을 구워주셨다.

친구들이 '이게 무슨 샌드위치냐'하고 의문을 제기했지만

한 입 먹고 나서는 조용해질 수밖에 없었다.

식빵+ 마가린+ 딸기잼의 쓰리콤보는 그만큼 강렬했다.


누군가 나에게 "왜 식빵이 그렇게 기억이 남아?" 하고 묻는 다면, 빵 중의 가장 기본이었기 때문이다.

토스트 해 먹기 좋은 부드러운 우유 식빵.

구수한 냄새와 노릇노릇한 색깔로 나의 식탐을 자극했던 옥수수 식빵까지.

전국 어디를 가도 있는 '모두의 빵'

'식빵'은 나랑 닮은 거 같기도 하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의 학창 시절의 지나 취업을 했고, 몇 년이 지나 결혼을 했다.

결혼 후 아이 둘의 엄마가 되었고 지금까지 별 다른 사건 없이 그냥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

'그냥 평범함'을 위해 나는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타인은 남들보다 잘나거나 좋은 직업, 부와 명예를 꿈꾸지만

나는 '그냥 평범함'이 좋았다.

지나가고 나면 누구인지 기억에 남지 않는, 처음 봤는데 예전에 어디에서 본 듯한 인상.

특출 나게 하나를 잘하는 것도 어렵지만, 꾸준히 중간만 가는 것도 만만치 않게 어려웠다.


엄마의 나이가 된 지금, 잘하는 건 없지만 못하는 건 없도록 노력한다.

이 나이면 모든 잘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여전히 난 식빵 같은 평범한 존재이다.

하지만 식빵은 여전히 특별하다.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그리고 요리하는 사람에 따라 무궁무진하게 변신할 수 있는 매력 덩어리다. 빵계의 쌀이라 불릴 만한 식빵처럼, 나도 그렇게 언제 어디서나 편안하고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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